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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Jan 22. 2024

세 번째 고객을 맞이하는 마음

감격스러운 첫 강의 이후로 프로필을 올린 지 2주 만에 세 번째 고객과 연결이 되었다.


두 번째 고객까지는 그저 우연이다, 운이 좋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세 번째 고객이 연결되니 마음이 사뭇 달라진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 지속될 수도 있겠구나. 노력하는 만큼 더 빨리 더 많은 고객을 만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엄중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1월에만 벌써 4번의 강의를 다녀왔다. 이번 주에 2번의 강의가 또 있다. 이게 정말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나?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강의를 한다고? 믿어지질 않는다.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강사가 되겠다는 나를 늘 응원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등에서 바람이 밀어주는 것 마냥 진도가 빠르게 나갈 수 있는 건가?


어떤 일이 쉽게 풀린다면 그게 내 길이라는 얘기를 어디 영화에서였나, 애니메이션에서였나 본 적이 있다. 혹시 지금 나도 그런 상태인 걸까? 그동안 시작이 쉬웠던 적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럽다.


직장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누군가에게 돈을 받는다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정말 이렇게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될까? 월급처럼 꼬박꼬박 나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될까? 그게 정말 가능할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구름처럼 뭉게뭉게 의심이 피어난다. 이런 의심은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내 습관이다.


한 달에 몇 번 강의를 해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기도 하고, 기대와 동시에 '아냐, 나는 안 될 거야' 절망하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것이지. 안 좋은 습관이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기대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나는 무엇이건 기대하는 게 싫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싫고 누군가 나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싫다. 설령 그게 나라고 해도 싫다. 기대하지 않고 이 상황을 묵직하게 버텨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나를 믿고 선택해 준 세 명의 고객님께 감사하며 지내는 것이다. 가능하면 표현하는 게 좋겠지. 아무리 소중한 마음도 표현하지 않으면 그저 일기장에 적히는 게 전부일테니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꽤 고난도의 일상기술이 요구된다. 그 시기나 방법을 생각해 내기가 어렵기도 하고, 간혹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해도 실천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내야 한다는 두 번째 허들이 있기 때문이겠지.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난이도를 올려버리는 건가? 서툴더라도 자꾸 표현해야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될 텐데 쉽지가 않다. 


기대하지 않고 버텨내는 두 번째 방법은 아마 '준비'가 아닐까. 요즘은 김익한 교수님이 개발하신 월간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다. 파서블 다이어리라고 부르던가? 매일 아침마다 하루를 구상하고, 하루를 보내며 순간순간의 감정과 깨달음 등을 기록한다. 저녁이 되면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미소 짓고 나를 칭찬하며 감사했던 일을 적으며 마무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나'와 살아가지만 내 경우에 나는 나와 그다지 친하지가 않다. 먼 친척 같은 느낌. 그래서겠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는 건 좀 어색하고 불편하다. 나와 힘을 합쳐서 뭔가를 함께 해낸다는 게 어렵고 싫은 일이 되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래도 요즘은 다이어리 덕분에 나와 대화하며 산다. 하루에 2~4쪽의 메모를 통해 생각나는 걸 적어온 지 한 달이 됐다. 매주 초입에 지난주를 되돌아보고 한 주를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을 세운다. 그보다 가장 우선 되는 건 월초에 세운 월간계획이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살아보는 건 처음인데 효과가 매우 좋다. 


ADHD라 그런 건지 지난날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만났던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 어디서 만났었는지, 오늘 나는 뭐 했는지, 뭐 하나도 제대로 생각나는 게 없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인게지. 매 시간마다 내가 뭘 했는지 적어보니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되돌아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 생산적이다.


이번 다은 월간계획, 주간계획, 하루계획을 통해서 '지지적인 성교육 강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다.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내딛지만 어느 방향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인지 잊지 않고 갈 수 있어서 좋다. 가끔 몰아치는 여러 일에 조금 혼란스러워지기도 하지만 일기장을 다시 열어 보면 금방 길을 찾을 수 있다. 다행이지.


내게 기대하지 않고 이 시간을 버티는 방법은 두 개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이런 부분도 ADHD다운 모습인가? 잠깐 생각했지만 세상에 ADHD 다운 게 어딨어? 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고객분들께 감사하고,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준비하며 좋은 강사가 되어야겠다. 올해 나는 몇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될까. 내 강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을까?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내 일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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