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독! 그 치우침에 관하여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서점에서 책을 만지작하다 보면, 내가 기꺼이 사게 되는 책의 장르가 정해져 있다. 추리소설, 인문과학, 고전, 그리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전과 몇몇 역사 소설.
이러한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나는 아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무식한 걸까?' 자책하면서 또 그런 책들을 읽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순간, 독서만 할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책을 읽는 사람들 혹은 다른 책을 읽는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독서 토론 모임을 찾게 되었다.
햇수로는 2년, 만으로는 1년 조금 넘게 독서 토론 모임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독서토론을 할 때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구나!'('무슨 똥소리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독서토론을 해보면 안다.)라는 걸 새록새록 느낀다.
토론에서는 시시 때때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소설들을 읽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주로 과학책, 인문학 도서들)을 읽어야 활 때도 있다.
읽고 난 후 토론을 할 때, 멤버들의 책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나와 같은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와 같은 이유로 책이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나와 같은 이유는 아니더라도 책에 대한 호 혹은 불호가 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구절을 콕 짚어 감명받은 사람들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흘려 읽은 부분에서 의미심장한 통찰을 내비치는 이도 있다.
전체를 조망하면서 작가와 시대적 배경을 아우르며 글에서 시대사적 의미를 끌어내는 이도 있고, 스토리에서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이들이 함께 있다.
날 선 비판이 있기도 하고, 무한한 칭찬이 있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의견이 나누어져 격렬하게 토론이 진행되기도 한다.
독서토론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소설도 많이 읽고 있다. 좋아하지 않는 책이 선정이 되면, 처음 1년 정도는 참여하지 않고 지나쳤는데,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지적해 준
이가 있었다. 독서 모임을 오게 된 이유도 그렇거니와 편독을 좀 방지해보고자 했던 처음의 내 생각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소설을 읽는 모임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호불호를 떠나 그런 책에서도 분명 내가 느끼거나 배워야 할 어떤 것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임의 어떤 이는 소설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한다. '막장드라마보다도 소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공감을 잘 못하는 이유가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아서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소설이라고 해 봐야 역사적 맥락이나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의 소설, 추리소설만 주로 읽다 보니 일상적인 삶에서도 공감보다는 분석을 하는 나를 늘 발견하곤 한다.
아무리 읽어도 로맨스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읽어본다. 그들은 어쩌다 사랑하게 되었는지, 사랑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헤어짐이 가슴 찢어지는 고통? 인지 책으로 배운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무한히 많다. 책을 읽을수록 더욱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때는 종일 책만 읽어도 시간이 부족하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읽는 것은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한다.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참으로 느리게 간다. 일부러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두껍고 손이 가지 않는 책 한 권을 꺼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불호의 장점이랄까?
호불호가 명확하면 판단의 오류를 줄여준다.
호불호가 명확하면 시간적 경제적 낭비를 방지해주기도 한다.
대체로 호불호가 명확하면 다양한 경험이 부족해질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편견이 호불호의 누적에서 온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이 중 누구라도 딱 세 번만 불호인 어떤 것을 해 보기를 추천한다.
싫어하는 음식(알레르기 때문에 먹으면 큰일 나는 음식 말고), 싫어하는 책, 싫어하는 음악, 싫어하는 영화 등등.
불호이기 때문에 피했던 어떤 것을 딱 3번만 해 보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어쩌면 지금까지와 다른 느낌이나 생각이 들어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정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터이니.
그 속에서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통찰을 맞이할 작은 씨앗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터이니.
그래서 이번에도 소설책 토론에 참석을 한다. 이번 책은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9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