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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채 Feb 18. 2024

책 피클

2024년 2월 3주 차

 며칠 전 블로그 이웃님이 중고 서점을 지나가다가 책들의 생애를 상상하며 본인의 생애는 어떤 책의 생애일지 질문을 던진 글을 <서적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게시했다. 그 글에서 마치 책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들면서 내 책장도 한 번 둘러보게 됐다.


내 책장 사진


내가 '훈장처럼' 꽂아놓은 책들.

나의 수집욕구로 모아놓은 책들.


나의 생애는 어떤 책의 생애일까?


 작년 연말에 발리로 여행을 다녀왔다. 주로 여행을 혼자 다니는 편이라 여행을 갈 때면 꼭 책을 들고 다닌다. 발리에 갈 때도 역시나 가방 한편에 책을 넣어 다녔다. 경유지인 상하이 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가 몇 시간 연착돼서 드넓은 공항에 앉아서 읽기도 하고, 여유를 부리고 싶은 날에는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다 선베드에 누워 읽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에 노을을 보러 바닷가로 갔다. 노을 사진을 더 가까이서 찍고 싶어서 앞으로 앞으로 가다가 파도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얼굴 빼고 옷이며 가방이며 홀딱 젖어버렸다. 그렇다는 말은, 가방 안에 있던 책까지...!  사실 읽으면서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아서 깨끗하게 읽고 중고매장에 내놓으려고 했는데 쫄딱 젖어서 책이 쭈글쭈글해져 버렸다. 그렇게 그 책은 중국 상하이 공항의 공기를 품고, 발리의 뜨거운 햇살을 받고, 발리의 노을 진 바닷물을 품은, 조금은 짭짤한 책이 되었다.


 나는 어떤 책의 생애이고 싶을까? 내 책장에는 내가 정말 좋아해서 '훈장처럼' 수집해 둔 책도 있다. 물론 누군가의 애정을 받으며 누군가의 자랑인 생애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발리에 데려갔던 책처럼 이런저런 공기를 맞고, 가끔은 생각지 못한 파도에 덮쳐지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따스한 햇살을 쬔 순간도 간직하고 있고 아름다운 노을이 내려앉았던 바다를 품은 그러한 책의 생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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