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턴가 인스타그램은 한 사람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가끔 내가 잊고살던 예전의 트라우마들이 있던 역사의 파편을 마주하면 숨이 턱 막혀온다. 내 발자취와 이어져 있는 인스타그램 소식과 사진들 사이사이 보이는 과거의 파편들이 목을 옥죄어 온다.
호텔에서 퇴사할 당시 선배가 내게 위로라며 건넸다. "그래도 추억이 될 거야." 라고. 제빙기에서 얼음 퍼내고 있던 내게 웃으며 건네던 말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추억이 아니라 악몽이겠죠...'. 1년 먼저 퇴사한 선배가 얼마전 그때를 회상하며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는 명언도 있다며 소주 한 잔과 함께 읖조렸지만 내게는 당시에는 경험조차 될 수 없는, 추악함과 끔찍함으로 점칠 된 악몽이었다. 죽고싶을만큼.
이제는 그 곳에 있는게 아니라며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그 공간의 파편들에 여전히 흠칫 놀란다. 이어서 그 시간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무조건 반사처럼 "끔찍해"라는 말을 내뱉는 입술의 움직을 느낀다. 여전히 끔찍하다. 그곳에서 보냈던 나의 시간이, 스스로를 절벽으로 몰아붙이던 나 자신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게 끔 만들던 그들과 그런 나를 실패자로 꼴사납다며 매몰찬 취급하던 또 다른 이들을 떠올리자면 어지러운 색들 위 두껍게 덧칠한 검은색을 손톱으로 긁어내 억지로 마주하는 듯한 끔찍함이다. 금하나 그어진 깨진 거울의 균열처럼 순식간에, 마치 톡 하고 건들면 부스러질 것처럼 번져나가는 나의 악몽들이 소름끼친다.
어느날은 아직도 거기서 일하는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 야 너한테 그러던 주임이나 선배들 이제 안그런다. 너 나가고나니까 다른 인턴들은 팔자폈어. 너 진짜 고생많았는데.. 너한테 한게 레전드였지... 고생많았다."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런 악습이 일어나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에도 안도감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왜 또 굳이 그게 나여야 했나 하는 소리도 나왔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면 강해지기 위한 필요한 과정들이었다.
여전히 과자봉지 속 부스러기들을 끄집어내듯 기억을 뒤져보다 보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몰려온다. 그 동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도 퇴사 후 가끔 만나면 아직까지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때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만이 그때의 감정들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동안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 선배는 나와 같이 퇴사 후 아무 회사에도 다닐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당시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니 회사는 다녀야 하지 않을까 했으나 나는 이제서야 그 마음이 이해되는 것을 보면 선배는 나보다 더 일찍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을 달래고 돌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에서야 나를 마주하고 있다. 나의 밤을 온전히 마주하고 보내고 그리고 나의 단단하고 찬란한 낮을 맞이할 것이다. 누구나 제각기 제 몸 안의 밤이 있다. 그 밤들이 모여 깨어나기 어려운 깜깜한 어둠을 만들어내지만 가까운 미래에 더 단단해진 당신의 낮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