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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Jul 15. 2022

삶과

인상착의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예상을 빗나가는 모습이었다. 

흰색 반팔티에 진청색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두 사람은 차례대로 "반갑습니다." 하고 손을 내밀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진 상황에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남자는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뭐, 영화를 보면 어두컴컴한 골목가에 자리 잡고 험악한 인상을 갖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셨다면 한편으로는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생각을 들킨 것 같아 괜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우리와 마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있지만 결국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사업실패를 겪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던지, 아주 많은 이유들을 갖고서 말이죠. 그런 이들에게 마지막 순간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말을 듣고서 괜히 울컥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을 잘 마무리한다니 결국 죽으면 끝일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죽을 용기도 없는 겁쟁이들을 죽게 하는 것 그게 전부 아닌가요?"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자 이제부터는 '의뢰인'이라고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의 말을 이어받은 여자는 

"지금부터 서류를 확인하고 사인을 해주시면 됩니다. 일종의 계약서 같은 것이죠." 

재차 질문을 했다. "계약서요? 그런 종이 따위가 무슨 소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여자는 옆에 두었던 서류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 삼 년 전 퇴근 후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과속을 하는 차량에 의해 현장에서 사망. 가해자는 당시 음주운전 상태였으나 심신 미약 인정되어 현재 만기출소 상태. 어머니 이 년 전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야근을 하던 도중 회사 건물 옥상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게 되었고 스프링클러 미작동으로 인해 대피에 차질이 생겨 급속도로 퍼진 연기에 의해 질식사. 이후 경찰 조사가 이루어졌고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지만 벌금형의 집행유예에 그침. 몇 년 사이 부모님을 모두 잃고 망가져있는 상태에서 박준영 씨 접근. 의뢰인과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지낸 사이로 누구보다 의뢰인의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음.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받게 된 사망보험금을 사업자금에 쓰자며 제안을 했지만 죽음과 맞바꾼 돈이라는 것을 알기에 여러 차례 거절했으나 아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님을 위한 일이 아니겠냐는 말에 끝내 수락을 했고 보험금 전액을 사업자금으로 제공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대출까지 받게 됨. 사업 진행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왔고 함께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보러 가기도 했을 정도로 믿음을 심어주었으나 일 년 전 갑자기 연락두절 이 됐고 그 후 며칠 뒤 사망 소식을 듣게 됨. 사인은 자살이었고 불법 도박에 빠져 사업자금으로 건넸던 모든 돈을 탕진했음을 확인. 뒤늦게 건물을 세우던 땅이라도 팔아보려고 했지만 처음부터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거짓이었고 의뢰인에게 보여주었던 곳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명의로 밝혀짐. 박준영 씨의 가족들은 자신들과도 연을 끊은 자식이라며 사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함. 여기까지 제가 읽어드린 부분 중에 혹시 틀린 사실이 있나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그럼 계속 읽어나가겠습니다. 현재 대출금 구천만 원이 남아있는 상태이며 무직으로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음. 최근 삼개월간 연락하고 지낸 사람은 집주인뿐이며 그것마저도 월세가 밀려 보증금에서 재하겠지만 이대로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다며 이런 식이라면 집을 비워줘야야겠다는 통보를 들은 상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부모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인지 남자는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자 여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서류를 바라보고 있다. 

"자살미수 3회. 첫 번째 시도는 강으로 뛰어내리기 위해 새벽녘 마중 대교를 찾았으나 오히려 술을 먹고 쓰러진 행인을 발견하고선 병원으로 인계. 저체온증으로 사망 위험 있었으나 빠르게 발견된 덕분에 목숨에는 지장이 없음. 두 번째 시도 산 위로 올라가 절벽에서 떨어질 각오를 하였으나 등산 도중 다리가 부러진 유기견을 발견 지나치지 못하고 동물병원으로 데려간 뒤 사비를 들여 진료 후 보호센터로 인계. 유기견은 다행히도 사연을 들은 어떤 이에게 입양되었고 현재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태. 특이한 점은 의뢰인은 당시 통장에 잔고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하였음. 세 번째 시도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하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준 집주인에게 큰 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그마저도 시도 도중 포기. 이상입니다. 위 내용들을 듣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수정하도록 할게요."


이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감시해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맞는 말이에요. 부모님의 목숨 값을 날려버린 불효자이고 미련하게 친구의 말을 듣은 바보이고 혼자서는 죽는 것조차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다시 한번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겠죠. 쓸모없는 나라도 의미 있게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삶보단 깨끗하게 정리될 수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서,,"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고 있음을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계약서입니다. 천천히 한번 읽어보시고 말씀드린 것처럼 서명을 해주시면 됩니다."

서류를 건네받아 앞장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지막에 서명을 했을 테지만 신중함을 더하게 된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말을 했다.

"간략하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해드리자면 계약서 작성 이후 100일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 기간 동안 의뢰인은 명시된 내용들을 이행해주시면 됩니다. 약속 당일이 되면 의뢰인에게 찾아갈 것이고 조용히 삶을 마감시켜드릴 것입니다. 의뢰인의 장기들은 반대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한 분들에게 전달됩니다. 세상에는 잘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최상의 몸상태를 이끌어내기 위해 의뢰인은 앞으로 운동을 하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여행을 떠나는 등 즐거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매달 500만 원씩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이겠죠. 현재 갖고 있는 채무상태는 깨끗하게 정리됩니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의뢰인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됩니다. 이는 도중에 마음을 뒤바꾸거나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뭐, 사실 그건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어딘가로 숨는다고 해도 끝까지 찾아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삶이 지금보다 더 비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다른 의미로 말씀드리자면 계약서 성립 이후 모든 장기의 기증자가 정해지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바꿔 죽지 않는다고 하거나 도망간다면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필히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펜을 쥐고 있는 손끝이 움직이다가 멈춰 서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분명히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대로 돌아가버린다면 비참한 현실과 다시금 마주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바보같이 망설이고 있다. 

남자는 그런 나를 보더니 미소를 띠며 "이곳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의뢰인과 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우리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니 신중히 결정하시면 됩니다. 참고 사항으로 먼저 말씀드리자면 끝내 서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준비된 알약을 드릴 것입니다. 혹시라도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몸에 해롭거나 이상한 약이 아닌 부분적으로 기억을 잊게 만드는 약일 뿐입니다.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노출되지 않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니 이해해 주세요." 

남자의 손바닥 위 흰색 알약 하나가 보인다. 

"부분적으로 기억을 잊는다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말 그대로입니다. 지난밤 사이트에 접속했던 시점부터 통화를 하고 이곳에서 만났던 일 까지. 대략적으로 하루 정도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 하루쯤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문제 될 일은 없지 않나요?"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이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집안에 틀어박혀 하루를 보냈을 것이 뻔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제가 서명을 하지 않고 되돌아 간 다음 기억이 사라진 뒤에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요?" 

"한번 만났던 이와는 다시 접촉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방침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단 한 사람도 서명하지 않고 되돌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펼쳐지는 것은 비참한 현실뿐이라는 것을, 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으니 서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알약을 먹을 것인지 선택해주세요."

펜을 들어 계약서 마지막 장에 서명을 했다. 홀가분함과 동시에 이제 내 삶조차도 내 것이 아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안내사항은 다시 한번 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자정을 기점으로 100일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승합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악몽을 꾸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는 상황이 반복됐고 끝은 결국 절벽이 나타났다. 나는 계속해서 절벽에서 떨어졌고 죽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떨어지고 죽고 말았다.

상의는 이미 땀에 젖어 축축함이 느껴졌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방안을 비추고 있다. 식탁 위에 올려둔 생수병의 뚜껑을 열고 그대로 입을 갖대 댔다. 엄마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양말을 벗으면 세탁물 보관함으로 겉옷은 옷걸이에 걸어 옷장으로 신발은 가지런히 신발 장안으로 냉장고를 열고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기 필요한 것을 꺼냈다면 닫을 것 어른을 보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안 좋은 것이며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우리의 가족사진은 벽면이 아닌 방바닥 한편에 널브러져 있다. 목을 매달려고 시도를 하던 날 사진 속 두 분의 모습과 마주치는 바람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리고는 벽에서 사진을 내렸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인생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그냥, 그런 게 있다며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날 밤 우리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또 한 번의 대화를 나눴다. 

"아들 요즘은 인생이 행복한 것 같니 아니면 반대인 것 같니?"

"글쎄요. 미치도록 행복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미치도록 불행한 것도 아니니 행복에 더 가까운 것이겠죠? 그리고 두 분 모두 건강히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니 큰 걱정거리가 없다는 것도 한몫하겠죠. 갑자기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예요?"

"옆 부서 동료 아들이 자살을 했다는구나. 유서에는 인생이 행복하지 않아서 그만 살고 싶다.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을 뿐 다른 내용은 없었다고 하더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화목한 가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존재하고 겹겹이 쌓이다 보면 어떤 식으로도 표출이 되는 거겠지. 대화가 아닌 끝내 자살이라는 결말을 짓고 말았지만. 혹시나 우리 아들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으면 아빠든 엄마든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럴 것 같아요? 살면서 오래오래 지켜보시죠 아버지. 아, 그리고 인생은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고 어릴 적부터 말하셨잖아요. 전 알아요 인생이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부분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그렇지 않은 순간들 또한 잘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뜻. 아빠가 제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죠?"

아빠는 다 컸다며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웃고 만다. 

이 대화가 우리 부자가 나눈 마지막 순간이었다. 


물을 마신 뒤 멍하니 방 안을 둘러봤다. 정리가 되지 않은 공간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휴대폰 알림이 울리고 화면을 바라보자 여러 개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대출 전액 상환 완료.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00만 원이 주민 은행 계좌로 입금되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이니 한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정확히 읽고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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