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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18. 2022

사이의

16.


보호센터가 수습되는 동안 봉사활동은 중지되었다.

방향을 잃어버린 듯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던 순간부터 어쩌면 내일의 날들 나아가 미래의 순간들은 그저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겼다. 닿을 것 같지만 닿을 수 없고 결국엔 사라져 버리는, 그저 정해진 날들을 채우고 양초의 심지가 모두 타들어가 결국엔 녹아 사라져 버리듯이. 그들은 상황을 알고 있을 테지만 특별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맞이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는 일들에 집중을 할 뿐이었다.

반복되는 날들 사이로 이제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불행한 삶을 마감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적어도 단 몇 달 만이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힘 이나기도 했다.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단 일프로의 피해조차 주지 않아도 될 뿐이고 나아가 누군가들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지시된 일들을 따르고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행복한 순간을 맛보고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 삶이 얼마나 귀중 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워져 갈수록 마음에 새겨진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뿐이다.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들은 나에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그리고 동물들을 만나게 하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을 더 마주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행복이라는 큰 존재 앞에 젖어들게 되었을 때 그 순간 행복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인 것일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부모님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무언가를 받으면 다시 무언가를 주는 것이 이치라고.

물론, 내 목숨을 내놓겠지만.

매일 밤 잠들기 전 나의 하루하루는 행복한 꿈을 이어가는 것뿐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언젠가 꿈에서 깨어날 때 놀라지 않길 바라면서. 마주한 현실에 무너지지 않기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나의 상황을 말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내게 하루아침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사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냐며 말해주고 싶다.

죽고 싶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일 뿐이라고.

정말 죽게 된다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게 삶일 뿐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죽기보다 살기를 택할 뿐이고 그 사이에 죽음을 택한 나는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죽음을 경험해본 이가 있을까, 그 문턱 사이에서 다시 살아남는다면 삶을 가치 있게 바라보게 될까.

아니 이런 생각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대로 정해진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뿐이다.

마치 나의 끝이 정해지지 않은 듯 매일매일을.

보호센터에서 연락이 오게 된 것은 사고가 발생된 지 삼일 뒤 저녁이었다.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당일 아침 뉴스에서는 유기동물 보호센터 방화범이 스스로 경찰에 자수를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남자는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답했다.

주인도 없는 떠돌이 개를 조금 다치게 했다고 벌금형을 받은 게 너무 분했다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보다 나은 게 사람이 아니냐고 그럴 수 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보호센터 직원은 내게 범인이 바로 푸름이를 다치게 했던 그 남자라고 했다.

당시에도 남자는 직원들을 앞에 두고도 당신들이 이긴 것 같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라며 전해준 것은 사건 소식이 뉴스에 퍼지자 전국 각지에서는 후원금과 물품, 봉사를 하겠다는 인원들의 신청이 넘쳐나고 있다고.

그래서 한 달을 채우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해주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그만 나와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억지로 나갈 수도 없고 이렇게 된 이상 내게 한 달 출근을 지시했던 이들은 또 다른 연락을 해오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통화를 끝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다.

시간 되면 언제라도 좋으니 놀러 오라는 말과 함께 끝에 어렵겠지만 부탁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직원은 푸름이가 나를 아주 잘 따랐고 견사가 사라지며 다른 동물들과 함께 있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좋으니 맡아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내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긴 시간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푸름이를 입양 희망하는 이가 있고 시간이 맞지 않아 이 주 뒤 방문할 예정이라며 그때까지만이라도 가능하다면 이라는 말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어렵다면 괜찮다고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더 이상 정이 들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주고 또 주다 보면 이별하기 힘들어질 게 뻔했다. 이 정도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나와 푸름이에게도 좋을지 모른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의도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17.


설거지를 끝 마치고 겉옷을 입자 소란함이 느껴졌다.

소파에 누워있던 푸름이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현관 옆에 놓여있던 목줄을 가져와 내 앞에 내려놓는다. 그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운동하러 가자."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이로 조금씩 나아갔다. 보조기구를 착용한 덕분에 푸름이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단체 측에서는 뜻밖의 제안을 해왔었다.


'봉사활동이 중지되었으므로 남은 기간은 유기견 임시보호를 하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특이사항이 없다면 곧바로 진행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망설이던 마음 뒤로 나는 푸름이의 임시보호를 수락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새로움이 들어왔다. 매일 아침 일어나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은 뒤 또 한 번 산책을 나갔다. 푸름이는 새로운 공간에 빠르게 적응했다. 잠을 잘 때면 내 옆으로 파고드는 덕분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게 됐다. 예정된 헤어짐 앞에서 또 하나를 배우게 됐다. 이별이라는 말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별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은 정말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18.


지난밤 보호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입양을 원하는 이가 연락을 해왔다고.

달력을 보니 순식간에 이주가 지나 있었다.

아침 햇살은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에 가려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푸름이는 침대 한편에 웅크려 잠을 자고 있다.

아침을 주기 위해 사료 봉지를 뜯자 푸름이의 귀가 쫑긋거린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본다.

"잘 잤어? 너에게 좋은 주인이 생길지도 몰라, "

나의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가족이 생긴다는 말이야. 나처럼 잠깐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아니라 평생 동안 함께 할 가족 말이지."

이번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밥 먹자. 우리, "

나갈 준비를 끝마치고 푸름이에게 목줄을 채웠다.

지난밤 목욕을 시키며 평소보다 더 정성을 더한 것 같다.

행여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함께하지 못할까 싶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잘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맴돌기만 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

그런 존재는 나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싶다.

햇살은 눈부시게 대지를 비춰냈다. 길가의 나무들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갔다. 마지막 여름은 꽤 나쁘지 않게 기억될 것 같다.

긴 시간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닌데 보호센터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된 상태였다. 임시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 뒤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번 사태 이후로 많은 후원금이 들어온 덕분에 더 튼튼하게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고 했다.

"많이 바뀌었죠? 세상에는 정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어요. 겨울이 오기 전에는 공사가 마무리된다고 해요. 더 이상 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매일매일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고 있어요. 푸름이 얼굴이 정말 좋아졌네요. 집에서 지내는 동안 행복했을 모습이 눈에 선해요."

직원들은 나를 반기며 인사를 했다. 마지막일 줄 알았던 이들과의 만남이 푸름이 덕분에 또 한 번 이어지게 됐다.

"안으로 들어가요. 입양 희망자분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흙바닥을 피하기 위해 푸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내 품에 안겨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뜻밖의 상황에 놀라움을 드러내고 말았다.

푸름이는 나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 평소에는 잘 짓지도 않던 녀석이 신이 나는지 큰 소리로 짓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바로 구름이가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자 나를 보며 말한다.

"구름이 입양해 갔던 분들 기억하시죠? 이분들이 푸름이까지 입양을 하고 싶다고 다시 연락을 전해왔어요. 돌아간 뒤로 자꾸 마음에 걸려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눴다.

중년부부는 나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자신들이 이전에 보고 갔을 적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면서.

구름 이도 마찬가지로 푸름이를 만난 것이 기분 좋은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반가움을 드러낸다.

내부에 있던 모두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며 미소를 드러냈다.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곳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돌아간 뒤에도 매일 고민을 했는데 혹시나 잘못되어   다시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 후회했을  같거든요. 당장 오고 싶었지만 사정이 생겨 찾아올  없었답니다. 다행히 좋은 임시 보호자 분이 함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자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얼굴을 뵈니 정말 좋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름 이도 이제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생겨서 외롭지 않게   지낼  같아요.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그리 망설였는지."

남편은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를 짓는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아내는 남편의 말이 끝나자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내가 말을 잇자 남편도 놀란 눈치였다.

"제 인생에 사고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렇잖아요 다들, 뉴스에서 매일 사람들이 다치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뿐이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너무 싫어 죽을 생각까지 했었어요."

남편도 이사실을 처음 들은 것인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이곳에서 처음 말하게 되네요.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곁에서 저를 지켜주는 남편 덕분에 많은 힘을 얻게 됐거든요. 시골로 이사를 간 뒤로 얼마 전 구름 이를 만나고서 제 자신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푸름이를 처음 보던 순간, 감추고만 싶던 아픔이 드러나 많이 힘들었거든요. 보고 있으면 딱하기도 하고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함께 하고 싶다 느끼면서도 결국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버렸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돌아간 뒤에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밝게 웃는 모습이, 힘차게 뛰려고 하는 푸름이가 말이죠. 그래서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요. 당신만 괜찮다면 푸름이까지 입양을 하고 싶다고. 아픔을 언제까지나 숨기고 살 순 없겠죠. 어떤 경우에는 두려워 피하던 것들을 막상 마주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제게는 입양하고자 했던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요. 결심하고 나니 그동안 했던 우려와 걱정들이 또 슬픔들이 흐릿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지 몰라요. 겉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을 뿐이겠죠."

아내의 말이 끝나자 남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 아내를 끌어안았다. 나를 포함해 곁에 있는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

어느새 진정이 된 것인지 푸름이와 구름 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우리 모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푸름아.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 같아, 너를 만나서 또 네가 좋은 분들에게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말이야."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확인이 끝나자 부부는 떠날 준비를 했다.

"이건 별건 아닌데요. 푸름이가 좋아하던 장난감 그리고 남은 간식들이에요. 이제 저에게는 필요 없을 테니까요."

남편은 고맙다 말한 뒤 쇼핑백을 받았다. 아내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구름 이는 익숙한 듯이 조수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푸름이는 그런 구름 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네 가족들이야. 너와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가족 말이야. 더 이상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단다. 어서 타! 떠날 준비를 해야지, "

푸름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나와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또 한 번 말했다.

"어서 타야지. 걱정하지 마 네 뒤에는 행복이 가득할 거야."

조수석에 앉은 구름이가 짖자 푸름이는 조심스레 차에 올라탔다.

두 부부는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채로 차에 올라탔다. 차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벗어나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거리가 멀어져 갔다. 창 너머로 푸름이의 모습이 보였다. 세차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푸름이에게 나의 존재는 가족이었을까. 아무렴 어때, 행복을 바란다는 마음이 전달됐으면 충분할 거야.'

보호센터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둘이 아닌 혼자서 길을 걸어 내려갔다.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했다.

해달 할머니는 무지개 너머에 있는 가족들을 만났을까, 그곳에서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무지개 너머로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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