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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채 Apr 14. 2024

내 시간을 내가 설계하는 기쁨

2024년 4월 2주 차

 내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내 생활은 이러했다. 학교, 집, 학교, 집.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집에 와서 숙제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봤고 주말에도 집에서 숙제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했다. 나는 이 생활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엄마 눈에는 이런 내가 친구가 없나 걱정스럽게 비췄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걱정 끝에 나에게 친구들한테 학교 끝나고나 주말에 놀자고 먼저 연락 같은 걸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었다. 그전까지 내 생활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하자 '그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도 내 생활이 이상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려면 응당 그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여전히 왜 그래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진 채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입학한 후로 약 20년도 더 지난 지금, 회사를 잠시 쉬며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아주 긴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이 약 두 달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문득 사람을 좀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고 들어왔다. 그래서 일회성으로 함께 하는 봉사활동에 신청하여 다녀오긴 했다만 사람들과 어울리진 않고 정말 일만 하다가 왔다.


 사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게 정말 진심으로 내켜서 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이렇게 말하니 친구 한 명도 없는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일 것 같은데, 그래도 마음 맞는 친구들도 꽤 있고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과 있을 때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내왔다. 단지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필요로 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극 내향인이라고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내향인들을 꽤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근래에는 mbti가 대두되면서 내향인들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느낀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오로지 내가 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지, 무얼 먹을지뿐만 아니라 언제부터 언제까지 할지까지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춰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내가 일을 잠시 쉬며 제주에 내려가 혼자 지내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거기서 혼자 대체 뭘 하느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혼자 지내며 모든 생활을 나에게 맞춰 설계하는 건 전혀 심심할 틈이 없다. 오히려 바쁘다면 바쁘다. 이렇게 내 시간을 내가 전부 설계한다는 느낌은 스스로에게 큰 효용감을 준다.


 그러니까 내가 이번 주에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고자 한 건 사실 나 스스로는 왜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야 하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그랬던 거였다. 그러니 그 순간에 약 20년도 더 전의 기억이 떠올랐던 거겠지. 어릴 때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몇 번 약속을 잡는 둥 하였다가 결국 원래대로 학교와 집을 반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당분간은 내 시간을 내가 전부 설계하는 생활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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