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는 육아 이야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되돌아보면 나를 더 많이 키우는 일이었다. 나를 향한 부모의 기대와 관심이 버거워 벗어나고만 싶었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사랑은 주되 집착하지 말자.’ ‘괜한 애 잡지 말고 나부터 중심 잡고 살자.’ 그렇게 시작된 육아 모토가 바로 '育兒 대신 育我'였다.
‘아이에게 너무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더 나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면 아이는 저절로 잘 크지 않을까?’ 그런 순수하고 철없는 믿음을 끌어안고 자유와 방임, 그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보자던 혼자만의 조용한 다짐 같은 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글자 그대로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어른으로 자랐다.
그간의 연애에서도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나는 내가 제일 먼저였고,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었다. 그런 이기적인 내가 아이를 위해서라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그제야 배웠다.
그렇게 아이를 내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자신했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온 마음과 온몸을 내게 맡기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막상 내가 준 사랑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아이에게 받고 있었다. 누군가의 ‘세상의 전부’가 되는 소중한 경험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고,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이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삶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타인을 위해 조건 없이 헌신해 보는 경험은 인간을 한층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육아는 그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체감하게 해주는 길 중 하나이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이전의 ‘인생은 한 번 뿐이니 마음 가는 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태도에서 조금씩 벗어나,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 하나의 세계에서 머물던 감정의 폭을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들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의 행동은 매일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내가 무심결에 낸 짜증은 아이의 짜증으로 되돌아오고, 내가 준 사랑은 아이의 애정으로 되돌아온다.
아이를 키울수록 깨닫는 사실이 있다. 아이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라는 것. 아이의 소심함, 아이의 예민함, 아이의 고집은 사실 나를 닮아 있다. 그래서 아이를 통해 나는 매일 ‘나’를 본다. 내가 부족한 부분, 내가 외면해 온 감정,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들이 아이를 통해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자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의 나보다 더 젊던 과거 내 부모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 혼자 알아서 잘 컸다’고 믿었던 젊은 날의 오만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너무나 당연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상조차 그 뒤에는 수없이 많은 인내와 보살핌이 있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타는 자전거의 소소한 즐거움 뒤에도 어린 시절 내 부모의 부단한 노력과 관심이 있었음을, 내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린 시절 마냥 즐거웠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던 캠핑의 추억 뒤에도 귀찮음을 이겨낸 부모님의 고단함이 있었음을 나중에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은 나를 종종 울컥하게 한다.
짜증을 내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에게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다 나는 과연 감정 조절을 잘하고 있는지 문득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말하기가 민망하게 아이는 매일 나를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키우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이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오늘도 나는 育兒 대신 育我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나를 길러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