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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Sep 02. 2022

죽음,

12.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일기예보에선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우산을 챙겨 나오자 어느새 비는 개어있었다. 마치 나를 두고서 장난이라도 치는 듯이 햇살은 눈부시게 빛이 났다. 

몇 년 전 방송에서는 비와 관련된 신기한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시골마을에 비가 내렸다. 그러나 마을의 절반에만 비가 내린 것이다. 반은 햇살이 비추는 일들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다행인 것은 비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주 가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지속됐다.  

기상학자들을 비롯해 관련 기관에서는 조사를 하기 위해 시골 마을을 찾아왔지만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갔다고 했다. 삼일 동안 지속된 비는 모두가 잠든 밤 끝이 났다. 이튿날 아침 마을엔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점차 기억 속에서 잊히고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일이 있고 난 뒤 방송사에서는 후속 취재를 위해 몇 달이 지나 마을에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줄 곧 이 마을에 살았다는 한 노인과의 인터뷰에서 노인은 그런 말을 했다. 

살다 보니 별일을 겪는다고 비가 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작은 마을에 방송사들이 찾아오고 살아생전 그렇게 많은 카메라가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봤다는 노인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인터뷰는 그대로 방송에 나왔다.

어쩌면 긴 인생을 살아오며 다양한 경험을 했을 노인에게는 단순히 비가 오고 그치는 것처럼 정말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노인에게 방송에 나온 기념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런 말을 했다. 

살다 보니 방송에도 나오고 참 오래 살고 볼일입니다. 십 년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주는 자식들이 있어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날에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방송에도 나왔다고 자랑을 해야겠습니다.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여기 찾아와 준 선생님들도 모두 건강하십시오. 이 정도면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땐 방송을 보며 나 역시 먼 훗날 알 수 없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지금과 같은 순간들이 펼쳐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도 알 수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주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 기억 속에 모습은 현재가 마지막으로 남게 된다. 중년 나아가 노년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상상 속에 남아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할머니와의 대화 속에서도 그렇고 자꾸만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은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곤 한다.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더 이상 빚에 쫓기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잠시 빌리고 있는 끝에 가서는 이 모든 것들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뿐이다.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한없이 놓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있는 힘껏 다해 붙잡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선택을 번복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백일 사이에 살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하루빨리 임무를 완수하듯이 끝내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집 밖으론 나가지 못한 채로 암담한 인생을 살며 하루하루 망가져 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필요 없다. 잘한 선택이다. 자꾸만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말이다. 

하차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을버스 기사님과는 몇 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 사이게 됐고 

만나게 될 때마다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내릴 때쯤엔 남아있는 사람은 늘 나 혼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다른 기사님들과는 똑같이 몇 번을 마주했지만 이런 사이가 되지는 못했다. 봉사활동 절반이 지난 시점 기사님은 내게 대뜸 질문을 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외국으로 떠나기 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평일엔 매일 찾아간다고 말하자 기사님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멋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 마지막 날 기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한 달 동안 고생했어요. 못 보면 어떡하나 했는데 이렇게 인사를 할 수 있게 돼서 좋네요. 외국 가서도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히 지내요. 살아생전 비행기 타본 건 제주도가 전부인데 외국은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면서요. 나는 힘들어서라도 못 가겠네, "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기사님 건강하시고 운전 조심하세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

버스에서 내리자 기사님은 경적을 한번 울리는 것으로 다시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언덕 너머로 빠르게 나아갔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버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 곳곳에는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고 그 누구도 믿어서도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요즘은 악몽을 꾸지 않는다. 새벽녘 깨어나는 일도 없다. 햇살과 마주하며 눈을 뜨는 일들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팀장님은 퇴근 준비를 하던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내일이면 마지막 출근이네요. 시간이 정말 빠르죠?"

"네 첫날 어색하게 이곳에 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말수도 없어 보이고 어르신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큰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꼭 많은 대화를 나눠야 깊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깨닫게 됐어요. 제가 선 해 보인다고 했던 말 기억하죠?"

"그럼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요 그 말을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함께 있으면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어요. 뭐랄까,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왜 그런 경우 있잖아요. 적막이 흐르면 어색해지고 괜히 불안한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도 함께 있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전혀 들지 않아요. 갑자기 퇴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말해주는 건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말라는 거예요.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의 가치를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한없이 약해 보이고 어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힘이 있어요. 마치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말을 듣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일까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에 불과할 뿐인데,,'

"잊지 않고 잘 기억할게요. 그리고 이곳에서 보냈던 일들도요."

담담하게 대답을 하는 나를 보더니 팀장님은 미소를 짓고 내 어깨를 한번 쓰다듬는다. 

"우리도 잊지 않을 거예요.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긴 인생 중에 아주 짧은 순간으로 기억되겠지만 적어도 사랑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긴 순간으로 기억될 테니까요. 아주 조금은 더 살아본 제가 느끼는 삶이란 슬프지만, 매 순간이 행복하지만은 않더라고요. 말하고 나서도 생각해보니 많은 날들이 참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분명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아주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곳에서 우리가 만난 것도 그런 일들의 일부일 테니까요. 별말을 다 하느라 퇴근이 생각보다 더 늦어졌네. 어서 가요"


사랑의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동안 길 목에 놓인 집들을 또 나무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모든 것들이 한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왔다고 말해주듯이 담장을 하얗게 칠했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색이 바래져있다. 나무는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파랗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이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이런 일들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남겨두고 싶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마지막 순간을 정해두지 않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처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진 씨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삼일 동안 몸이 좋지 않아 출근을 하지 못했었다. 다행히 마지막 날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몸은 괜찮아요?"

"네 약 먹고 푹 쉬었더니 좋아졌어요 마지막 날이네요.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흐르다니 참 신기하죠?"

"그러게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요. 이런 말 하면 또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한 달 동안 큰 도움이 되어드린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가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말이죠."

"아니에요 잘했잖아요 한 달 동안, 할머님들이 칭찬을 얼마나 많이 했는걸요. 오늘도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간단한 대화를 끝으로 사무실을 나와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무거운 것들은 아래로 가벼운 것들을 윗 선반으로 올렸다. 상자는 상표가 보이도록 정리했다. 입원해있던 직원은 생각보다 빠르게 상태가 좋아져 일주일 전 퇴원을 했다. 

바로 출근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쉬고 출근하기로 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지만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찾아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한편엔 고마움이 남아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줘서.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창고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팀장님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큰일 났어요. 해달 할머님이 숨을 쉬지 않아요, "

급하게 창고를 나와 할머니에게 갔다. 주변에는 이미 다른 할머님들이 모여 있었다. 수진 씨는 나를 보더니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다. 

"지난밤 사이 돌아가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늦잠을 자나 싶어 깨우지 않았는데 평소와 다르게 너무 늦게 일어나는 것 같아서 가까이 가봤더니 숨을 쉬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알게 된 할머니는 담담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잘된 거지. 아주 편안하게 갔어,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더라고 할망구 무슨 좋은 꿈을 꾸길래 저러나 싶었는데. 아무튼 잘된 거야." 


"할머님 제 이름은 하지가 아니에요."

"됐어, 내가 하지라고 부르고 싶어. 예쁘잖아 '하지' 정 싫으면 안 부르고 뭐, "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싫은 건 아닌데요,,"

말끝을 흐리게 된다. 

"그럼 됐네"

당황스러웠지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 역시 따라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게 됐다. 

호칭을 정하고 난 뒤 며칠이 지난 뒤였다.

퇴근을 준비하던 중 할머니와 마주쳤다.

"해달 할머니. 저 이만 퇴근해볼게요.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밤 보내세요"

"우리 하지도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 챙겨 먹고. 할머니가 마중해줄까?" 

할머니는 저녁이 나오기 전 산책을 하고 싶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혼자 가도 괜찮은데 배웅을 해주고 나면 돌아갈 땐 혼자 가시잖아요."

"괜찮아, 이 동네에는 나쁜 사람도 없어. 다 늙은 노인네들뿐인데 뭐, "

일제히 웃고 말았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요. 할머니 이름은 참 특별한 것 같아요. '해 , '달' 해와 달 맞죠?"

"말 안 해도 척척 잘 알고 있구나. 우리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둔 이름이었어. 낮에 뜨는 해처럼 반짝이고 밤에 뜨는 달처럼 반짝이라고. 그렇게 매 순간 반짝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지어줬지. 생각해보면 사람은 이름 따라 살아간다고, 힘든 순간들이 존재했지만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는 부모님 얼굴도 기억이 잘 안나, 나도 그만큼 나이가 많이 들었으니까. 멀지 않은 날에 내 자식들, 남편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지금보다 더 오래오래 건강히 살아서 좋은 것들을 많이 보셔야죠."

"그런 소리 하면 못써, 이 정도면 충분해. 하고 싶은 것들도 다 이루었고 말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충분해,,"

힘차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약해져 갔다. 

어쩌면 자신의 살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이 정도면 됐어요. 그만 들어가세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해달 할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나 역시 할머니의 끝을 함께 했다.

영정 사진 속 행복한 얼굴을 한 채로 세상과 마지막 이별을 한 할머니는 화장을 한 뒤 납골당에 안치됐다. 


'

사랑의 집으로 나가는 마지막 날입니다.

정해진 사항들을 잘 지켜주신 덕분에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남은 기간 안내를 잘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추후 일정에 대해서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해달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별다른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떠나라고 한다면 나는 떠나야 할 것이고 다른 일정이 생긴다면 그대로 따랐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할머님이 정말 좋아하셨을 거예요. 그리고 한 달 동안 할머니의 표정이 늘 밝았어요. 덕분에 말이죠."

"제가 있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요 뭘, 할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못했더라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예요."

"이번이 두 번째예요. 함께하는 분을 떠나보낸 게 어르신들과 지내다 보면 당연히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걸 마음속에 품고 살지만 이전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네요."

익숙한 이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이다음엔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별이라는 것은 적응되지 않고 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할머님들은 잘됐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아 보였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수진 씨 그리고 팀장님 자꾸 말하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두 분 모두 잘 지내시길 바랄게요."

"기회가 된다면 외국으로 떠나기 전 한번 놀러 와요. 밥이라도 먹어야죠."

"그래요. 놀러 와요. 팀장님이랑 저랑 기다리고 있을게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을 내려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은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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