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때 읽었던 세계 명작동화는 항상 "그래서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이 났던것 같습니다. 준비기간 6개월, 계약직기간 1년까지 모두 합쳐 1년 6개월의 취준기간은 체리기간의 최종합격 소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마치 "공주님과 왕자님이 행복하게 살았어요" 처럼, 그래서 "공공기관 취업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끝을 마무리 지으면 참 좋을테지만, 사실 공공기관 취업이 인생의 끝은 아니잖아요. 만약 이 글을 읽는 40대, 50대 공공기관 취준생있으시다면, 그분들께 사기업과는 사뭇 다른, MZ스러운 분위기가 살짝 녹아든 공공기관 분위기를 알려드리며 어떻게 적응하면 좋을지 저만의 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1. 사적인 얘기는 하지말고 업무중심으로 얘기하기
앞서, 레몬기관에서 성희롱, 갑질, 선넘는 오지랖의 이유가 사적인 이야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린적이 있습니다. 제가 오게 된 체리기관 역시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냉랭했었는데요. 한달, 두달쯤 지나자 그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최장기 N년차 근무한 직원이 그동안 모든 팀내의 불륜, 갑질 등을 몰래 몰래 녹음한 후 동료들을 퇴사시키거나 전보 보낸 일등공신이었다는것입니다. 자신 딴에는 팀내에 불륜이 있으니 아니꼬왔겠지만...한편으론 그걸 치밀하게 몇년간 녹음을 해서 해당 불륜남녀를 골로 보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또한 40대 이상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미혼 남녀를 보면 "아유~이렇게 괜찮으신 분이 왜 결혼을 못했나몰라. 내가 좋은 사람 있는데 소개시켜주고 싶어"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말 역시 MZ친구들한테는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절대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금지 질문은 "주말에 뭐하셨어요?" 라는 질문 금지입니다. 친해진 사이에는 상관없지만 친해지기전, 친해지기 위해 선택하는 질문으로는 정말 비추입니다. 사적인 얘기 유도 질문이거든요.
대신에 담백하게 업무적인 얘기, 업무 궁금중, 업무관련 정보를 주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 파악도 안한채 무차별적인 업무 질문은 금지입니다. 무조건 접수문서 다 읽어보시고, 공지사항, 공유폴더안에 핵심사업 정도는 파악하시고 업무 얘기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업무에 대해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귀찮게 일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고 안심을 하는건지) 마음을 빨리 열더라구요. 다시 말하면 공공기관이 신입에게 교육을 시켜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유독 신입직원을 짐짝처럼 취급할때가 많습니다. 이럴때는 스스로 간절함을 가지시고 업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업무 가르쳐주는 동료가 하는 말 다 받아적고, 노트필기가 느리신 분들이라면 미리 양해를 구해서 지출결의 등은 동영상 촬영 후 계속 돌려보시는것도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업무적인 얘기만 하면 친해지기 어려울것 같은데 어떻게 친해져야할까요? 제가 공공기관을 많이 경험한건 아니지만 1년간 총 4개의 공공기관을 경험한 결과,
2. 성실함과 밝은 인사성, 재빠른 업무협조가 있으면 시간이 좀 걸린다 뿐이지 언젠가는 마음을 여시더라구요. 한달 정도 혹은 두달 정도를 주변에서는 신입직원의 근태, 말투, 문제해결능력을 지켜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때 특별한 지각없이, 근태 잘 지키고, 오고 가는 길에 인사정도만 잘해도(크게 인사할 필요없이 목례, 혹은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정도) 한두달 후면 마음 열고 동료로(?) 받아들여주는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듣기로 한 지인의 공공기관은 서로 인사를 안하는게 기본 디폴트값이라고 하더라구요? 조직 바이 조직이겠지만, 기본 인사에도 대꾸안하고 무시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공기관이라면....예.. 그곳은 정말 완전 개인주의집딘의 집합체이니 큰 기대를 버리시고 적응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3. 특정 누구누구와 친하다는 느낌 가지게 하지 말기.
옛날에 공공기관 다니던 한 지인이 누구랑 점심 먹는지, 누구랑 친한지 티 내지 말라는 얘기를 한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 분 얘기를 들으면서도 "참 별나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해?"라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그 조언을 쌔까맣게 잊은채, 저는 입사한 뒤 마음 맞는 직원이 생겨 계속 둘이서 점심을 잘 먹으러 다녔는데요. 문제는 다음 신입직원이 들어오면서 벌어졌습니다. 신입직원이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셨는데 "왕년에 내가 얼마나 잘 나갔었는데" 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둘만 먹기 미안해서 그 분과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요. 계속해서 "왕년에~"를 시전하시는 그 분 때문에 즐거웠던 점심시간이 그분의 왕년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를 리스닝하는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친한 직원분과 얘기해서 "아예 다 따로 먹자. 그게 낫겠다" 라고 결론 내리고는 그 신입직원께도 말씀드려서 그냥 다 따로 먹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필요할때는 친한직원과 같이 일어서지 않고 식당에서 바로 만나는 식으로 점심을 같이 했구요. 공공기관이라는 곳이 결국에는 나도 정년까지 일하지만 상대방도 정년까지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너무 끼리 끼리 친하다는 느낌을 주는것도 되려 흠이 될 수 있다는것을(혹은 미안할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것을) 확인하는 사건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요즘 이러한 개인주의는 워라밸이라는 이름 아래 더 심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공공기관이라는 특성 아래,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더 회사에 잘 보일 필요없이 소위 미련없이 다니겠다는 주의와, 정년까지 보기 때문에 그래도 지킬 선은 지키고 다니겠다는 부류로 나뉘는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후자를 용기있게 선택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밤입니다. 내일은 그럼 마지막 글을 가지고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