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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18. 2022

오늘


20.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다시 한번 가방 속을 확인했다. 메모장을 열어 틈 사이에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조심스레 넣었다. 부모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지였던 제주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순간, 내 마지막 기억은 두 분과의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 있더라도 긴장하지 않는다. 누군가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 않게 됐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다.

어딘가로 바쁘게 떠나는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행복한 미소로 가득 차 보였다.

창가 쪽 자리를 예약했다.

너머로 보이는 활주로에서는 문제가 없도록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됐다.

기내 방송이 울려 퍼지고 비행기는 곧이어 높은 곳으로 비행을 시작한다. 점점 작아져 갔다. 시야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정해진 지점에 다다른 뒤 아래를 내려다보자 무수히 많은 점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래에 머무르는 걱정도 슬픔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공항을 나오자 보이는 모습여행객들을 반겼다. 사진을 찍고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한참이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갈  그제야 나는 사진을 찍었다.  번도  모습을 담아본 적이 없어 어색하지만 버튼을 누르고  눌렀다. 표정은 기쁘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은  어떤 감정에도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가방 속에서 메모장을 꺼냈다. 출발하기  미리 일정표를 적어두었다.  분과 함께 갔던 장소들의 사진이 남아 있던 덕분에 기억이 온전치 않음에도 같은 동선으로 움직일  있게 됐다.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세 사람이 함께라서 행복하다고 말하던 아빠의 얼굴, 그 말에 나를 안아주던 엄마의 얼굴, 두 분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던 나의 얼굴 까지도.

순서대로 여행지들을 방문했다. 장소마다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로 사진들을 찍어 나아갔다. 결과물은 우스운 수준이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밥집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 찾아온 이는 나밖에 없던 탓에 자연스레 시선은 내게 집중됐다.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먹고 사진을 남기고 모든 장소에서 반복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난 뒤엔 집으로 돌아와 사진들을 확인했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내가 죽게 될 때 핸드폰도 같이 넣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해볼 생각이다.

단체 측에서는 마지막 메시지 이후로 그 어떤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은 괜찮아서일지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일지.

여행은 소란스럽지 않게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는 쓰레기봉투를 구매했다.

내 흔적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처리해줄 것이라는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중한 것들조차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뒤섞여 버려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 몇 벌을 남겨두고 모든 옷들을 정리해 헌 옷 수거함에 버렸다. 애초부터 옷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생필품들을 정리하고 집안 곳곳 버릴 수 있는 게 있다면 모조리 담아냈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투성이다. 남겨진 것은 가족사진,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것들, 미쳐 챙겨주지 못했던 푸름이의 물건, 사랑의 집에서 받은 여러 사람들의 편지.

준비해둔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마지막 물건까지 넣은 뒤에는 테이프로 여러 번 상자를 밀봉했다.

이제 정말 끝이다.

마지막 산책을 나섰다.

삼개월간의 일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처음 사이트에 접속했던 순간부터 여행을 다녀왔던 일들까지,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불가능이 아닌 가능한 일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바보같이 절망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밖에 못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만약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후회하지 않는 나날들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온 힘을 다해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을 것 같았는데 끝에 와서 보니 미련이 생기게 된다.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사실은 죽는 게 너무 무섭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부모님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쉴 새 없이 닦아냈다.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어쩌면 계속 부정을 하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서 선택되었고 결국 죽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도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을지 모른다고.

그러나 마주한 것은 꿈꾸던 것들도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닌 현실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서웠다. 도망친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나 하나 정도 약속을 어기고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아니더라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발걸음은 집으로 향해간다. 한 발자국 내딛는 걸음에 행복한 순간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마음이 진정되기를 바라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주는 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게 주었던 대가에 맞는 보답을 해야만 한다. 애써 괜찮다며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죽는 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흰이라는 여자는 줄곧 계약 관련 내용들만을 언급한 채 나와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었다. 단 한번 내게 질문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정말 죽음 앞에 태연히 행동할 수 있겠어요? 죽는다는 건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네 괜찮아요. 쓸모없는 인생보다는 죽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생각해보니 한 번의 질문이 더 있었다.


"삼 개월 뒤에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어요?"

"네"


그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지만 끝에 가서는 모두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는 걸,


만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대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살고 싶다고, 내 앞에 펼쳐질 날들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생에 불과할지라도

살아있다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삶은 늘 흘러갈 테니 어릴 적 보았던 무지개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입구에 다다르자 잠가두었던 문이 열려있다.

그들이 찾아온 것일까,

눈물은 흐를 대로 흘러 말라버리고 말았다.


태연히 외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 저 다녀왔어요.

등 뒤로 무언가 꽂혔다. 주사기다.

내 몸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머리 위로 무언가 씌워진다. 의식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말랐던 눈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고마웠어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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