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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Aug 16. 2023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는 것도 좋은 것이라 생각해요.


뜨겁게 일렁이는 햇빛 아래에서 옅은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네는 과장님의 얼굴이 소녀 같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실로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여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찡그린 듯 웃는 표정은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아마도, 조금은 괴이하게 웃었던 것 같다.


흐린 날이 계속 이어질 듯했던 먹먹한 날씨가 물러가고, 구름 한 점도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날씨로 바뀌었다. 매미는 더욱 세차게 울었고, 그럴수록 하늘은 점점 더 파랗게 짙어져 갔다.

괜스레 심술이 나서 하얀 분필로 아무 의미 없는 선을 그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지난 8월 11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동시에 퇴사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거침없이 써내려 갔었던 네 줄의 이야기를 두 줄로 정리했고, 조금은 부끄러운 장문의 메시지를 남겨 두고 회사를 나왔다. 나지막이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 응원 등이 담겨 있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아쉬우니 밥 한 끼 하고 헤어지자는 이야기까지.


사무실에서 당신과 나의 거리는 짧은 거리였지만, 살가운 말 한마디를 건네기가 사실은 어려웠고, 순수한 당신이 좋았으며 응원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 때에는 사실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아무에게도 시선이 닿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었다.


문득 아이유가 김이나 작사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거품이 차있고, 통찰력이 넘치고, 어른스러운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것 같다며.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고민하는 김이나 작사에게 아이유가 이런 말을 건넸다.


’근데 잘 못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수가 다수이다 보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 생각보다 적지 않은 사람은 그것 알고 있더라고요. ‘


사실은 스스로를 고립을 시켰던 것은, 흐린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말이 거짓이었는지 중요치 않다. 귀한 시간을 내주며 온기를 내주었던 사람들의 진심만을 믿기로 했다.


어제 대바늘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그 친구에게는 소주잔, 내게는 사이다가 담긴 잔이 있었다. 타는 불판 앞에 앉아 두 사람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실 퇴사 말고도, 여러 가지 갈래의 길에 서 있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통틀어서 질문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서 괜스레 창문 너머의 횡단보도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온기가 있었고, 부드러운 걱정이 비쳤다. 겹겹이 쌓인 시간들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보인다고 말해줬기 때문일까. 하나도 무섭지도, 차갑지 않았다.


초랗게 빛나는 불에서, 빨갛게 빛나는 불로 바뀌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을 때쯤에 대답했다.


사실은 잘 모르겠어. 그런데, 한 가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어.

삶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안 되겠더라고. 그러면,생명력을 잃어버려.

나는 또 다시 ’왜‘라고 질문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그렇지만, 이미 한 번 거쳐왔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내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와 걸어갈 거야.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마음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를 바라보았을 때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기쁨에 찼다.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를 덮친 것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파도에 미끄러진 것 뿐이었다.

삶은 횡단보도처럼 예고되지 않아서, 알아서 신호를 알아차리지 않으면 다음번엔 잠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까, 두 번 다시 같은 곳에 나를 두지 않을 것.

나에게, 그에게, 당신께 희망의 언어를 더 많이 들려주겠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삶의 어느 곳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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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언제나 맑음,주현에게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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