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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ug 26. 2022

죽음,

10.


빔프로젝터를 받을 수 없다는 팀장님과의 실랑이 끝에 식당 한편에 설치를 할 수 있게 됐다.

나의 서툰 거짓말이 드러나서였을지도 모른다.

주말이 지난 뒤 배송된 제품의 겉 포장만 제거한 채로 가져갔다.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연습해두었던 말들은 잊은 채로 아무 말이나 하고 말았다. 오래전에 사두었는데 잘 안 써서 가져왔다는 나의 말과는 다르게 제품 출시일이 비교적 최근이었던 것이다. 곧바로 모델명을 검색했던 수진 씨는 값이 꽤 나간다는 사실을 팀장님에게 알렸고 봉사활동을 해주는 일이 나의 역할이지 사비를 들여 무언가를 살 필요는 없다며 거절을 하던 분에게 진심을 담은 거짓을 말했다.

"저는 멀리 떠나잖아요. 그럼 이곳에 다시 찾아올 수 없을 수도 있고 두 분 그리고 할머님들 또한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죠. 이렇게나마 제가 이곳에 함께했었다는 것을 기억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그뿐이에요. 다른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제게 주는 고마운 마음에 대해 표현한 적도 없고 어떤 식으로도 말할 수도 없겠지만 그에 비하면 분명히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받아주세요. 남은 기간 동안 할머님들이 더 행복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럼 저도 행복할 것 같거든요."

두 사람 모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할머님들은 설치된 빔프로젝터를 통해 큰 화면 안에 트로트 가수들이 나오는 방송을 시청하며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드라마를 보며 감정이입을 하고 영화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을 뒤편에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죽기를 다짐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토록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말한 계약 조건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기증을 받는 이들의 조건이라지만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어쩌면 그들은 건강한 육체뿐만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라면 모두 느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감정을 공유하는 이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11.


"하지야 네가 식당에 이렇게 좋은 걸 설치해주었다고 들었어. 참 고맙고 고마워, 덕분에 할머니들이 호강을 하는구나 우리는 해주는 것도 없는데 말이지."

"아니에요 해주시는 게 없다니요 아주 많아요. 전 매일 퇴근길에 기분 좋은 마음을 가득 담아 가는걸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말도 잘하네 참, 우리 하지는 만나는 사람 없어?"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게 됐다. 그것은 떠나간 연인들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애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막 대학에 들어간 스무 살 무렵, 삼 개월의 짧은 연애가 전부이다.

웃으며 말했다."없어요. 아마도 제 매력이 부족해서겠죠."

그러자 할머니는 "행여나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아 부모님이 들으면 속상하시겠어."

"할머니, 할머니 자식들에 대해서 들려주실 수 있어요?"

모르겠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한 건지는 말을 뱉고 나서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 모이는 분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이야기 안 해주셔도 돼요."

"뭐가 그리 싱거워 남자가 그래서 되겠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말았다. 그리고 몇 초간 침묵이 이어졌다.

할머니는 식당 의자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날이 참 좋다. 그렇지?"

"맞아요. 실내에 머무르기 아쉬울 정도로요."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는다.

" 내 나이가 지금 칠십이 넘었으니 그때 이후로 벌써 몇십 년이 흘렀구나, 맞아 지금처럼 날씨가 화창한 여름이었어. 우리 가족은 휴가차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 남편은 일 년 내내 일만 하는 사람이라서 휴가 때만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줄 순 없겠냐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 처음으로 승낙을 했어. 떠날 생각에 어찌나 설레던지 지금도 그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야"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이어나간다.

"아들     명을 낳았어.   차이였는데 오빠가 동생을 아주  챙겨줬어. 보고만 있어도 정말 았지. 여행 당일날 새벽부터 김밥을 싸고 짐을 챙기느라 집을 나서기 직전에야 이웃집에서 물놀이 용품을 빌리려던  생각나지 뭐야, 그래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한다고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서 집을 나섰어. 오분 거리였거든"

할머니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의식한 것인지 "하지는 지금 질문을 했더니 무슨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나 싶지?"

"아니에요. 재밌었겠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봤는데 바다에 가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계속 들려주세요"

"그러게,, 바다에 갔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지."

빗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창밖을 바라보자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고 햇살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쉽지만 못 갔어 바다에는,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남편은 나를 태우고 바로 출발하겠다면서. 짐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어.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지. 졸음운전을 하는 트럭에,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는데 아이들은 가는 도중에 남편은 도착 직후에 떠났어. 사랑하는 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고통보다 내가 미리 빌려왔더라면 아니 적어도 이웃집에 들러서 받고만 바로 나왔더라면 뭐가 그렇게 이야기할 게 많았다고 머무르고 있었을까 조금만 더 일찍 출발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후에는 거의 반죽은 사람처럼 몇 년을 보냈어, 일도 못하고 주변에서는 이러다 나까지 죽겠다고 정신 차리라고 하는데 어디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겠어,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쫓아다녔으니까.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져갔다. 이런 상황에는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눈물을 닦아드려 볼까 휴지라도 건넬까 잘 모르겠다. 이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정말 미안하구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좋은 이야기만 해줘도 모자랄 텐데 늙으면 이렇게 별말을 다하게 된단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투박함이 느껴졌다. 거칠고 굳은살이 손마디 사이마다 잡혀 있다. 그러나 아주 따뜻했다. 그동안 마주한 그 누구의 손보다도 따뜻할 정도로.

말주변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지는 손이 참 크구나, 우리 남편도 손이 컸어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겨울이면 손이 시리게 하고 싶지 않다며 밖으로 나갈 때면 내 손을 꽉 잡고 다녔어. 그럼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온기가 닿아 참 좋았어. 남편과 그렇게 말없이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때면 알 수 없는 미래라지만 꽤 괜찮을 것이라 여겼단다.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가족들과 함께라면 말이지."

"그래도 좋은 기억이죠? 남편분과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은, "

소매로 눈물을 닦고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럼 지금 살아있는 것도 그런 기억들 때문이지, 그래 말을 이어해 보자면 죽으려고 시도를 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럴 때마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 그렇게 죽으면 가족들이 슬퍼할 것만 같았거든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몇 번이고 실패했지. 어느 날은 꿈속에 남편과 아이들이 나오더니 아주 행복한 얼굴을 하고서 슬퍼하지 말고 자신들의 몫까지 온 힘을 다해 살아주면 좋겠다는 거야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것들까지 다해서 그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꿈에서 깼을 땐 허무함이 느껴졌지. 결국 현실은 홀로 남게 된 나였으니까. 그리고 거울을 보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초췌하고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 그때부터였어 더 이상 이런 모습으로는 먼 훗날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당당하지 못하겠구나 그래서 정신을 차렸지. 힘들지만 버티고 버텨서 열심히 살아왔어. 이곳에 오기 몇 년 전 평생 동안 모은 돈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전부 기부를 했어. 이 늙은이 사진을 찍어 뭐하나 싶지만 고맙게도 지역 신문에 기사까지 실어주더라고, 우리 팀장님이 그 기사를 보더니 내게 연락을 해온 거야. 이제 남은 생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모여 즐겁게 살아가자고. 참 좋은 사람이야 수진이도 그렇고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갖고 있지만 함께 함으로써 조금씩 즐거움을 더해가며 살아간단다. 하지야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단다. 젊은 네가 외국으로 떠난다니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그곳에 가서도 할머니 생각이 나면 그러니까 아주 가끔씩이라도 안부 전화를 해주면 좋겠어. 늙은이 주책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줘, 처음 널 보았을 때 선한 눈빛 너머로 무언가 모를 슬픔이 가득 차 보였어. 마음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는데 지금의 네 눈을 보면 슬픔보다는 행복함이 더 많아 보이는구나. 처음부터 슬픔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또 무언가를 품고 있지 않는다면 그래서 내 생각이 틀렸다면 오히려 더 좋겠지."

마음이 들켜서 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느껴본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적응을 하지 못해서일까 바닥으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곧바로 닦아보지만 또 한 방울 흘러내린다. 할머니는 나를 감싸 안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십 년도 아니다. 일 년은 더더욱 아니다. 겨우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불과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에 슬픔이 느껴졌다. 안부 전화를 하겠다고 예쁜 사진을 보내겠다고 말하는 나의 입술이 떨려왔다. 기약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파온다.

내일이면 이곳의 봉사활동도 마무리가 된다. 특별한 일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고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왔으며 대부분 반복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가까워진 지금 내게는 모든 날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지야 별건 아닌데 받으렴"

할머니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흰 봉투가 반으로 접혀 있다.

"큰돈은 아니고 십만 원이야 공항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별것도 아니라 창피하니까 어서 받아"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주머니에 봉투를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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