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이후의 홍콩은
2019년 연말이 오기 전까지 정말 나는 홍콩의 더위에 지쳐 있었다. 5월에 도착해서 6-7월에는 건물은 춥고, 밖은 더운 날씨에 오뉴월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달고 살았다.
더위와 비와 사람에 지쳐, 주위를 둘러보려고 했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날들을 널브러져 있었다. 좁아도 시원하고 습도 낮아 쾌적한 내 방처럼 편한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 11월, 조금씩 왜 사람들이 홍콩을 좋아하는지 매력을 깨달아 가게 된다. 10월쯤엔가 새로 막 생기기 시작한 서구룡 문화지구에 피크닉을 갔었다. 아직 날이 더워 얼굴이 벌건 채로 맥주를 들이켰지만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도 충분히 시원한 느낌이었다.
바다를 옆에 끼고 텐트와 잔디에 누워 자거나 책을 읽는 그 풍경이 그 어느 것보다 힐링이었다. 거기에 11월이 지나 날이 점점 시원해지니 괜히 집에 가기 싫은 날들이 이어졌다.
이 맘 때쯤 홍콩은 하늘은 높고 날은 시원하며 습도도 딱 적당한 가을 날씨가 된다. 마침 10월부터는 또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많이 열려 오늘은 전시, 내일은 영화, 글피에는 공연, 매일 어떤 문화생활을 즐길까 고민하는 시기가 온다.
그 시기를 맞아 동료들과 함께 더 자주 놀러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가기도 하고, 야외 공연도 보고, 섬으로 트레킹도 다니고. 집에 오던 길, 문득 생각 나 맥주와 와인을 들고 침사추이로 향하거나 야외에서 해피아워를 즐기기만 해도 좋았다.
특히, 페리와 트램은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힐링이었다. 야근 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보고 집에 오면 왠지 그 시간에 퇴근하는 것도 용서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하늘도 맑아서 뭘 찍어도 사진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아이폰 프로에 바친 100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1년 중 거의 8개월 정도가 여름인 홍콩에서 딱 그 한 시즌은 남은 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한 시기였다. 바퀴벌레와 더위로 찌든 홍콩에 대한 이미지가 순식간에 변해갔고, 이후 홍콩이 충분히 좋아졌다. (물론 겨울의 홍콩이)
모든 게 좋아지는 그 시기 덕에 한 해 가장 바쁜 시기를 잘 지냈고, 다음 해를 기대하게 되었다. 야외 행사도 많았던 홍콩 덕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것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찬 바람이 불어오니 왠지 그 일상이 조금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