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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18. 2020

dissolve

고양이는 나를 한번 흘깃 바라보더니 이내 먹을 것 앞으로 시선이 고정된다. 쉴 새 없이 먹기 시작한 고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사람 애간장 태우는 법을 알고 있나 보구나" 그 순간 우리 곁을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에 고양이는 흠칫 놀라 주변을 경계한다. "걱정 마. 지나가는 차일 뿐이야. 그리고 내가 있잖아"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먼 곳을 바라보며 경계를 한다. 주변이 다시 어두워지고 나서야 먹기를 시작한다. 나는 잔디밭에 주저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자유로운 삶이 좋은 걸까.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어디서 잠을 자고 무엇을 먹으며 지냈을까. 이렇게 정을 주다가 어느 순간 '젤리'처럼 사라져 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바닥을 드러내자 고양이는 이제 괜찮다는 듯 먹던 행동을 멈추고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더니 주저앉은 나의 무릎 사이로 들어온다.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놀라 '어'하는 외마디를 던지고 말았다. 당혹감 사이로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 같아 안도감이 밀려든다. 지나가는 누군가 보면 내가 고양이의 주인이라도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양이는 경계심을 풀고 나의 품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누워 나를 바라본다. 그것은 마치 내가 건넨 마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라도 되는 것 같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 후로 한 달 동안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이제는 편의점이 아닌 인터넷에서 더 다양한 사료들을 주문해 놓은 뒤 밤 산책을 가듯 하나씩 챙겨 나간다.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항상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까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행히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인다. 

"포도야 오늘 하루는 어땠니? 괜찮은 하루였니?" 포도는 나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다. 

고양이의 이름을 포도로 정한 이유는 '젤리'와 닮아있기 때문에 동일한 이름을 지어줄 순 없겠지만 젤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포도맛 젤리'를 떠올리고 이름을 '포도'로 정했다. 처음에는 '포도'라고 부르자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매일 반복되는 이름으로 부르자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호칭이 익숙해진 것인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포도'야 이 정도면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네가 밖에서 사는 일도 정말 멋지고 좋은 일이겠지만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래." 

이주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나는 반복되는 질문을 포도에게 건넸다. 물론, 포도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순 없겠지만 포도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말을 꺼낼 때마다 무심한 듯 고개를 돌리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직은 거리에서의 생활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품에 안겨 자신의 볼을 비비는 포도에게 말했다. "포도야" 나를 바라본다. "잘 들어. 내일부터 삼일 동안은 먼 곳에 다녀 올 예정이야. 그렇기 때문에 삼일 동안은 나를 보지 못할 거야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친구에게 잘 부탁해두었거든 네가 사료를 먹으러 올 수 있도록 이 시간에 와달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료 먹기를 거부한다거나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어 알겠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다.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금방 다녀올게 그리고 나와 하나만 약속해주지 않겠니? 잘 다녀오면 우리 집에 가기로 말이야" 포도는 작은 입을 통해 소리를 낸다. "혹시 그 소리를 알겠다는 말로 알아들어도 괜찮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할게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새벽부터 일어나 출장을 가야 하거든" '포도'는 나의 말을 듣고 품에서 벗어나 서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나를 보며 인사를 하듯 소리를 낸다.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삼일 뒤에 보자는 말을 했다. 

집으로 들어와 짐을 정리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사진 보낸 거 봤지? 경계심을 드러내는 게 강해서 앞에 안나타 날 수도 있는데 사료는 내가 말해두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 두고 와야 해. 아, 그리고 혹시 나타나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줘. 내가 있을 땐 안심을 하고 먹었는데 없으면 경계를 하느라 제대로 먹을지도 모르거든. '포도'에게 네 사진을 보여줬어 이렇게 생긴 친구가 올 거라고" 친구는 나의 말을 듣고는 알았다며 웃어 보인다. "그렇게 걱정되면 진작부터 집으로 대려오지 그랬어?" "물론 마음은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아직은 원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거든. 어쩌겠어 본인의 마음이 그렇다는데 강제로 대려올 수는 없는 일이잖아" 친구는 정말로 고양이와 대화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냐며 나의 말에 의문을 더한다.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 급하게 정리했다. "아무튼 다녀오면 내가 맛있는 밥 살게 고마워" 

다음날 새벽부터 출발한 일정 때문에 하루 종일 피곤함에 찌들어있다. 업무를 마무리하고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열 시가 넘은 시간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눕고 말았다.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난 시간은 밤 열한 시 반을 넘어가고 있다. 급하게 핸드폰을 바라보자 친구에게서 부재중 통화가 찍혀있고 메시지가 함께 와있다. 곧바로 메시지를 확인하자 "기다려도 안보이길래. 두고만 가려고 했더니 어디선가 나타나더라고. 나를 한번 흘깃 보더니 익숙하다는 듯이 먹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맛있게 먹으라고 했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더라고. 마치 알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는 이상하게도 정말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어 포도는 다 먹고 잠시 동안 머물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메시지를 읽고 안도감에 웃음을 드러냈다. 

다음날은 첫째 날과는 다르게 더욱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저녁을 먹는 도중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핸드폰이 꺼지고 말았다. 특별한 연락 올 일이 없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른 분들과의 식사에 집중을 했다.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이제 막 자정을 넘겨 있다. 샤워를 하러 가기 전 핸드폰을 충전했다. 침대 워 누워 충전해두었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친구에게 부재중 통화가 찍혀있고 메시지가 와있다. 메시지를 눌러 읽는 순간 나는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삼십 분 동안 기다렸는데도 오늘은 포도가 나타나지 않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간식을 두고 왔어. 바쁜 일이 있었나 보네"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삼십 분 동안 기다린 거 맞아?" 친구는 나의 말에 "속고만 살았나, 어제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되더라고. 그렇게 삼십 분을 보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어. 걱정하지 마. 어차피 길 고양인데 하루정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무슨 일 생겼겠어? 나 피곤해 내일 통화하자." 친구의 말이 맞다. 어차피 '포도'는 길고양이다. 하루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큰일이 생긴 거라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무척이나 피곤하다. 내일만 보내면 돌아가니 사서 걱정을 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날 업무를 마무리하고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친구에게 오늘은 조금 더 일찍 가서 간식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귀찮다는 친구의 말에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내가 정말 약속할게 비싼 밥 사겠다고" 친구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장소에 가면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친구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먹긴 먹었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도'가 먹은 게 아니라 확인을 하러 갔는데 다른 고양이가 와서 먹고 있길래 쫓아낼 순 없으니까 그대로 보고 있는데 나를 보고는 도망가더라." 무슨 일이 생긴 걸까라는 걱정이 밀려든다.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안 나타난 적이 없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너무 걱정하지 마. 오늘은 나타나겠지" 숙소에 들어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열한 시가 다되어가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도착했어?" "응 기다리고 있어. 나타나면 다시 전화할게" 짧은 통화가 끝나자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시간은 이미 열한 시가 넘어있다. 십 분이 더 흐르고 메시지가 왔다. "오늘도 나타나지 않네, 이상하네 정말 한 번도 안 나타난 적이 없는 거 맞아?" 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한 번도" 친구는 내게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며 간식을 두고 가겠다는 말을 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가고 싶지만 그것은 욕심에 불과했다. 

다음날 오전 기차를 탈준비를 하고 있을 때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니 어제 그렇게 두고 가니까. 괜히 신경 쓰이더라고 그래서 주말이기도 하고 아침부터 와서 확인하는데 그대로 있더라. 그냥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친구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기차역에서 내리자 곧장 택시를 타고 향해갔다.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자 포도는 역시 보이지 않고 이름 모를 고양이들 여럿이 나타나 간식을 먹고 있다. 나를 보고는 경계를 더하는 것 같아 그래 너희들이라도 먹어.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열 시부터 나가서 '포도'를 기다렸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며칠 동안 떠나 있던 게 서운해서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다녀온 뒤에는 우리 집에 가자는 말을 했기 때문에 나를 떠난 걸까, 라는 많은 생각들이 밀려든다. '젤리'는 예고 없이 나를 떠나갔다. 그런데 '포도'역시 예고 없이 나에게서 떠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떠나간 것인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떠났다는 생각을 해야 나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미 시간은 새벽 한 시를 넘어가고 있다. 텅 비어 있는 자리에는 제 할 일을 잃은 것 같은 사료만이 보일뿐이다.    

캔을 가만히 바라보다 언제까지 이렇게 머무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해갈 준비를 했다. 캔은 그대로 두고 가기로 했다. '포도'는 아니더라도 다른 고양이가 찾아와 먹을 수 있게 말이다. 몇 발자국 걷다 괜스레 뒤를 돌아봤다. 혹시라도 나타나 먹지는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렇지만 나의 기대는 역시나 빗나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을 덜어내기 위해 뒤를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정면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뒤를 보며 천천히 걸어 나아갔다. 우리가 함께 머무르던 장소가 보이지 않을 때쯤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걸으려고 했지만 내 앞에 나타난 누군가와 부딪히며 넘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당황스러움이 밀려들었다. 분명 방금 직전까지 내 뒤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앞으로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상대방 역시 내가 앞에 있었다는 것을 보지 못한 듯 반대편에 넘어져 이마를 짚고 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똑바로 봤어야 하는 건데" 작은 목소리지만 분명한 의사로 상대방은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모자를 쓰고 있어 상대방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스러움이 지나가자 밀려드는 아픔을 뒤로한 채로 일어나 상대방에게 가까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잡고 일어나세요." 상대방은 잠시 동안 머뭇거리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난다. 자연스레 고개를 들자 상대방이 얼굴이 보인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 어린 나이라기보다 어려 보이는 나이라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같은 말을 했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다 말하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의 손바닥은 살갗이 벗겨져 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 "그런데 손이,," 상대방은 나의 말을 듣고 그제야 자신의 손바닥을 살핀다. 당황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별일 아니라며 말한다. 정말 괜찮아서 일까, 아니면 괜찮은 척을 하는 걸까.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상대방을 바라보려니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구분할 수가 없다. 상대방은 가던 길이 있어 이만 가보겠다며 나를 앞질러 나아간다. 그 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특이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포도'는 정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거실 한편에는 사놓은 사료 상자들이 보인다. 우리는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건네던 말들에 알겠다는 식의 답변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며칠이 지난 뒤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땐 우리 집에 가자던 말에 동의를 하는듯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릴 적 '젤리'가 집을 나가고 한동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함께 살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그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서로의 연락처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그게 어렵다면 편지라도 좋으니 주소 하나쯤 받아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포도'역시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우리 집에 가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이런 식으로 만나는 일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매일 나타나지 않아도 좋으니 어딘가로 떠난 거라면 또는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한 통이라도 받아볼 수 있다면. 

이 모든 생각들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상상의 어디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주말 동안은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만 보내며 밤이 되면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가 '포도'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더한 채로 집에 돌아오는 일들의 반복을 할 뿐이었다.

그 후로도 일주일 동안은 같은 일들이 지속되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사놓은 고양이 사료가 꽤 있는데 가능한 시간 말해주면 가져다줄게" 수화기 너머로 친구는"고양이도 키우지 않으면서. 그런 건 왜 사다 놓은 거야?" 나는 그런 일이 있다며 적당한 말로써 둘러댔다. "만나면 이야기해줄게" 내일 저녁 시간이 된다고 말하자 "그럼 내가 퇴근하고 챙겨서 갈게" 다음 날 저녁, 친구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를 경계하는 듯하면서 쳐다본다. 친구는 내손에 들린 상자들을 받아 한쪽에 내려놓는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산 이유가 뭔데?" 친구는 한참 동안 이어진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어디로 간 줄도 모르고 네가 며칠 자리를 비우는 사이 사라져 버렸다는 말이지?" "맞아. 딱 그 상황이지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어쩌겠어. 찾을 수도 없고 며칠 동안은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기다려보기도 했는데 이 정도쯤 되니 어쩌면 그럴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너에게 건네주려고 온 거고" 내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 두 마리의 고양이는 소파에 앉아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마치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된다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는 살며시 고양이에게 다가 말을 했다. " 어때? 너희들 생각에는 '포도'가 다시 돌아올 것 같니?" 몇 번의 반복되는 질문을 했음에도 시큰둥한 표정은 변하지 않을 뿐이다. 이내 내가 귀찮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린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도 이야기를 하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인사를 하고 나와 시간을 확인해보니 밤 열 시가 넘어 있다. 서둘러 주차를 해둔 골목가를 향해 들어갔다. 차의 문을 열고 타려는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온 고양이가 재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간다. 잠깐 동안 벌어진 일에 멍하니 고양이가 사라져 버리고 없는 곳을 응시했다. "넌 어딜 그렇게 바삐 향해가니" 대답 없는 질문은 허공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만다. 저녁을 먹었음에도 허기가 지는 바람에 주차를 해두고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원은 나를 알아보더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한동안 안보이시길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신 건가 했어요" "네,, 어쩌다 보니"짧은 말을 덧붙이며 멋쩍은 웃음을 더했다.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사이 점원은 말을 건넨다. 새로운 고양이 사료가 들어왔는데 단연 판매 일위라면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의 시선이 옮겨지자 고양이 사진이 붙어있는 캔들이 보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다가 "고양이 모델이 참 예쁘네요. 그런데 이제 구매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먹을거리를 계산하는 사이 점원의 머뭇거림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는 말을 건넸다. "무슨 할 말 있으신가요?" 점원은 자신의 속마음이 들켰다는 듯 흠칫 놀라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 혹시나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요." 재빠르게 말을 했다. "아니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아마도,, 잘 지내고 있겠죠." 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 이야기를 하면 길어질 것 같아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릴게요." 점원을 알겠다며 웃는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나아가다 멈춰서 뒤를 돌아 말했다. "그런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흔쾌히 웃으며 말하는 이를 보며 나 역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제가 어릴 적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어요. 긴 세월을 보내기도 했고요. 집 문을 열어 놓는 일들이 자주 있었는데 열린 문을 통해 고양이가 자주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했어요. 마치 볼일을 보러 나가고 또 볼일을 마치고 오는 사람처럼요. 처음엔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가족들 모두 신경을 쓰지 않았죠. 고양이가 사라지던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볼일을 마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한동안은 정말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어요. 결국 돌아오지도, 찾지도 못했지만요. 그 후로는 그래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무슨 일이 생겨서라기 보다 집에 있는 것보다 밖의 세상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요즘은 오래전일들이 떠오르면서 자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돼요. 정말 잘 지내기 위해 나간 걸까, 그래서 돌아오지 않았던 게 맞는 걸까." 

잠시 동안 이야기를 멈췄다.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제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서둘러 나가려던 모습에 등 뒤에서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가족 같은 고양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괜스레 흐뭇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까지 찾지 못함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 손님이 생각하는 게 맞을 거예요. 바깥의 세상이 더 좋아졌을 뿐이겠죠. 고양이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잖아요. 저도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한 번씩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만큼 특이하기도 하고 뭐랄까, 그렇기에 더 마음이 가는 거겠죠?" 점원의 말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웃음으로 고맙다는 답을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래 '젤리'도 그리고 '포도' 역시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매일 지나가는 거리임에도 늦은 밤 이 길을 지나갈 때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서 캔을 하나 꺼냈다. 결국 점원에게 영업을 당해서 라기보다. '포도'가 아닌 다른 길고양이가 와서라도. 마음 편히 먹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길고양이들을 마주치던 장소에 캔을 두고 왔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다시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에는 얼마 전 길거리에서 나와 부딪혀 넘어졌던 사람을 만났다. 먼발치에서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내 가까워져 가자 머릿속에서는 어디선가 분명 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더니 나를 스쳐갈 때쯤 그날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재빠르게 누군가의 등 뒤에 대고 말을 했다. "저기요" 상대방을 놀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분명 그 사람이 맞았다. 복장은 그때와 똑같이 단조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이쯤에서 부딪혀서 넘어졌었는데" 그제야 상대방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더니 기억난다는 듯 한 표정을 짓는다. "손은 괜찮아 지신 건가요?" 상대방은 짧은 대답을 한다. "네, 괜찮아요" 그 말에 멋쩍은 듯 "아, 다행이에요. 갈길이 바쁘신 것 같은데 괜히 붙잡은 것 같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상대방은 나의 말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나간다. 

그날도 느꼈지만 여전히 특이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늦은 밤 길을 나서는 걸까. 약속이 있는 것 같은 복장은 아닌 것 같았는데, 물론 내가 상관 할바는 아니다. 

씻고 나오자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와있다. "정말 괜찮은 분이 있는데 저 한번 믿고 만나보시죠" 무시를 했다가는 분명 끈질기게 연락이 올게 뻔하다. "무슨, 됐어." 그러자 곧장 답장이 온다. " 아 또 그러신다. 정말 이라니까요. 제가 형 칭찬을 얼마나 했는데" "너 내 이상형 알지? 그 정도 아니면 나는 만나볼 생각 없어" 몇 분이 지나고 전화가 걸려온다. 반복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끝내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통화를 종료한다. 나의 이상형은 확고하다. 주변에서는 이러다 만나지 못할 거라는 말들을 더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정해 놓는다기보다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기 위해 정해놓았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런 상대방을 기대하고 꿈꾸기도 한다. 

몇 달 전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사람이 어떻게 외모나 겉면으로 보이는 것 만으로 전체를 판단할 수 있겠어?" "물론, 나도 잘 알아. 그런데 어쩌겠어 보이는 게 전부인 것은 사실이잖아?. 나는 그렇게 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야. 너도 느껴본 적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처음 본 순간 느끼는 감정 같은 게 있어. 아, 이 사람은 정말 이성적으로 느껴진다. 그게 아니라면 친구일 뿐이다. 이렇게 나뉘는 거지. 그 이외에 어떤 감정들도 필요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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