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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ug 22. 2022

죽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별말을 다하게 되네요. 그런데 그것 알고 있어요? 사람의 눈빛은 거짓을 말하지 않거든요. 딱 마주했을 때 선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어요.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시겠어요. 훌륭한 아들을 둬서, " 

잠시 동안 고민을 했다. 거짓을 말해야 할지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것인지 심장이 빠르게 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둘러본 것처럼 크게 어렵거나 힘들다고 느껴지는 일들은 없을 거예요. 그냥 어르신들 말동무해드리고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정리를 하는 작은 일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호칭은 팀장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말하면서도 너무 거창한 게 아닌가 싶어 쑥스러운 기분이 드는데 회사 생활을 할 때부터 익숙해진 탓에 이곳에서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팀장님을 뒤따라 건물 밖으로 나가자 오래된 승합차를 마주했다.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할머님들의 일거리를 받아오고 마무리한 것들을 가져다주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마침 마트에 다녀와야 하는데 같이 가요."

팀장님은 익숙한 듯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나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웃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이라며 소개한다. 그날의 주제를 정하고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라고 했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내용을 가지고 각각의 의견이 오고 간다. A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것이라고 하자 B는 묻는다. 그럼 짝사랑을 하고 있다면 어떡하냐고 그러자 곧바로 거절당하더라도 정중히 고백을 해볼 것이라고 혹시 모르지 않겠냐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사랑이 피어날지, 모두들 웃고 만다.

B는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자신의 꿈은 세계여행을 가는 것인데 당장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을 테니 좋아하는 음식을 한껏 준비해둔 뒤 가고 싶었던 나라들의 명소들을 영상으로 볼 것이라고. 다른 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태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B는 정말 그럴 수 없는지는 그때 가서 한번 확인해보겠다며 말을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C는 김 빠지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어나 밥을 먹은 뒤 청소를 하고 공원 산책을 하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혼자만의 정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저녁이 되면 냉장고를 열어 남아 있는 반찬들을 꺼내 식사를 하겠다고.

마트에 도착할 때쯤 라디오 방송도 끝이 났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별말을 하지 않았다. 시동이 꺼지고 차에서 내리자 팀장님은 내게 물었다. 내일 죽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글쎄요, 저도 평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쩌면 세상이 끝난다는 것조차도 모를 정도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몇 마디 이어가다 이내 "그런데 우리 그런 생각은 하지 말기로 해요. 요즘은 의학기술이 발달돼서 오래오래 살 수 있다고 하잖아요. 뭐, 갑자기 핵전쟁이 일어나서 전 인류가 멸망한다면 모를까. 사고사도 존재하겠지만 내가 죽을 날을 알고 살아가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질 것 같아요. 안 그래요?"

별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아 거짓으로 대답을 했다. 

"그렇겠죠. 자신의 죽을 날을 알고 살아가면 슬플 거예요." 

필요한 물품들을 박스에 담은 뒤 짐칸에 옮겨 담았다. 사랑의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들은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준비를 하고 있다. 주방 한편에 짐을 내려놓자 수진 씨는 내게 다가와 정리해야 하는 물건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식사는 방마다 구성된 인원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준비를 한다고 했다. 

모두들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늘의 점심은 몇 가지의 나물과 계란말이 장조림 된장찌개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어서 앉아요." 

팀장님은 자신의 옆자리로 오라며 손짓을 했고 옆으로 가 앉자 할머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내게 맛있게 먹으라며 손짓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밥을 먹었던 적이 언제일지 모를 정도로 오래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용히 밥을 먹는 동안 다른 분들은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행복은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켜낼 수도 없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일에 불과하다고 느꼈지만 이곳에 머무르는 단 몇 시간에 불과한 시간 동안, 어쩌면 행복은 갖는 것도 지키는 것도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 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시부터 여섯 시. 출근시간을 알게 됐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5일. 한 달 동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팀장님과 수진 씨에게 인사를 했다. 사무실을 나오는 동안 마주친 할머니 한분은 대뜸 나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늙은이들을 도와주러 와서, 내가 줄 건 없고 이거라도 받아가요."

할머니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더니 파인애플 맛 사탕 하늘 내게 건넨다. 괜찮다는 말을 하자 "괜찮아요 자 받아요. 달고 맛있어요."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조심히 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간다. 

버스 창밖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주 예쁘고 아름다웠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까 했지만 결국 찍지 않았다. 남긴다는 것이 내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 순간은 결국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히고 말 것이다. 나도 그렇게 서서히 사라지고 어느샌가 기억 속에서 잊히고 말겠지. 


9.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검게 물들어 있다. 익숙하게 버스에 올라타 창가 쪽 자리에 앉는다. 밀린 월세를 입금하자 더 이상 집주인은 내게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팀장님과 수진 씨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수진 씨와는 따로 연락한 적은 없다. 팀장님과도 사랑의 집에 대한 공적인 이야기를 몇 번 나누었을 뿐 사적인 연락은 하지 않았다. 군대에 있을 적 제대 날짜를 백일 정도 남겨두고선 매일 달력에 표시를 해가며 날짜를 새곤 했었다. 그땐 전역을 하게 되면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았다. 새로운 일들이 넘쳐나 매 순간이 행복할 줄 알았다. 다른 의미이지만 매일 밤 자기 전 달력에 표시를 하고 있다. 내가 살 수 있는 날짜가 줄어감과 동시에 죽게 되는 순간이 가까워져 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하차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버스는 멈춰 서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뒷문이 열린다. 

비가 와서 그런지 언덕 위의 동네가 더욱 조용하게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무실에 앉아있던 두 사람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팀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왔어요? 아침부터 비가 와서 그런지 하루의 시작이 차분한 느낌이에요."

'정근수'라고 적힌 이름표 옆에 새로운 이름표 하나가 놓여 있다. 

"안녕하세요. 어, 그런데?" 

수진 씨는 나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무리 그래도 한 달 동안 출근을 하는 데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물론, 벌써 이주라는 시간이 흘렀지만요."

말을 듣고 벌써 이주가 흘렀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감사해요. 신경 써주셔서"

할머님들의 일은 주말은 쉬고 평일 동안 진행되며 이주마다 정산을 받는다고 한다. 소일거리에 걸맞게 단순하지만 기계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주로 맡아 작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예정된 날짜보다 하루 일찍 끝을 내게 되어 다 같이 놀러 나갈 예정이었으나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는 바람에 취소되어 모두들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이렇게 일정이 취소되곤 할 때면 식당 겸 다목적실로 사용되는 공간에서 티브이를 이용해 다 같이 영화를 보곤 하는데 팀장님은 작은 화면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며 내년에는 예산을 책정해 빔프로젝터를 구매할 것이라며 말했다. 연초가 되면 한 해 동안 쓸 금액들을 정해놓은 뒤 그것에 맞춰 사용해야 운영하는데 문제가 없다.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 어르신들에게 더 많이 제공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까지 느껴졌다.

식당 문을 조심히 열자 할머님들은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화면 속 영상에 집중을 하고 있다. 끝자리에 조심스레 앉자 할머니 한분이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를 볼 때마다 '하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내 이름을 말해주어도 할머니는 낮이 가장 길어지는 시기, 하지에 왔으니 이렇게 부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리던 이름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나를 친근하게 대하고 싶은 할머니의 남다른 애정표현 방식일 것이다. 

"우리 하지 왔니. 아침은 먹었고? 다 같이 모여서 재밌는 거 보고 있었어."

"네 먹고 왔어요. 그런데 할머니 끄트머리에 앉아 계시면 화면이 잘 안 보이지 않아요?" 

안 보여도 상관없다고 그냥 다 같이 모여 있는 게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문득 계약 당시 정해진 것을 지키는 것 이외에 금액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다쓰지 못하고 사라지는 돈이라면 더 필요한 이들을 위해 쓰고 싶어졌다. 인터넷을 켜 빔프로젝터를 검색하자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나왔다. 그중에서 낮에도 사용하기 괜찮은 것들을 골라 평이 좋은 제품으로 주문했다. 내가 샀다고 하면 분명히 부담을 느끼고 거절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적당한 거짓말을 생각해두면 좋을 것 같다. 

퇴근 준비를 하고 나가려던 찰나 수진 씨는 "금요일 저녁인데 따로 약속 있으세요? 없으시면 팀장님이랑 같이 저녁 먹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잠시 동안 당황을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팀장님은 "약속 있으면 가도 괜찮아요. 아침에 수진 씨 말 듣고 벌써 이주나 됐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밥 한 번도 따로 만나서 먹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한번 이야기해보라 한 거예요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아니요. 약속 없어요"

짧은 대답을 하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시에 말한다. "그럼 같이 나가요"

수진 씨는 매일 출퇴근을 하고 팀장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일은 이곳에서 지내며 업무를 본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있는 분들은 아프거나 몸이 불편하지 않아 팀장님이나 수진 씨가 없더라도 지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팀장님이 머무를 필요는 없지만 이젠 이곳이 자신의 집 같아 더욱 편하게 느껴진다고.

우리는 근처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소주를 한병 시켰고 그 후로 더 주문하지는 않았다. 

"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몸이 잘 받지 않기도 하고,," 

두 사람은 웃으며 술은 좋아하지만 몸이 받지 않아 잘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제히 웃고 말았다. 

팀장님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곁을 지나가던 남자 한 명을 알아채지 못하고 부딪히려던 순간, 

수진 씨의 "엄마" 하는 목소리에 부딪힘을 막을 수 있었다.

나는 놀라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봤다.

팀장님은 태연하게 "아 맞다. 이 말을 안 하고 있었네, 제 딸이에요. 엄마 일하는 걸 보더니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해서 결국 같이 하게 됐거든요."

 말을 듣고 보니 두 사람은 말하는 것도 생김새도 많이 닮아 있었다. 그저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비슷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괜히 속인 것 같아 미안해지네요. 기분 나쁘고 그런 건 아니죠?" 

수진 씨의 말에 "아니요. 전혀 그런 생각하지 않아요. 일터잖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고마워요. 일터에서는 서로 호칭을 붙이고 지내자고 했거든요. 함께 오래 일하려면 그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주밖에 안 남았는데 어때요?"

"음,, 좋아요. 할머님들도 손주같이 대해주셔서 좋고 두분도 저를 잘 대해줘서 정말 좋아요."

"엄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사랑의 집에 있는 모든 분들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소한 일도 나서서 먼저 해주시려고 하고 그래서 아쉽기도 해요. 곧 있으면 떠나신다고 하니, 엄마가 그러는데 외국으로 간다고 하셨죠? 혹시 어느 나라로 떠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을 했지만 이내 "유럽, 파리에 가려고 해요." 

"프랑스, 파리 말하시는 거죠? 부럽네요. 어쩌다 많고 많은 나라 중에 그곳을 선택하셨어요?"

막힘없이 말이 나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담긴 바람들이 나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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