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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20. 2022

오늘

21.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발걸음에서는 조급함이 느껴진다. 

이윽고 마주한 전광판에선 승강장 진입 중이라는 문구를 보게 됐다. 

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재빠르게 개찰구를 통과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이 열리는 곳 앞에 줄지어 서있다. 고개를 돌려 조금이라도 줄이 적은 곳 앞으로 향했다. 

서서히 지하철이 멈추는 동안 눈은 빠르게 내부를 살피게 된다. 빈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문이 열렸다. 

가장 맨 앞에 서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 뒤에서 밀려오는 힘에 의해 밖으로 빠져나오고 만다.

주변을 살피더니 더 이상 나갈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안으로 들어간다. 줄지어 서있던 사람들 또한 틈 사이로 하나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끊기게 될까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나의 자리까지는 허락되었다.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기 힘들 정도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양팔을 가지런히 모으는 것 밖에,

몇 분이 지나자 다음 역을 알리는 문구가 화면에 나타났다. 

내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은 내릴게요! 라며 큰소리로 외친다. 시선은 일제히 여자에게 향해간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틈을 만들어 냈다. 문이 열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다른 이들이 그랬듯 주변을 살피고 다시 올라탔다.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시간은 오후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었다. 

한곡 반복을 누르고 화면을 껐다.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넣고 고개를 들자 노선도가 눈에 들어온다. 

매일 보는 것이지만 매일 새롭게 느껴진다. 뒤엉켜 있는 것 같지만 정해진 위치에서 각자의 방향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지상이 아닌 지하 깊숙한 곳을 누비고 다닌 다는 것이, 

첫 지하철이 개통된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하게 느껴지던 것이 이렇게 까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답답함이 느껴져서인지 빨리 내리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금방 내리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제 막 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에게는 그 마저도 아주 길게 느껴질지 모른다. 엄마의 얼굴은 점차 당황스러움으로 변해갔다. 잠시 동안 대화는 반복됐다.

누군가 사탕을 내밀기 전까지는,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노인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사탕 줄까?

그리고 손을 내밀어 보였다. 

손에는 포도, 딸기, 오렌지, 파인애플. 맛 사탕이 들려있다. 

아이는 조그마한 손을 내밀어 사탕을 고른다. 어느새 울음도 멈춘 채로. 

엄마의 표정에선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고민을 하는 아이에게 노인은 우리 아기 예쁘니까, 다 먹으라는 말을 하며 모두 건넨다. 아이는 엄마를 한번 바라보고서는 이내 사탕을 모두 짚어 손에 쥔다. 

다음 역에 도착하자 엄마와 아이는 내릴 준비를 했다. 할머니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라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노인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빠지자 내부엔 여유로움이 찾아왔다. 어디선가 피자 냄새가 났다. 냄새의 끝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을 보게 됐다. 자세히 들을 순 없었지만 대충 내용은 이랬다. 

초등학생 아들이 받아쓰기 시험을 봤고 백점을 맞았기 때문에 아빠는 아들이 원했던 피자를 사서 가는 길이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제외하면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마치, 기쁨을 감추는 사람처럼. 

통화를 종료하자 누군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이 시험에서 백점을 맞았다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을 했다.

앞에서는 부끄러워 제대로 표현할 순 없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몇 번의 역을 지나치자 내부는 앉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서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사이에 나 역시 자리를 찾아 앉게 됐다. 

피자를 들고 있던 남성 역시 내리고 난 뒤였다. 

음식 냄새를 맡은 탓일까, 배고픔이 밀려왔다. 김치찌개를 먹으면 좋을지 된장찌개를 먹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내리게 될 역에 도착했다. 

피곤한 탓에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에 힘이 없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역을 빠져나왔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자 피곤함도 잊은 채로 미소를 짓게 된다.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비닐봉지 안에는 두부, 애호박, 표고버섯 등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담겨있다. 

가방 속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하는 사이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문손잡이를 돌리자 잠겨있어야 할 문이 그대로 열리고 만다.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가자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집안에서는 된장찌개가 냄새가 났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엄마는 나에게 "아들, 갑자기 와서 미안해, 보고 싶어서 왔어. 지난주에 집에 왔을 때 예비열쇠 두고 갔잖아. 그거 줄 겸 해서, 어떻게 사나 보고 싶기도 하고. 냉장고에는 생수 밖에 없더라. 아무리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니, 요즘 반찬가게 음식들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 거기서 좀 사 먹고 그래 응? 왜 아무 말이 없어. 바보처럼, "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엄마는 죽었잖아. 그러니까 이건 꿈인 거잖아, " 

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22.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왜 나는 꿈이라고 외쳐버렸을까, 몰랐더라면 꿈에서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바보같이 말하고 난 뒤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이곳은 어디일까?

사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심지어 내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주사기를 맞고 쓰러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 역시 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지개 너머에는 갈 수 없었구나,

예상된 결과였을까. 쓸모없는 인생을 살았으니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정말 누군가들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주었을지도 궁금하다. 손을 심장이 위치한 곳에 가져갔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리며 뛰고 있다. 내 몸 어느 한 곳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깨어난 직 후 오 분 동안은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특별한 문제가 아닌 약물의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주사 약물 또한 인체에는 해롭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듯 누군가 내게 말을 하고 있다.


"저는 죽었습니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죽길 바라십니까?"


"그런  아니지만 100  필요에 따라 죽는 조건으로 빚을 탕감받고  개월의 유예기간을 받는 거래를 했습니다그래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제가 죽은  맞을까요?"


"아쉽지만. 아직은 죽지 않았습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럼 전 아직 죽기 전이겠네요. 지금의 대화는 죽기 직전 나누는 대화겠군요."

"그렇습니다. 약속대로 이곳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죽기 전 의뢰인의 장기를 제공받을 이들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양손에는 땀이 배어났다.

갑자기 사방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찌푸리고 말았다.

조심스레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방에 위치하고 있는 거울 속 나의 모습일 뿐이었다.   


"보이십니까?"


"네,, 그런데 보이는 건 제 자신뿐인데요."


"의뢰인이 장기를 기증하게 될 이들의 모습은 바로 의뢰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뢰인의 눈은 앞으로 접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코는 미쳐 느껴보지 못했던 수많은 계절의 냄새를 맡게 될 것입니다. 귀와 입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두 팔과 두 다리는 의뢰인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의뢰인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느끼던 것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 동안 느껴보지 못할 귀중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과거의 의뢰인은 죽었습니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닦아내도 멈추지 않는다.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죽지 않게 된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토록 바라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일까.


"그런데 저에게 왜, 세상에 아무런 대가 없이 무언가를 나누는 것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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