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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채 Jul 08. 2024

유전자의 순환

2024년 7월 1주 차

 나는 어릴 적에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거의 확신을 했었다. 나에게서 아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외모부터 책을 좋아하는 것, 공부를 썩  하는 것까지 전부 엄마를 닮았다고 확신했다. 어릴 땐 숫기도 없고 꽤 새침하고 깍쟁이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모는 그런 나를 보며 지 엄마 어릴 때랑 똑같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줄곧 엄마와 아주 닮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어느 날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거울에 꽂혀있는 증조외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더욱 확신했다. 증조외할머니의 얼굴은 도플갱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나와 너무 닮았었다.

 "엄마, 나 증조외할머니랑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이 말을 들은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까지 모두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엄마는 종종 나에게서 친가 쪽 모습이 보인다고 하곤 했는데, 주로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친할아버지를 닮아서 이마가 너무 넓다거나, 피부에 뾰루지라도 올라오면 그런 게 고모를 닮았다거나, 가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면 답답한 게 아빠랑 비슷하다거나, 이기적인 태도를 보일 때면 친할머니랑 똑같다고 쏘아대곤 했었다. 내가 친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좋지 않은 이야기들만 듣다 보니 친가를 닮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었다. 그럴수록 나는 엄마를 더 닮았다고 악착같이 생각했었다. 그리고 엄마를 닮았다는 걸 증명하고자 공부에 더 매달렸다.


 그러던 중 아빠는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제주로 내려가서 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제주에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무작정 내려갔다. 한 번은 남동생이 제주에 내려가서 아빠랑 열흘 정도를 보내고 왔다. 아빠는 잘 지내는 것 같은지 물으니 육지에 있을 때보다 제주에서가 더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제주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빠를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육지에서는 항상 근심 걱정으로 일그러져 있던 아빠 얼굴이었는데 오랜만에 본 아빠 얼굴은 시간의 흔적은 있었지만 남동생 말대로 더 평안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서, 나도 나름 직장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여윳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를 닮은 건지 돈을 꽤 착실하게 모을 줄도 알았다. 이런저런 비용과 저축할 금액을 제외하고 남은, 정말 여유롭게 쓸 만한 돈이 모이기만 하면 제주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일, 그다음엔 10일 그리고 틈 나는 대로 들락날락.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제주를 오갔다. 처음에 5일을 혼자 떠난다고 할 때만 해도 엄마는 걱정을 했지만 횟수가 반복될수록 점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 역시도 처음엔 두려움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짐을 싸고 푸는 데 대한 귀찮음만 남았고 언제 제주도로 날아갈까 그 틈만 엿보고 있다가 조금의 틈새만 생기면 바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이럴 거면 아예 제주에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있기 때문에 그걸 믿고서 결심한 건 아니다. 그렇게 수없이 제주를 오가면서도 아빠를 만나기 위해 간 적은 없었다. 그저 육지가 너무 답답할 뿐이었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도, 아무리 나를 채우고 채워도 끝없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없는 것도.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빠를 아주 많이 닮았다는 것을. 그렇게 수없이 제주를 오가며 점점 아빠를 이해해가고 있었다. 아빠 역시도 육지에서 숨 가쁘게 흘러가는 것들이 답답했던 것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빠는 동네가 좁은 제주에서 사람들과 오손도손 지내는 게 좋았을 것이고, 넓은 하늘과 바다와 길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제주 왕복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내가 아빠와 너무 닮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는 엄마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오기 때문에 아빠와 닮았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에게서 아빠의 성향이 훨씬 짙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의 모습도 담고 있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든가,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조금은 더 계산적이고 계획적이라든가 하는 모습들. 그러니까 나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아주 고르게 섞여 있다. 이렇게 부모의 유전자는 순환한다. 이제는 애써 나에게서 둘 중 누군가의 모습을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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