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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Feb 13.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3. 청춘은 왜 아파야 하나요?


왈왈왈, 왈, 왈왈왈, 도나가 잠깐 낮잠을 자려던 참에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씨스터!“

”어디야? 집이야?“

”집, 왜?“

”나랑 산책가지 않을래?“

”갑자기 무슨 산책?? 혹시 너 무슨 일 있어?“

”아니 뭐 그냥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고싶어서...“

”가야지 그럼! 30분 후에 은하수매점 앞에서 보자. 바람 쐬는데 또 먹을게 빠질 수 없지“

”콜“     


진주가 유일하게 쓰는 영어가 ‘콜’이다. 늘 도나에게 넌 왜 이렇게 영어를 좋아하냐며 한글을 사랑하자고 말하는 친구다. 그럴 때마다 도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해외연수 못가서 한이 돼서 그런다고 했다. 도나와 진주는 서로 성격도 가정환경도 많이 다르지만, 진주가 오미리로 이사 온 후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유일한 단짝 친구였다. 적어도 사회로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나는 이제 막 어깨를 넘기기 직전인 거지존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볼캡 모자를 쓰고 편한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집에서 은하수매점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도나는 항상 약속시간 10분 전에 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반면에 진주는 시간을 딱 맞춰서 오거나 조금은 늦는 친구였다. 오늘도 역시 도나가 일찍 도착해서 매점에서 미리 먹을 것을 사고 진주를 기다렸다. 다행히 오늘은 약속시간에 맞춰왔다. 도나는 맥주와 안주가 들어있는 봉투를 진주에게 보여주며 뿌듯하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 넌 먹기만 해“

”감사, 그럼 또 거절 안 하지.“     


진주와 도나는 늘 가는 행운계곡으로 향했다.

행운계곡은 동네 사람들에게 힐링의 장소였다. 도나와 진주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늘 가던 자리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앉았다. 청량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둘은 한동안 말없이 맥주만 홀짝였다. 그리고 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오늘 무슨 일 있어?“

”... “

”뭐야...“

”흑흑흑 흐어어어어엉“

”뭐야 진짜, 왜 그래?“


도나는 생전 처음 보는 친구의 울음에 어떻게 위로해줘야 될지 몰라 당황했다. 그것보다 뭐때문인지 더 궁금했다.     


”나...있지...발가락 잘라야 된대...흑흐흑 흐어어엉“

”뭐? 아니 왜?“


도나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고백에 뭐부터 아니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도저히 감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슬프게 울고 있는 친구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진주야, 일단 좀 진정하고 천천히 알아듣게 처음부터 이야기 해봐.“

”내가 전에 어렸을 적에 러시아에서 살았었다고 했던거 기억나?“

”웅 기억나, 7살인가 8살 때까지 살다가 왔다고 했자나.“

”맞아, 그때 나 러시아에서 발에 동상 입었었는데, 거기서는 잘 치료하면 수술까지는 안해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 오른쪽 발가락이 너무 시리고 저릿해서 어제 병원 가봤는데 오른쪽 엄지 발가락 잘라야 된대…흐어어엉“

”...“

”그래서 일주일 뒤에 수술하기로 했거든? 근데 나 발가락 잘리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게 뭔지 알아? 발가락을 자르면 내가 좋아하는 발레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거야...“

”...“     

도나는 아무말도 없이 진주의 등을 토닥여줬다. 진주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발레 특성상 발 끝으로 서서 추는 춤인데 발가락이 없으면 힘을 줄 수가 없어서 하기 어렵다. 진주는 깊은 절망에 빠져 쉽게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나는 진주가 그 감정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조용히 옆에서 기다려 주는 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진주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고 진정될 때쯤 도나는 조심스레 한마디 꺼냈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길이 너의 길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도나는 잠깐 진주의 표정을 살펴본 후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너는 야무지고 똑똑해서 무슨 일이든 다 잘할 수 있다는거야! 또 알아 너가 나중에 유명한 웹튼 작가가 될지? 저번에 보여 준 발레리나 그림 보면서 진짜 감탄했다니까? 어떻게 사람의 손끝에서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신기할 정도였어. 진짜로!!“

”정말? 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긴 하는데,,,발레만큼은 아니지만...그래! 어디 한번 해보지뭐 너 말대로 내가 진짜 유명한 웹툰 작가 될지 누가 알겠어?“     


진주는 도나의 위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그 말에 자신감을 얻은 건지 이미 벌어진 일 되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겠다며 그림을 그려 보겠다고 했다. 도나는 그런 진주의 다짐을 보며 내심 뿌듯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아파하는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했는데 본인의 위로가 조금은 통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자, 아자, We can do it!!“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다 잘될 거야.”     


진주와 도나는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둘은 서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서로의 버팀목이 되자는 생각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진주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 보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도나는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해가 산 중턱에 걸려 있었다. 산 너머에 붉게 타오른 석양의 모습은 마치 저녁을 알리는 소리 없는 시계 같았다. 실제로 해질 때쯤 저녁을 대체로 해먹었다. 도나는 할머니가 곧 일어날 것 같아 미리 저녁준비를 했다. 저녁은 뭘 할지 고민하면서 부엌에서 재료를 찾고 있는데 할머니가 도나를 불렀다.     


“붕어빵 뭐 찾고 있어?”

“깜짝아 놀랬잖아!! 할머니 왜 벌써 일어났어?”

“너무 많이 잤어, 하루를 다 써버렸네 쯔쯔”

“많이 피곤했나 봐! 할머니 이렇게 낮잠 오래 자는 거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으어어...으아아아아~아 아이고 하품이,,,저녁은 간단하게 옥수수랑 감자 쪄 먹을까?”

“오 완젼 굿 아이디어!”     


평소에도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도나는 좋아라 하고 방방 뛰었다. 한 번씩 뛸 때마다 마룻바닥에서 나는 삐걱 소리는 마치 장단이라도 맞추듯 도나가 멈출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분명 저녁은 도나가 한다고 했지만, 한평생을 부엌살림을 해 온 할머니 앞에서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할머니가 저녁을 하고 설거지를 도나가 하기로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도나와 할머니는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도나는 가장 먼저 가루가 톡톡 터지는 감자부터 집어 먹었다. 그리고 먹던 감자를 앞접시에 내려놓고 말했다.     


“할머니”

“응?”

“나 오늘 진주 만났거든? 근데 진주가 발가락을 잘라야 된대,,,”

“뭐? 발가락 다쳤어?”


할머니도 많이 놀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게 진주가 어렸을 적에 러시아에서 살다 왔다고 했던 거 할머니도 기억하지?”

“그럼, 기억하지”

“그때 동상에 걸렸었는데 한쪽 발은 심각해서 그때 바로 수술하고 한쪽 발은 치료하면 괜찮을라고 했다는데 최근에 다시 안 좋아져서 수술해야 된다고 했대. 그래서 진주가 엄청 힘들어했어,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게 발레였는데 이제 못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뭐 하면 좋을지 고민이래,,,”

“어이구, 많이 속상했겠네 이제 막 성인이 돼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될 때인데,,,쯔쯔 안됐다.”

“그러니까…근데 나도 고민이야.”

“붕어빵은 뭐가 고민이야?”

“나? 음,,,복잡해,,,하고싶은 것도 있고 해야만 하는 게 있어서 둘 중에 어떤 걸 선택해야 될지 모르겠어!”

“하고싶은 건 뭐고, 해야되는 건 뭐여?”

“음,,, 하고싶은 건 해외유학 가서 생물학 공부하고 싶고,  해야 되는 건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지, 그러기 위해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되는데,,,사실상 뭐 이것도 너무 어려우니까 후,,,”     


도나는 이야기하다보니 본인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가 없는 것도 모자라 할머니도 이제 나이가 많으니 현실적으로 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속상해하기는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 끝에 할머니가 말을 꺼냈다.


“할머니는 우리 붕어빵이 해야되는 것 말고, 하고싶은거 했으면 좋겠네”

“흠,,,할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 나는데? 복잡했던 생각이 싹 정리됐어. 히히 고마워”     


도나는 본인이 치우겠다며 저녁먹은 그릇들을 정리해서 주방으로 갔다. 도나는 평소에 설거지 하면서 생각정리 하는 것을 좋아했다. 더러워진 그릇들을 세척하다보면 마음에 있던 묵은 때나 생각이 깨끗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할머니에게는 복잡했던 생각이 다 정리됐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설거지 하는내내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 설거지가 끝날때쯤 어느정도 복잡했던 머릿속 생각들이 조금은 정리되었다.     


도나는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할머니의 허리를 꽉 감싸 안았다. 할머니는 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머니의 거친 손길이 닿자 도나는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듯이 바로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도나의 잠자는 모습을 한참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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