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뭐길래
진한이는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일상은 서울의 바쁜 생활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양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매일 조금씩 달랐지만, 생활의 패턴은 그렇듯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비비며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선 그는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의 출퇴근길은 그야말로 '지옥철'이라 불릴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역에 도착하면 이미 빼곡히 들어찬 인파가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지하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밀려들어가며 진한이는 마치 파도의 흐름에 떠밀리듯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 틈에 낀 채로 몸을 웅크리고 서 있으면 사람들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짜증 가득한 표정, 무언가에 골몰한 표정, 완전히 지친 표정, 멍한 표정.
사실 우리 모두가 불쌍해 보이기도,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두가 대단해 보이는 것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한이는 애써 그들의 표정을 보지 않으려 뉴스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라도 그 혼잡함을 벗어나려 노력해 봅니다.
하지만 휴대폰 손 뉴스에는 진한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불쾌한 표정보다
뉴스에는 더 불쾌하고 자극적인 소재거리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수많은 공허와 허무주의에 빠진 댓글들이 있었습니다.
이 댓글들이 도대체 누구에 의해 달리는 것인지 진한이는 진심으로 궁금해했습니다.
진한이는 그러한 댓글과 사람들의 표정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불쾌한 표정이 곧 이러한 댓글로 표출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지옥철을 빠져나와 회사에 도착하고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순간 진한이는 온몸에 힘을 줍니다.
굽었던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오늘의 업무를 시작합니다.
각종 서류와 회의, 업무 처리에 집중하며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은 고층 빌딩의 일부분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이 그에게는 점점 더 익숙해져 갔습니다.
진한이는 자신이 사회에서 마구 쓰임 받는 것이 때론 뿌듯하기도, 때로는 지치기도 합니다.
하루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한이는 또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퇴근길의 혼잡함은 여전했지만, 그는 오늘도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비록 그 길이 아직도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어제 수진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조금씩 자신을 다잡았습니다.
"무슨 일 있어, 진한아? 표정이 안 좋아 보여, " 수진이가 물었습니다.
진한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꿈에서 경험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직도 그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야."
수진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한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어떤 꿈인데?"
"낯선 동네에 있었어. 오래된 공장과 퇴락한 건물들, 거친 손으로 온종일 일하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깊이 새겨져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이 엿보였어.”
수진이는 늘 그렇듯 진한이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가 예전에 가 본 동네인 거 아니야? 근데 그게 왜 그렇게 마음에 남았을까.”
“아니야. 그렇다기엔 너무 낯설었거든.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났어. 처음에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는 작은 불빛을 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어.
그 불빛이 내가 정말로 자신의 작음과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깨달을 때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어."
수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한이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불빛이 단순한 빛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이자 그들이 지켜가려는 삶의 가치라는 것을 느꼈어."
수진이는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진한아, 세상을 넓게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특히 우리가 사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더 그렇지.
하지만 넌 그 첫걸음을 뗀 거야. 그 꿈이 너에게 뭔가를 일깨운 건 분명해."
진한이는 수진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모르겠다. 그냥 그런대로 잘 살아온 것 같은데,
그 꿈이 그저 그런 내 삶을 갑자기 혼란스럽게 만든 것 같아.
그 꿈속의 낯선 곳이 어디길래 왜 이렇게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어.
수진이는 그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지금과 그리고 네가 있는 이 서울이 조금은 버거운 게 아닐까.”
진한이는 수진이의 말을 되새기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그랬어.
서울은 내 꿈의 출발점이기도 했지만, 비교와 도태가 공존하는 어두운 심해 같기도 해.
그냥 다들 불쌍하지 않아? 서울이 뭐길래.”
도무지 서울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그리도 열망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은 지나치게 잔인하면서도 그 잔인함 속에서 작은 사랑과 정이 피어나는 곳이라,
사랑하기도 미워하기도 참으로 애매한 곳입니다.
“그렇지. 근데 사실 너도 오고 싶은 게 아니라, 올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그래서 나도 가끔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너를 보면 안쓰럽기도 한데, 그래도 참 대견하다 싶어.”
카페를 나서며 진한이는 여전히 꿈에 대한 의문과 혼란스러움이 남아있었지만, 수진이와의 대화가 그의 마음에 작은 위안을 주었습니다.
그냥 여전히 막막하지만, 그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그의 마음을 덜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 진한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불빛과 그리운 낯선 땅을 떠올렸습니다.
진한이의 꿈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단순한 의미 부여인지,
아니면 어떠한 진리의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전혀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