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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 Oct 25. 2024

옛이야기

-simjae


옛이야기                 


 유현숙


    

  1.

  화양구곡 가서 책을 읽네. 내가 사랑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읽네.     


  몸으로도 빛으로도 바람으로도 만나지 못하는 사랑이었네. 햇볕이 우거지는 여름 뙤약볕 아래서 긴 한나절을 기다렸네. 

  몸이 빛이 바람이 지나간 시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겠네. 깔고 앉은 이 자리에도 그 사람이 앉았던 자국은 남아 있는지. 

  반석 한 페이지를 들추며 묻네.     


  2.

  엄마의 마당에는 별이 그득했네. 나는 마당에 내려서서 새벽까지 별을 닦았네. 그 사람이 찾아와 선반에 얹어 둔, 저 구월의 별들을 내려서 오늘처럼 닦을까. 

  반석 위를 기어가던 그물무늬비단뱀의 초롱한 눈빛을 생각하네. 

  뱀 울음소리가 들리는 새벽에 나의 안마당에 섰네.      

  자국마다 박힌 별은 현학적이고 반석에 찍힌 그물무늬는 수사적이네. 

  현학보다 수사보다 별빛이 더 빛나던 한 사랑의 이야기를 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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