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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Jul 07. 2022

삶과

1.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선명하게 남는다.


내게는 여섯 살 여름, 그날이 그렇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던 기억은 해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져 갔다.  


장마가 시작되자 비는 그치고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비 맞기를 좋아하던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나가자며 애원했다.

엄마는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나를 말리곤 했지만 이내 못 이기는 척 우비를 입혀줬다. 

노란색 장화를 신고 개구리가 그려진 초록색 우산을 쓰고 공룡이 그려진 투명 우비를 입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아니 내가 제일 멋있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비가 오는 날의 놀이터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의 양쪽을 번갈아 가며 올라탔다. 

엄마는 친구들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냐며 묻곤 했는데 나는 모든 게 다 좋다며 웃어 보였다. 

시간은 길면 삼십 분. 

우리의 약속이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허락해줬으니 시간은 길지 않게. 

이따금 고개를 돌려 엄마를 찾을 때면 정해진 장소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을 치켜세운 뒤 입모양으로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며 시간을 알려줬다.

마음은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었지만 어린 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라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다음에도 다시 나오고 싶다면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장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발걸음에 아쉬움을 더하는 사이 비가 그치자 무지개가 나타났다. 


"엄마 저것 봐. 무지개야 유치원에서 알려줬어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


엄마는 똑똑하다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무지개의 끝에는 맛있는 것, 좋은 것,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내 곁을 떠나면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어린 나는 엄마가 떠난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좋은 장난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 끝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무지개는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무지개가 선을 이루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묻자 그것은 내가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이 많아서 무지개도 여러 개가 보이는 것이라고. 


그 말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서 무지개가 하나가 아닌 여러 개 보이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러 개의 무지개를 마주한 것은. 


훗날 알게 된 것은 내가 마주했던 것은 행복한 사람이라서 그러니까. 특별한 사람이라서 볼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여러 개가 나타나는 '과잉 무지개' 현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 그리고 무지개의 색은 일곱 가지가 아니다.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수백 가지의 색을 담고 있다.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것은 결국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영영 무지개를 볼 수 없을 것이다. 


2.

 

불행은 늘 예고 없이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찾아온다. 

큰 파도는 나를 뒤덮는다. 

숨을 쉴 수도 눈을 뜨지도 몸을 움직이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불행이라는 파도는 나를 집어삼키고 만다. 


3.


정부는 전년대비 청년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이는 최근 오 년간 계속 갱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발표했습니다. OECD 회원 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라는 타이틀을 두고서 청년 복지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정부는 현재의 문제점에 대해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조하여 대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여주기 식 탁상행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고칠 수 없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끄자 방안 가득 적막이 밀려온다. 냉장고의 모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살을 한다는 것은 나로서 이해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이었다. 거꾸로 말하면 살자가 되는 것처럼 죽을 용기가 있다면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힘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뭐랄까,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죽는다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는 나에게는 그것마저도 사치에 불과했다.


4.


자살을 검색하면 이런 문구가 화면에 비친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소중하다는 것은 귀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라는 존재가 그런 의미에 부합한 것인지, 어쩌면 과분한 표현에 불과한 게 아닐지.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고 같은 마음을 품었던 이들의 글을 자꾸 찾아 읽어보는 것은 웃기지만 정말 죽고 싶어서는 아닐지 모른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죽음에서 가장 멀어지고 싶은 알 수 없는 마음일지도. 어젯밤 어김없이 관련 내용들을 찾다가 우연히 이상한 글을 보게 됐다.


'삶을 포기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는 분들에게.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비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 벌어질 부담스러운 상황들에 대해서도 완벽히 처리를 해드립니다. 삶에서 당신의 흔적을 지우고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접속해주세요.'


무언가에 홀린 듯 사이트 링크를 누르자 검은색 배경의 단순한 화면과 가운데 에는 휴대폰 번호나 이메일을 입력하면 자신들이 연락을 하겠다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고 오른쪽 맨 아랫단에는 빨간색 글씨로 이런 문구가 다시 한번 적혀있었다. '본 화면은 오분 뒤 자동으로 새로고침 되어 사라지며, 주소는 수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번호를 입력하려다 멈추기를 여러 번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 입력하는 순간 죽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겁이 났다. 결국 적힌 대로 페이지는 오분 뒤 새로고침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감 때문이었다.

곧장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달라진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방안은 청소를 한 게 언제일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깔끔한 성격이 내 유일한 자랑이자 뿌듯함이었으나 그것은 이제 남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커튼을 걷자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왔다.

눈살을 찌푸리고 커튼을 다시 치고 만다. 그러자 햇살은 다시 사라진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를 몇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이다. 평소라면 거절을 했을 테지만 무심코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전화를 드린 목적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난밤 사이트에 연락처를 남겨주셨습니까?"

다짜고짜 묻는 말에 나는 잠시 동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다시 한번 질문드리겠습니다. 죽고 싶지만 용기가 없으십니까?" 그제야 알 수 없는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다.

"아,, 그런데 저는 연락처를 남기지 못했어요. 적기 전에 화면이 사라지는 바람에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화면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제 번호를 어떻게 알고 연락하신 거죠?"

"그것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여전히 망설임이 더해지신다면 보내드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고 찾아오십시오."

뚝 하고 통화가 끊겼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다니 이게 무슨,, 그리고 문자메시지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을 보낸다는 것일까.

궁금증은 이내 도착한 내용을 읽고 사라졌다.


'산다는 것은 때때로 죽는 것보다 더욱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 단체는 한 사람의 삶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세로 접근합니다.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하나뿐인 삶의 마무리를 의미 있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관심이 간다면 아래 주소로 적힌 장소에 찾아가 그곳에 비치된 공중전화에서  611을 입력해주십시오.'


누군가 내게 장난을 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비참하게 삶을 유지하는 것보단 의미 있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5.

굳게 닫힌 옷장문을 열었다. 외투 몇 벌이 전부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꺼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초라한 모습이고 싶지는 않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초췌하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생각해보니 몇 달 만인 것 같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것도 바깥으로 외출을 하는 것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조차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심하게 쳐다보진 않을까, 손가락질하며 욕하진 않을까.

그러나 아무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행색이 초라한 사람으로 취급될 뿐.

괜스레 떨리는 마음으로 문자메시지에 남겨진 주소를 검색했다.

이동시간은 한 시간.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한번 더 갈아타야 한다. 그런 뒤 십 분을 더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문밖으로 나서자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볼에 닿는다. 어색함에 어깨를 움츠리고 만다.

출퇴근 시간을 피했음에도 지하철 내부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시선은 계속해서 지도를 바라본다. 역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도착지와 조금씩 가까워져 갈 때마다 마음엔 무거운 추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사람들의 표정, 대화 너머로 피어나는 웃음. 무엇이 그렇게 행복하길래 웃음을 짓는 것일까. 왜 나는 그럴 수 없는 걸까 어째서 끝을 스스로 택한 죽음으로써 장식하려는 것일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들의 끝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들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는 말. 반대로 포기한다면 결국 패배자에 불과한 삶일 뿐이다. 나를 두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시선은 창밖으로 향한다. 그래 봤자 보이는 것은 어두운 터널과 반복되는 지하철 역 내부의 모습이 전부다.

역을 나와 정류장으로 향했다.

도착시간까지 십 분이 남았다. 기다리는 도 중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뒤돌아보자 할머니는 어느 장소에 대해 가는 방법을 물었지만 고개를 저어 모른다는 의사를 내비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다시 한번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별말 없이 다른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버스에 올라타 가장 뒷좌석에 앉았다. 누군가들이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에 가장 뒤라면 그런 생각들에서 조금은 해방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버스는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 이내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갔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버스는 시동을 껐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은 종점이었다. 기사님은 내가 있는 뒷좌석을 한번 쓱 쳐다보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뒤따라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곳곳에 걸려있는 재계발 관련 현수막이었다.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곳곳에 보이는 빈집들은 대문이 활짝 열린 채로 방치되고 있었고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미쳐 치워지지 못한 가구들과 쓰레기들이 한데 뒤섞여 있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언제쯤 뉴스 에선 휴대폰의 보급화로 인해 쓸모를 다해가는 공중전화부스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점차적으로 공중전화를 없앨 계획이라는 것까지.

그런데 이런 곳에 공중전화가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지도는 쭉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공중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더라도 도착이라는 말만 뜰뿐이다. 다시 한번 주변을 살피자 오래된 주택가 사이 한눈에 보기에도 큰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 아래 공중전화부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까이 다가가 떨리는 마음으로 번호를 눌렀다. 아니, 한번 누르고 손을 떼고 번호 두 개를 누르고 또 한 번 손을 떼고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러웠다. 이렇게까지 죽어야 하는 가 싶은 생각에 눈물은 볼을 타고 마른땅으로 떨어졌다.

인기척에 뒤돌아보자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곧바로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할아버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나를 떠나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번호를 하나씩 눌렀다. 6, 1, 1,

수화기 너머에서는 몇 초간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 문자메시지를 보고 연락드립니다. 그,, 죽는"

남자는 말이 채끝 나기 도전에 알겠다는 듯 내게 말을 한다.

"네 어떤 목적인지 알겠습니다. 십분 뒤 검은색 승합차 한대가 근처에 서게 될 것입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이마엔 땀이 맺혔다. 아마도 긴장을 해서 그런 것 같다. 목소리만 들었을 땐 인상이 험상궂은 무서운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십분 뒤 예고한 대로 검은색 승합차 한대가 멈춰 섰다. 조심히 한 발자국씩 옮겨갔다.

그 순간 차량의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하와이얀 셔츠에는 야자수가 그려져 있다. 바지는 청바지. 신발은 삼색 슬리퍼.

머리에는 선글라스를 걸치고,

예상치 못한 모습에 몸이 굳고 말았다.

남자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십 분 전 통화했던 김석우라고 합니다."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엉거주춤하며 악수를 했다.

"차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뒤따라 차에 올라타자 내부는 마치 영화에서나 볼법한 모습이었다.

차량을 개조해 마치 움직이는 사무실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과 마주한다.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흰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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