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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해님과 바람 이야기

내가 태어나 처음 세상이란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집에는 해님과 바람이 동거하고 있었다. 해님은 순하고 화 한번 낼 줄 몰랐던 따뜻한 엄마였고 바람은 엄하고 고집이 셌던 차가운 아빠였다. 우리 세 남매는 어쩌다가 그런 운명의 굴레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한 번도 세상에 태어나길 원한 적이 없었고 더더군다나 이런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세상에 태어나길 바란 적은 결코 없었으리라 추측한다 - 인간 땅에 태어나기 전에 신이 있어 너의 운명의 집을 선택하라고 했다면 모두들 따스함만이 넘치는 안전한 곳을 선택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의 최초 기억은 4살부터였으니까 그 이전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이었고 신이 어떻게 이 집에 태어나게 해 주었는지 알아낼 방도는 전혀 없지만 - 나는 가끔 탄생 전 기억을 상상으로 창조해 보고는 한다 - 우리 세 남매는 어쩔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 놓여 있었다.

그중에 나는 막내딸이었고 어쩌다가 유전자마저 해님을 많이 닮아 태어났다. 언니와 오빠는 그나마 바람에 대항할 줄도 알았으나 해님을 닮아 대항할 줄 몰랐던 나는 거센 바람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고는 했다. 바람이 없는 날, 우리 삼 남매는 쾌재를 불렀고 따뜻한 햇살 아래서 평화로운 놀이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굉장히 짧았고 나는 바람이 언제 태풍으로 변할지 몰라 불안해했다. 나의 유년시절로 되돌아가 보면 나는 분명 햇살 아래 따뜻하게 보낸 시간도 많았다. 나는 해님을 엄마로 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 나는 해님을 사랑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함께 간식을 먹고 조잘거리고 시장을 따라다니며 해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나의 해님 사랑은 점점 커졌고 나는 해님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해님은 결국 세상의 전부가 되었고 난 해님이 사라지면 따라서 사라지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바람 때문에 나의 해님 사랑은 지독한 사랑이 되어버렸으리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해님은 나의 방패였고 따스하고 포근한 이불이었다. 해님은 바람을 거뜬히 막아주었고 해님은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이 강해 보였다.


바람의 공포는 대단하여서 잔잔하게 불 때 오히려 불안감이 몰려오곤 했다. 태풍 전야처럼 고요한 시기를 나는 커갈수록 더 공포스러워했다. 언제 태풍이 될지 모르는 바람, 그 바람은 나의 유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바람 앞에 서 있기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미풍일 때는 불안함을 안고 서라도 버틸 수 있었지만 태풍이 감지되는 지점에 이르면 난 또다시 해님을 찾고 해님 뒤에 숨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기질이 유순한 해님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성장 과정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었고 성인이 된 이후 그것을 극복하는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자라온 환경과 기질의 궁합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유독 남매들 중 나는 커다란 상흔을 입었으니 말이다. 어쩌겠는가. 이런 결과도 내가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바람이 요동치는 게 힘들었다. 아마도 평화주의자로 태어난 탓이리라.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게 싫고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을 극혐 하는 나는 나에게 자꾸만 싫은 소리를 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고 화를 내곤 하는 바람의 변덕이 그저 공포로 느껴졌다. 언제 태풍이 될지 모르는 바람의 공포 - 잔잔한 바람인 줄 알았던 날 거센 태풍이 불어 몹시 흔들거렸고 거센 태풍이 불겠구나 싶은 날에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 안도하였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은 쿵쾅쿵쾅 큰 소리로 요동쳤고, 때문에 오래도록 집 밖에서 서성이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학교에서 1박 2일로 여행이라도 가서 집 밖에서 잠을 자고 오는 날이면 난 친구들과는 다르게 평온해졌다 - 간혹 집에 가고 싶다고 울먹이는 아이들을 보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집이 극도로 싫어졌다. 어느 날, 해님이 우리 집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기 때문이었다. 집은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집은 집 형체만을 지녔을 뿐 벽은 무너져 내렸고 문도 사라져 버린 후였다. 집에 들어서면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세찬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십사 년째 세상을 살아가던 중 일어난 참사였다. 분주한 그날의 기억 속에 슬픔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날 이후, 한참 동안 바람과만 동거한 뒤에야 해님은 영영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닫고 나는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는 눈물을 얼마나 흘렸던가? 나는 하루아침에 세상의 전부였던 해님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해님이 사라진 뒤 나는 바람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말 외에는 웬만하면 말하기를 꺼렸다. 매일 밤이 되면 신께 기도를 올렸다. 해님이 떠나면 나도 떠나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고. 난 이미 해님이 사라지던 날 내 영혼도 함께 떠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세상을 미처 떠나지 못한 껍데기만이 간신히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의 전부를 잃었는데 살아갈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해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공부도 의미 없어졌고 가족도 친구도 다 의미 없게 느껴졌다. 난 대충 삶을 연명했다. '연명'이라는 단어만이 그 당시의 나를 설명하는 적확한 표현이다.


그때의 나를 찾아가 바라본다. 밥을 먹지 않아 빈혈로 숱하게 쓰러지고 개미허리가 다 드러날 정도로 말랐던 내가 힘겹게 집안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안타까운 모습. 학교에서 일부러 쾌활하게 깔깔거리며 과장된 행동을 하던 모습. 심한 불안증이 찾아오면 교실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바깥으로 뛰쳐나가서야 찬바람을 쐐며 안정을 찾던 모습. 해님이 떠나가던 날 울지 못했던 아이가 가슴에 슬픔을 묻고 위로받을 길 없는 차가운 방에 웅크리고 누워 숱하게 흘렸던 눈물들. 나는 그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여 준다. 주위에 위로해주는 어른 하나 갖지 못했던 외로운 아이에게 따스한 어깨를 내어준다. 그 당시 아이에게는 펑펑 울 수 있는 따스한 어깨가 필요했음을, 그리고 세상의 전부를 잃었다고 세상을 못 살아갈 이유는 없다는 것을 말해줄 어른이 필요했음을 지금의 나는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 당시 아이의 상실감과 고독의 깊이를, 바람의 공포와 맞선 두려움을, 지금의 나만이 그 아이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이는 설움을 쏟아낸다. 주변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엉엉 큰 소리로 실컷 울고 나더니 그제야 내 얼굴을 보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해거름에 시작되었던 눈물은 하루를 꼴딱 새고 새벽 미명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다. 아이는 지쳤는지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나에게 말을 한다.

"그날은 참 어수선한 날이었어. 어른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일 밖에는 아무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 같았어.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렸고,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누구도 나를 토닥여주는 사람은 없었어. 관이 내려가고 삽으로 흙을 떠서 관 위에 뿌리면서도 관 속에 엄마가 누워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어서 집에 가자, 어서 집에 가서 눕고 싶다, 너무 피곤해, 집에 가면 엄마가 나를 토닥여 줄 거야, 라는 생각만 하면서 그 시간을 견뎠던 거 같아.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난 외삼촌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어. 그 무릎은 참 해님같이 따뜻했지."


해님과 바람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해님과 바람은 지나가는 행인의 겉옷을 누가 먼저 벗기는지를 두고 시합을 벌인다. 바람은 세차게 더욱 세차게 바람을 불게 했지만 행인은 겉옷을 더 힘껏 움켜쥐었다. 해님은 언제나처럼 강한 햇살을 쨍쨍 내려보냈고 결국 겉옷을 벗게 만든 최후의 승자가 된다.

옷을 벗길 수 있는 건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다.


네이버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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