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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Nov 26. 2021

엄마 보러 가는 길

- 산소에도 가을이 - 

  지난 주말 고향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거의 이십 년이 되다 보니 기제사만 지내고 성묘는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삼 년 전 엄마를 아버지 옆자리에 모시고부터 다시 산소에 다니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추석에 성묘를 가지 못했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햇살 좋은 날, 꽃 사 들고 엄마 보러 가야지 맘먹은 채로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지난 금요일 언니가 가족 톡방에 산소에 갈 거라는 메모를 남겼다. 언니는 토요일 저녁때쯤 고향 집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난 마침 잘 됐다 싶어 언니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고향 집으로 갔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고향 집은 삼 년째 비어있다. 고향에 갈 때마다 동네에 빈집이 늘어 마음이 휑했었는데 우리 집마저 빈집이 되었다. 고향 집은 형제들이 모일 때만 잠깐 북적일 뿐 평소엔 텅 비어있다. 근처에 사는 올케가 어쩌다 들러보면 텃밭과 마당 꽃밭에 들고양이들만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마당과 텃밭은 옆집에서 대신 텃밭을 가꾸고 있어 그나마 잡초 덤불을 면했다. 엄마가 계실 땐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 가 꽃밭에 늘 꽃이 피어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한 포기 두 포기 얻어다 심은 꽃이 번져 집에 갈 때마다 마당을 환하게 밝혀주곤 했었다. 그때 엄마는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꽃을 심고 가꾸는 일로 채우셨던 것 같다. 


  고향 집 거실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니 마른 철쭉과 장미 가지 위에 희끗희끗 솜뭉치 같은 것이 흩어져 있었다. 흰 가을 장미가 아직 피어있었나 싶어 나가 보았더니, 장미 가시덤불 사이로 새하얀 국화가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어 싱싱해진 국화를 엄마에게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집에서 사는 꽃보다 엄마가 직접 가꾸던 꽃을 보면 더 좋아하실 것 같았다. 장미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국화꽃을 가지 채 잘라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 가운데 노란 수술과 하얀 꽃잎이 어우러진 모습이 엄마 마음처럼 따스하고 푸근해 보였다. 

 

  언니와 난 선산 아래에 차를 주차하고 산소로 올라갔다. 숲 가장자리에 밤나무가 늘어서 있어 길 위엔 마른 밤송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밤송이가 벌어질 때쯤 집에 가면 엄마는 뒷산에서 주워 온 밤을 삶아놓곤 했었다. ‘올핸 밤 풍년이니 좀 일찍 왔다면 알밤을 많이 주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참나무와 밤나무 가지에서 마른 잎이 떨어져 내렸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소리가 발목에 감겨왔다. 

 

  엄마, 아버지 산소에도 온통 가을의 갈색이었다. 언니와 난 고향 집 마당에서 꺾어 온 국화 꽃다발을 제대에 올려놓고 절을 올렸다. 제대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엄마에게 가족들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애지중지했던 손주들 건강하게 잘 있다고, 얼마 전 도쿄로 나간 동생네가 이제 안정을 찾았고, 중국에 있는 막내랑 통화했는데 식구들 모두 잘 지내고 있더라고. 언니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나 죽으면 니 아버지 옆엔 안 갈란다. 죽어서도 나란히 누워 싸울 일 있냐?”라고 얘기했었다고 했다. 우린 마른 잔디 사이 푸릇푸릇 올라온 풀을 뽑아내며 그곳에선 두 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시란 당부도 덧붙였다. 

 

  산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산소와 주변 산과 들에 가득히 쏟아져 내리는 늦가을 햇볕, 밝은 갈색으로 물든 메타세쿼이아 군락지, 잎을 떨구며 몸을 드러내기 시작한 가을 숲이 고즈넉했다. 엄마, 아버지가 이렇게 따뜻하고 환한 곳에 계시니 안심되었다. 산소를 내려오는 길엔 엄마를 만나 편안해진 마음 위로 휑하니 쓸쓸함이 밀려왔다. 더는 얼굴 보며 손잡고 얘기할 수 없어서, 모든 게 사그라지는 가을이라서, 따뜻하고 환한 햇볕 아래서도 쓸쓸해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20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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