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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 Dec 30. 2021

네모가 될래요

그냥 이유 없이 사는 게 힘들고 스스로가 감당되지 못할 만큼 우울감에 사로잡혀 진탕 술을 마시고 꿈이 없는 수면을 간절히 바라며 집에 들어가는 날들이었다. 이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아, 라는 감탄사라고 하기보다는 비탄에 가까운 소리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 어느 날 길을 걷다 눈 윗자락을 거스르는 벚나무는 무심히 올려다본 하늘과 나 사이에 갑작스레 만개하였다. 하늘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하늘은 어슴푸레 어딘가 어두운 낯을 띄고 있다. 회색으로 가득한 도시의 광경들 사이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손에 쥐어진 작은 네모에만 집중하여 걸어가는 사람들 투성이다. 작은 네모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도 네모라는 프레임에 씌워진다. 


사각형이라는 수학에서 명명한 이름은 너무 딱딱하다. 똑같이 각져있는 사각형 그리고 네모는 글자의 모양과 발음에 따라 입 모양도 다르고 혀의 위치 그리고 입 주변 근육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네모가 좀 더 둥근 세상 속 각진 아이처럼 느껴진다. 카메라의 프레임도 네모 모양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서 1:1의 비율을 가진 더 정갈한 네모 아이를 선택할 뿐, 이러나저러나 모두 네모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창을 설치할 때조차 네모다. 물론 동그라미도 있고 세모도 있다. 심지어 빵 모양 창도 있다. 그러나 눈동자를 창에 밀착해 좌우로 움직여 더 넓게 바라보고자 하지 않으면 내가 두 눈동자 시리도록 담기는 세상은 창의 모양에 따라 한정되고 모양 진다.


사람들은 자유를 바라기도 하고 탈선 혹은 얽매이는 게 싫다고는 하지만  알고보면 우리는 세상을 네모라는 프레임에 씌워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자유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둥그스름한 적당함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다 보면 별거 아닌 일상이고 평범한 나날들과 같은데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할 때가 있다. 우울함에 잠식된 채 지나가다 마주치는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유 없이 질투에 사로잡혀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겨날 때가있다.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 혹은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말이 돌아오지 않을 때 배신감 혹은 미움이라는 감정을 숨기며 내뱉는 말은 아니라고 괜찮다고 겉과 속이 다를 때가 있다. 속절없이 웃는 사람,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말고 적당히 상처 있고 적당히 상처 주고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웃고 우는 적당한 사람은 각진 세상 속 네모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내 세상이 둥글어졌기를 그리고 내가 그 안의 네모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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