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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18. 2022

오늘


19.


푸름이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던 길에는 단체 측의 연락을 받게 됐다. 


'첫 만남 시 언급했던 상호 신뢰에 대해 잊지 않고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잘 따라와 주셨습니다. 이번에 보내준 건강 수치 표 또한 매우 정상적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남은 시간은 불과 한 달이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의무적인 일들은 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제약 없이 수행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머지않아 다가올 만남에 대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들은 내게 반복적인 생활에 대해 지시를 한 것 이외에 건강수치에 대한 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 따라 매주 검사를 받고 확인을 받은 뒤 이상이 없다는 것을 제출했기 때문에 그들 또한 내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기보다는 지켜보는 것으로 대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달력을 확인해보니 삼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더 이상 그들의 지시에 따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도 또 새로운 공간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홀가분함이 느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처음 나에게 큰돈이 생겼을 때만 하더라도 가고 싶었던 여행을 가고 좋은 옷을 사 입고 비싼 음식을 사 먹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들은 내게 무의미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하게 잘 마무리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며칠 전 팀장님과 수진 씨에게 각각 연락이 왔었다. 시간이 된다면 떠나기 전 보고 싶다고, 너무 바빠서 아쉽지만 시간이 안될 것 같다는 핑계를 댔다. 만나면 내 마음이 요동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지막이라는 말은 내게서 많은 것들을 멀어져 가게 했다. 

엄마와 아빠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 찾아갔다. 

작은 공간 속 두 분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두 분 옆으로 나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슬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 슬픈 게 아니라 누구도 겪어보지 못할 귀중한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다짐했다. 쓸모없이 죽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들을 살리는 멋진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몇 년간 어느 누구에게도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각인시켜본 적이 없지만 적어도 두 달 동안 나를 마주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기억 속 한편에 나를 담아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두 분에게 짧은 인사를 끝 마치고 건물을 나서려던 순간,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습관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고개를 들자 노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부축이던 와중에 나와 부딪힌 것이다. 

"총각 미안해요. 우리가 앞을 제대로 보고 걸었어야 했는데, "

"괜찮습니다."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그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몇 발자국 걷다 뒤를 돌아보자 아내는 힘이 빠진 것인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남편은 그런 아내 곁에 가만히 서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구매했다. 그리고 되돌아 그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물이라도 드시면 조금 나아질 거예요."

두 사람은 놀라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남편이 먼저 물을 받아 고맙다 말하고는 뚜껑을 열어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고 진정을 취했다. 

"고마워요, 처음 본 노인네들을 신경 써줘서."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데요 뭘, "

잠시 침묵이 흐르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이어갔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해달 할머니가 생각 나서였을까,

"날씨가 정말 좋아요. 이렇게 좋은 날 사랑하는 가족들이 슬퍼하면 분명히 이곳에 있는 가족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예요. 밖에 큰 나무 아래 의자가 있던데 그곳에 가서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부축임에 아내는 일어났고 남편은 옆에서 거들뿐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바깥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한산함이 느껴졌다.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의 소리가 전부였다. 

남편은 먼저 말을 꺼냈다. 

"총각은 무슨 일로 왔어요?"

"부모님을 보러 왔어요. 이곳에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계시거든요."

무슨 일로 온 것인지 물은 순 없었다. 

또 한 번의 침묵이 흘렀다. 

아내분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딱 총각 나이쯤 됐을 거예요. 남편은 내가 아이를 낳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우리 둘만 행복하면 된다고 말했어요. 남편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 노력을 했어요. 아이를 갖기 위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였을 거예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순간에 천사를 보내줬지요. 영감 하고는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늘 했어요. 이렇게 좋은데, 아이를 갖지 않았으면 진정한 행복을 몰랐을지도 모른다고요. 아이가 넘어지면 두배로 내가 아픈 것 같았고 아이가 웃을 때면 마찬가지로 두배 더 행복한 기분이었어요. 단 한 번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바르게 자랐어요. 이제 취직을 했으니 우리를 호강시켜주겠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고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던지, 거울 속 우리는 나이가 들 때로 들어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오히려 아들은 우리를 호강시켜주겠다고 하니 말이죠. 아들이 떠난 지 오늘이 딱 두 달째네요. 엄마가 먹고 싶다고 말했던 음식을 포장해서 오던 길에 그만,, 내 잘못이지. 주책맞게 그런 이야기를 해서"

아내는 말을 잇다 멈추더니 눈물을 닦아냈다. 

남편은 아내의 등을 토닥이고 이어 말했다.

"교통사고였어요.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만 사고를 당해서 손쓸 수도 없이 현장에서 죽고 말았죠. 처음에는 장난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들이 죽다니, 당연히 우리 부부가 먼저 떠날 것을 예상했는데 아들이 세상을 먼저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불공평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아빠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을 닦고 숨을 한번 크게 쉰 뒤 말했다. 

"어르신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아드님이 더 힘들 테니까요. 저도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로 잘해드리지 못한 것들만 매 순간 떠오르더라고요. 먹고 싶다고 말했던 것들을 한 번이라도 더 사드려볼걸. 기기 작동이 서툴러 제게 사용법을 물었을 때 더 친절하게 알려주면 좋았을 걸.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이겠죠."

마음속 깊숙이 담긴 말들이 나온 것은 나 역시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남겨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저마다의 역할이 존재하다는 것을,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방식을 말이다. 

대화를 끝마치고 두 분과는 인사를 했다.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하던 두 분의 손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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