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용재 Sep 20. 2022

사이의

15.


보호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찾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는 위치였다. 버스에서 내려 큰 도로변을 따라 오분 정도 걸어간다. 그런 뒤 산으로 통하는 포장되지 않는 도로를 통해 십분 더 올라가면 보호센터가 나타난다. 이따금 길을 따라 올라갈 때면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을 맛보곤 한다. 그만큼 찾아오는 인원들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김없이 아침 일찍 배송된 과일을 먹고 식탁 위에 올려진 종합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공간을 정돈하고 집을 나선다. 오른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왼손으로 쇼핑백을 들었다. 안에는 강아지들에게 줄 간식들이 담겨 있다. 특히 푸름이에게 줄 특제 간식은 더 신경 써 준비했다.  

푸름이 다음으로 입양이 되지 않아 함께 긴 세월을 보냈던 구름이는 귀농을 하며 넓은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중년 부부에게 선택되어 입양을 갔다.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가 사라진 것에 마음이 허전해진 것인지 산책을 나가면 오래 있기를 좋아하는 녀석이 금방 돌아오려고 하는 모습에 나까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센터의 직원들은 나를 정말 잘 따르는데 입양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다가도 이내 몇 달 뒤 떠날 것이라는 말에 아쉬움을 드러내곤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기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점도 물론 크겠지만 그 뒤의 이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드는 생각은 아쉬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고 얼마 되지 않아 창밖 너머로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소방차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선가 화제가 난 것인지 차량들의 이동을 부탁하는 안내방송이 함께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귓가에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가 멈췄다. 핸드폰이 꺼진 것이다. 지난밤 충전을 잊는 바람에 배터리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었다. 궁금함에 검색을 하려던 시도조차 무산되고 말았다. 차량들 사이로 지나가는 소방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내 소리마저 들리지 않자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차벨을 누른 뒤 버스가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이는 나를 누군가 붙잡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쇼핑백을 가져가라며 내게 손을 내민다. 다른 생각을 하다 바보같이 두고 내리려던 것이다. 고개를 숙여 짧은 인사를 한채 버스에서 내렸다. 

초등학생 시절 내내 함께 다닌 가장 친한 친구는 육 학년 겨울 방학 캠핑을 떠나 화제로 숨지고 말았다. 부모님이 자리를 비우는 사이 난로를 작동시키기 위해 기름을 채워 넣다 그만 바닥에 과도하게 흘리게 되었고 무심한 듯 불을 사용하다 그대로 불이 번지게 됐다. 그 순간 당장 밖으로 뛰쳐나왔더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겁을 먹고 지체되는 사이 불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친구는 그렇게 떠났다. 같은 반 친구들은 다 같이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친구의 모습을 바라봤다. 자주 보았던 친구의 부모님은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아줬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쥐어짜 내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식에서도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됐다. 

친구의 부모님은 자식과의 추억이 담긴 동네에서 살 수 없다며 먼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와 친구가 가장 아끼던 장난감을 선물해주었다. 평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가장 부러웠고 탐이 나던 그 장난감이었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두 분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내손에 들린 변신로봇,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장난감을 갖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슬픔이 밀려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바깥의 추위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더욱 따갑게 만들었다.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떠난 것이 아니라 방학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나에게 캠핑에 대해 자랑할 것이라면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어디선가 나고 있을 그런 화제는 기억 속 저편 묻혀있던 오랜 기억을 꺼내게 만들었다. 

길을 걷는 사이 또 하나의 소방차가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포장되지 않는 길로 진입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놀라 있는 힘껏 다해 뛰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저 우연에 일치에 불과한 일들이 겹쳐져 나타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쁜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 같아.' 

익숙하게 펼쳐지는 모습들을 떠올렸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 그렇게 시작되는 평화로운 일상을.

어떡해서든 안정감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과는 달리 한 손에 들린 쇼핑백은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방으로 요동치고 있다. 

품에 안고 뛰어가려는 순간,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쇼핑백은 공중으로 붕 뜨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식들은 길바닥에 쏟아졌고 무릎에서는 통증이 느껴졌다. 곧장 일어서려고 했지만 통증 때문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내 바짓단 사이로 무언가 흘러내렸다. 붉은색이었다.

정신없이 손바닥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근처에 있던 간식들을 봉투 안에 주워 담았다. 가방 속에 넣어둔 휴지를 꺼내 급하게 상처부위에 대고 강하게 누르기를 반복했다. 한 손은 바닥을 짚은 채로 조심히 일어났다. 뛰어가고 싶었지만 걷는 것조차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절뚝거리며 길을 나아갔다. 보호센터가 가까워져 갈수록 아닐 것이라는 나의 기대감은 사라지고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발걸음이 멈추고 내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봤다. 

건물 한동이 불에 타고 있었다. 그곳은 대형견들이 지내고 있는 건물이다.

무릎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놀라서인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불을 끄기 위해 노력을 했다. 여기저기서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알아요? 구름이를 입양해갔던 중년부부 있잖아요. 푸름이랑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었대요.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곳에서 제일 오래 지낸 아이들이 누군가요? 하고 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푸름이를 보여주고 그다음 구름 이를 보여줬죠. 구름 이는 소형견이고 푸름이는 대형견이잖아요. 부부는 사실 대형견을 입양하고 싶었대요. 시골이니까, 무섭기도 하고 든든하게 지켜줄 그런 아이를 원했다면서요. 끝내 구름 이를 입양해가길래. 역시나 몸이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아내분이 몇 년 전 사고를 당해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됐대요. 사고 후유증 때문에 일상생활도 무너지고 마음이 점차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남편분이 이사를 결심한 거래요. 그런데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물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더 아프겠어요. 그래서 끝내 구름 이를 대려 간 거래요. 푸름이도 알고 있을 거예요. 자신이 몸이 불편해서 여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타까울 뿐이에요.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별은 생각지 못한 일이다. 아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작별을 전하는 것은 내가 되어야만 했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겠나 싶지만 그 어떤 동물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정해진 기간을 채우고 떠나면 그만이다. 어차피 떠나게 될 뿐인데 마음을 주고서 사라져 버린다면 또 한 번의 상처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푸름이는 줄곧 아무것도 아닌 내게 마음을 드러냈다. 마치 내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다시 걸음을 땐 것은 서있던 나를 발견한 직원의 부름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 것이라고 했다.

"대형견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미쳐 피하기 힘들었을 텐데,,"

조심스레 묻는 질문에 직원은 미소를 드러냈다. 

"아, 주말 동안 쉬시느라 몰랐구나. 어제 대청소를 하기 위해 대형견들을 다른 건물로 이동시켰어요. 

정말 다행이죠, 일정이 변경되었거나 하루만 늦게 이동시켰더라면 큰일이 났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아이들 보금자리가 없어져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임시방편일 뿐이지. 나머지 건물에 계속해서 수용할 수 없을 테니까요."

화제가 진압되고 잔재만 남은 건물 앞에 섰다. 

조립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불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짖는 소리는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적응되지 않는 건 동물들도 마찬가진 인 것 같았다.

 




   










 


이전 07화 사이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