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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Sep 14. 2022

사이의

13.


"아휴, 이게 무슨 냄새야. 아침부터 삼겹살이야?"

고기 굽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엄마는 좁은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독립을 외치고 나가더니 집안꼴이 이게 뭐야 도대체,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멋쩍은 웃음을 짓게 된다.

"아니,, 어젯밤 늦게까지 야근하느라고 못 치운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분명히 치우려고 했어, 새벽부터 들이닥친 건 엄마잖아."

"그래서 싫다는 거야? 지난주부터 삼겹살 먹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그대로 치우고 돌아갈까?"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핑계 삼아 집에서 먹던 삼겹살이 그립다는 말을 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던 초등학생 시절,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하는 대신 달에 한 번씩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빠가 준비를 하면 엄마가 고기를 구웠고 반대로 엄마가 준비를 하면 아빠가 고기를 구웠다. 나의 역할은 뒷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신문지를 정리하고 기름을 닦아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그릇을 옮겼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정리가 끝난 뒤엔 과일을 깎아 먹었다.

이미 오래전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시절 우리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다.

좁은 집안내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집안 사정은 조금씩 나아졌다. 자연스레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대신 바깥에서 외식을 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니, 좋지. 그런데 엄마가 힘들까 봐 그러지 밖에서 먹어도 되는데,, 괜한 말 꺼내서 미안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탁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게 익숙해진 탓에 전기밥솥은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여전히 쓸모 있음을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듯 갓 지은 밥은 따뜻하고 아주 맛있었다.

"아빠는 주말이라고 또 등산 갔어?"

"네 아버지 산타는 거 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해. 정상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라 금방 내려올 테니 점심때 같이 밥 먹자고 하더라."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삼 개월 전 입사한 직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적응은 잘하고 있지? 힘들면 언제든 엄마 아빠에게 연락해. 우리가 해결해줄 순 없어도 들어줄 순 있으니까.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되게 중요한 거야. 힘듦을 마음속에 자꾸 담아두려고만 하면 어느 순간 고장 나고 말거든. 왜냐하면 마음엔 일정 범위까지만 담을 수 있도록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고장 나지 않도록 자꾸 비워내고 비워진 자리에 행복도 채워 넣고 다른 좋은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는 거야. 엄마 아빠는 우리 아들이 잘 해낼 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이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잘 들어주면 좋겠어 알겠지?"


알람이 울리고 눈을 뜨자 텅 빈 공간에선 알람 소리만 울려 퍼질 뿐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꿈이었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두 분이 모두 내 곁에 존재했더라면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말 그대로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뿐이다. 악몽을 꾸지 않는 대신 희망고문처럼 행복한 꿈을 꾼다. 마치 조금만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깨어나면 사라지고 말뿐이지만. 모르겠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인지, 분명 행복한 꿈이었지만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배송된 과일을 먹는다. 기계가 움직이듯이 정해진 일정에 맞춰 행동을 한다. 다시 연락이 온 것은 해달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삼일이 지난 뒤였다.


내일부터 한 달간 유기동물 보호센터로 출근을 하게 되며, 그곳에서 지정된 업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시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삶이 앞으로 두 달 여가 남았으니 이점을 인지하고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매일 밤 달력에 표시를 하고 남은 날짜를 손으로 세어보곤 한다.

죽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닌 이상 이런 말을 듣는 이가 있을까.

곱씹을수록 이상하다.

죽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14.


눈 깜짝할 사이 빠르게 이주의 시간이 흘렀다.

첫날 낮선이 의 방문에 심하게 짖던 강아지들도 이젠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그중에 선 유독 '푸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나를 가장 많이 따르고 좋아해 준다.  

이곳의 업무를 크게 나누자면 견사 청소, 식사 배분, 산책, 목욕. 등으로 나뉜다. 이주라는 시간 동안 제법 익숙해졌다고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인원들에게 업무를 알려주는 위치가 됐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보호센터 벽면에 부착된 안내문을 읽어주는 것이다. 설명이 끝나면 잠깐의 쉼이 주어진다. 그럴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내문 옆으로 붙어있는 유기견들의 입양 공고를 읽어보곤 한다. 

사진과 이름 나이 추청 소개.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첫날 공고를 유심히 살펴봤다. 입양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어쩌면 누군가에게 버려졌었다는 것조차 잊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마음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호센터를 운영하는 분은 내게 다가와 알고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곳으로 오는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뒤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최대한 예쁘고 단정해 보여야 입양될 확률이 더 올라간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참 슬펐다. 

자신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들에게 선택되어 원치 않는 버림을 받았지만 또 다른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나이가 들었거나 병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씻기고 미용을 하고 예쁘게 하더라도 선택되기 어렵다는 말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자신이 속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체념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는 주인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도 하고 상처에 마음을 닫고 사람을 멀리하기도 한다고 했다.

푸름이는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을 반기고 힘차게 뛰어다닌다. 물론, 그만큼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하는 탓인지 잠이 많다. 처음 발견 당시 이미 많은 시간이 경과된 뒤였고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푸름이는 그런 우려를 보란 듯 지워내고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사고 현장 근처에 카메라가 있어 며칠이 지나 가해자를 찾게 됐다. 그는 음주운전 상태도 갑자기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도 아니었다. 온전한 정신이었음에도 그대로 자리를 떠난 것이다. 병원을 데려갔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는, 

떠돌이 개 주제에 무슨 병원이냐고 신호를 잘 보고 갔을 뿐이다라는 말을 하며 주인도 없는 유기견인데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반복적인 말은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뿐이었다. 

대화의 끝에는 버려진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돌아다니다 사고를 당하는 것 아니냐며 막말을 했다고 한다.

푸름이를 보고 있으면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정말 버려진 이유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지만

그런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질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를 갖고서라도 그렇게 버림받아야 해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보호센터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 푸름이에 대해서는 모두들 하나같이 똑같이 말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향해있는 친구라고. 

좋은 주인을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늘 입양이 성사되기 어렵다고 했다. 사연을 듣고 찾아온 이들은 결국 다른 강아지를 입양해간다.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강아지는 힘들 것 같다는 짧은 말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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