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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ug 04. 2022

죽음,

6.


대출 상환 완료부터 계약서의 내용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은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 정해진 운명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계약서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했다.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키며 살법한 것들도 있었고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싶은 내용들까지. 모든 것들은 마치 방학 계획표를 짜듯이 이루어져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일들은 매일 아침 7시 기상을 한 뒤 창문을 환기시킨다. 아침은 거르지 않고 신선한 과일들을 섭취할 것이며 내부를 청소하고 정돈된 삶을 유지한다.

휴대폰을 켜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수 있도록 알람을 맞췄다. 인터넷 접속을 한 뒤 과일 구독 사이트에 들어갔다. 3개월을 설정하고 세척 후 소분되어 배송을 선택했다. 창문을 열자 선선한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청소기 코드를 연결하고 실행 버튼을 누르자 청소기 모터 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석구석 먼지를 찾아냈다. 널브러진 옷들을 정리해 옷장 속에 넣었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나누어 분리했다. 이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청소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을 다시 벽에 걸어두었다. 사진을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엄마, 아빠 금방 뒤따라갈게요. 처음에는 죽는 게 무섭고 두려웠는데 이제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잖아요. 그러니 일찍 왔다고 너무 뭐라고는 하지 말아요. 남은 날들을 잘 마무리하고 금방 갈게요. 웃으면서 만나요'

식탁에 앉아 정돈된 공간을 바라보자 웃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져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물어보세요.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인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빚을 탕감해주고 후회 없이 죽으라고 매달 돈까지 주신다고 하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그런데 절 믿으세요?"

여자와 남자는 동시에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웃고 만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상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는데 여기까지 찾아온 의뢰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그 마음에 대한 답을 하는 것뿐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지난밤 글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메시지를 받고 직접 주소를 찾아가는 일은 없겠지. 


"그럼 한 가지 덧 붙여. 이제 의뢰인과 우리 사이에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지시하는 내용을 잘 따라 주시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남은 생을  마무리하는 일에 힘을 써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 오기까지.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확실히 깨달았어요. 살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해내 본 것이 없었구나. 그래서 이번만큼은 잘 마무리 짓고 싶어요. 그 일이 제 삶을 마무리하는 일이 되어버렸지만요."  


7.


시작 후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규칙적인 일상이 되었을 뿐이다. 

인터넷으로 읽고 싶었던 고전문학을 여러 권 구매했다. 밤이면 집 근처 공원에 나가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계약서에는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봉사활동을 한다.라는 식으로만 적혀있어 궁금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인의 자유에 맡긴다.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어떤 분야가 돼었든 읽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고 읽는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운동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또는 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그대로 실행에 옮겨주시면 됩니다. 월 지원되는 비용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뭐든 괜찮습니다. 뮤지컬이나 공연,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는 것들까지 모두 다. 여기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의뢰인의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으시겠지만 깊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장기 기증을 원하는 고객들의 모든 요청사항을 수용하기 때문에 이외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그런 점들이 적극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주시면 이해하기 편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봉사활동에 대한 일정은 시작 후 일주일 뒤 다시 한번 안내해드릴 것입니다."


밤이 되면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들도 있으며 가족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사람들 틈 속에 뒤섞여 걷고 있으면 나 자신이 정상인이 되는 기분을 맛본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평범한 삶. 죽게 될 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나는 그들의 틈에 낀 비정상 인일뿐이지만. 그럼에도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는 이들의 사이에선 나 자신의 존재는 평범함의 일부가 된다. 공원으로 나온 지 삼일째 되던 날이었다. 목줄을 잡고 있던 손이 풀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나에게 달려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말티즈였다. 놀라는 것도 잠시 작은 몸짓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재빨리 목줄을 잡은 주인은 내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나는 괜찮다는 짧은 말을 건넸다. 그리고 강아지와 주인은 잠시 뒤 시야에서 사라졌다. 설명할 순 없지만 마음 한편에 무언가 남게 됐다. 그날 이후로 여전히 아니 어쩌면 죽는 날까지 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운동을 하고 나면 힘든 것보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마치 나 자신이 정말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이마에 땀이 맺힌 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일 09시까지 적힌 주소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노인복지시설     


냉수로 샤워를 하자 차갑다는 느낌도 잠시 금세 적응을 한다. 

끝마치고 온몸을 닦아냈다. 식탁 위에 올려둔 책을 집어 들어 침대로 가져갔다. 

몇백 년 전 쓰인 책은 긴 시간을 지나 많은 나라를 거쳐 나에 손에 쥐어졌다. 글을 쓴 작가는 내가 태어나기도 이전 아주 오래전 숨을 거두었다. 작가는 죽기 전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목표를 다했다는 마음에 편안하게 떠났을까, 아직은 쓰지 못한 것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아쉬운 마음이 더해졌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순식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게 된 걸까. 

엄마와 아빠는 젊은 시절 독서모임을 하며 처음 만나게 됐다. '고전문학의 이해'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엄마가 먼저 아빠에게 호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엄마와 아빠가 첫 모임 당시 다뤘던 책이다. 두 분의 어릴 적 꿈은 모두 작가라고 들었다. 그러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더 무거웠던 것은 현실의 무게였다. 자신들의 꿈에 대한 갈증을 독서모임을 통해서나마 풀고 싶었다고 했다. 아빠가 죽고 난 뒤 엄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꿈을 꿈으로 남겨두어서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빠를 그날 그 시간 그 장소 그 모임에서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엄마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는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알 수 없음으로 남았다. 정말 괜찮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는 말이다. 

두 분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많은 책들을 읽었다. 대학생 시절 유럽여행에 대한 책을 읽고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내가 여행한 곳이라고는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간 것과 부모님과 대학생 시절 또 한 번 제주도를 간 것이 전부였다. 

수많은 생각에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책을 덮고 침대 옆 한편에 올려놓았다. 

죽기 전 유럽에 다녀올 수 있을까. 한 곳이어도 충분하니까. 잘 모르겠다.   


8.


마을버스는 시가지를 벗어나 언덕길을 올라간다.

이내 한 곳에서 내리게 된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건물은 이곳에서 긴 세월을 버텨냈음을 말해주고 있다. 

서성거리며 발걸음을 옮기자 오십 대에서 육십 대 사이로 보이는 여성이 나타난다. 눈이 마주치자 나의 이름을 부른다. 맞다는 대답을 하자 잘 왔다며 어깨를 감싼다. 

"남자 직원분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지게 됐지 뭐예요. 웬만한 건 우리끼리 해보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빠졌다고 빈자리가 크게 나더라고요. 말이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봉사활동 모집 공고를 올렸더니 바로 신청을 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봉사활동 점수가 필요한 학생인가 싶었는데 나이를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간략하게 소개해준 내용을 읽어보니 몇 달 뒤 멀리 떠나게 돼서 그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떠나고 싶다 적어두셨던데 마음이 참 좋아요. 얼굴도 훤칠하니 모두들 좋아하실 거예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내 소개를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 하루뿐인지 아니면 일주일 나아가 한 달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그런 것들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차차 알아가면 그만이겠지. 

"지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다 합하면 12명. 직원은 관리자인 저와 입원한 남자 직원 그리고 여자 직원 1명 총 3명이랍니다.

우선 들어가요. 직원 분하고 어르신들 소개를 해드릴게요."

여성을 뒤따라가자 건물 외부와는 다르게 잘 정돈된 내부를 마주했다. 

"대부분 이 근처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분들이 나이가 들어 이곳에 모이는 형태랍니다. 긴 시간 후원을 해주는 분들이 없었더라면 이곳은 이미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무실로 들어가자 벽면에 부착된 선풍기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엉거주춤 일어나 내게 인사를 한다. 마찬가지로 짧은 인사를 했다. 

"수진 씨 한 달 동안 이곳으로 출근하며 봉사를 해줄 분이에요. 지난번 이야기해서 기억하고 있죠?" 말을 들은 여자는 이번에는 자리를 벗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려요."

'한 달이었구나, 이곳으로 나오는 기간은.'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은 나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린다. 

"아휴,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이미 큰 도움이에요. 요즘 세상에 어느 누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이렇게 나오겠어요."

나의 의지가 아니었으나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더하게 됐다.

"자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 더 나누도록 하고 어르신 분들을 소개해드릴게요."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방들이 줄지어 이어져있다. 

한 방마다 3~4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생활한다고 했다.  

거동이 크게 불편한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든 것을 제외하면 이곳에 있는 분들은 모두 소일거리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을 수행하며 함께 살아간다고. 

"지금은 101호 그러니까. 큰방에 모여 모두 일을 하고 있어요. 자 따라와요, " 

나무로 된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삐그덕 대는 소리를 냈다. 마치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듯이. 

"어머니들 여기 이 청년이 한 달 동안 우리 사랑의 집에 근수 씨 대신 출근해서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와줄 거예요. 훤칠하게 생겼죠?"

할머니들과 일제히 눈이 마주쳤다. 각기 다른 생김새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내뿜는 분들과 일제히 눈을 마주쳤다. 할머니 한분은 잘 부탁한다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부끄러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다른 할머니들 역시 저마다 한 마디씩을 더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럼 일 보고 계셔요." 

방을 나오자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기게 됐다. 

"다들 몸이 불편하거나 혼자 생활하시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굳이 이곳에 모여 사는 이유가 있을까요?" 

나의 질문에 미소를 짓는다. 

"이분들은 이 도시가 이렇게 커지기 이전부터 언덕 동네에 살던 분들이에요. 학교를 다닌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던 분들이죠. 먹고살기 바쁜 시절을 지나 지금 노년의 나이가 되었고요. 자식들이 있지만 자식들 대부분이 살기 어려워 간간이 안부를 물을 뿐, 만나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한마디로 외로운 분들이시죠." 

말을 이어가다 잠시 멈춘다. 발걸음도 함께,

"할머니 한분이 고독사로 삶을 마감한 적이 있어요.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기 좋아하는 선한 분이셨죠. 찾아오는 이가 없어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고 결심했어요. 아,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으로 이끌게 되었고 사랑의 집이 자리 잡게 됐답니다.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해서 뭐하겠냐고, 나이 드신 분들 몇몇을 챙긴다고 노인 고독사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저는 그 말을 듣고 말했죠. 막을 수 없다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쓸쓸히 죽어갈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 명이라도 나서 그런 일들을 줄여야 한다고"

말을 하는 이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 속에서 스스로에게 부여된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어렴풋 느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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