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나니 편하더라. "안녕하세요. 저는 괴짜에요. 특이한건 멋있는 괴짜에요." 라고 인정하니 내 삶의 행복도가 올라갔다.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나는 특이하구나. 아닌 척, 숨기고 부정해야 남들과 어울릴 수 있구나. 그래서 부단히도 애썼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도 해보고 동의를 구하면 누구보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최면도 걸어봤다. 돌아오는 건 왕따였다. 그로인해 땅을 뚫고 지하에 처박혀버린 자존감과 반비례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는 자존심 그리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마는 자괴감뿐이었다.
숨기고자 했으나 숨겨지지 않는 나의 무언가가 있었다. 난 어디를 가나 원치 않음에도 튀었고 그 속의 무언가가 되었으며 또다시 스스로 괴로워했다. 항상 “너 좀 이상해.” 라거나 “네가 정상은 아니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처음에는 스스로 의심을 했다. “내가 진짜 이상한 사람인가? 나 진짜 비정상인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라는 정답이 없는 물음을 스스로 계속 건네며 더더욱 내가 만들 울타리와 틀에 날 가두었다. 속 안의 나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를 하나로만 직면하고자 하니 파생된 괴로움이었다. 그냥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라는 단편적이면서 복잡한 정보들을 이리 꼬고 저리 꼬아 하나의 단어로 포장하려니 생긴 문제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소개를 하나의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저는 명랑한 사람입니다.’ ‘저는 INFJ에요.’ 등등 따위의 단어들을 나열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 욕구는 끊임없이 발산되며 현재 너도나도 MBTI로 자신을 소개하는 트렌드들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자신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단편적인 것들로 자신을 규정짓는 일은 내 속의 수많은 ‘나’라는 아이들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이 글을 읽으며 혹자는 “당신만 그리 복잡한 사람은 아니야. 누구나 안에 수많은 자신이 살아. 당신만 특별한 것처럼 굴지는 마.” 라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안의 자신들을 외면하고 제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단편적인 선들의 규격에 가두어버린다. 나는 종종 타인과의 이질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리고 여태껏 그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스며들어보려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더 이상 저 군중들 속 튀지 않는 평범하고 보편화된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타인이 굳이 나를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는 없다. 물론 나도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없고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가 남아있을 뿐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모두가 나를 선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나는 그냥 나니까. 내게 이상하고 비정상이라며 들이미는 인간의 잣대에 날 구겨 넣지 말자. 그저 그렇고 밋밋하게 사는 것보다 나는 타인이 지칭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날 인정했다. 나는 괴짜다. 그것도 엄청 멋있는 괴짜.
"밀물과 썰물과도 같은 고독, 단맛의 이면을 바라보지만 우아하게, 솔직하게, 유머러스하게 강변하는 지적인 목소리를 가진 나는 멋있는 괴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