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재원이야기
8.
학교 종소리가 울리고 맨 뒤에 앉은 학생들이 일어나 차례로 답안지를 걷기 시작한다. 올해 마지막 기말고사다. 재원은 다음 시험 과목을 위해 가방에서 요약본을 꺼냈다. 익숙한 위치에 있는 내용에 눈길이 향했고 부디 많은 이번 시험에는 더 좋은 성과가 나오기를 바랬다. 그때, 재원의 손에 있던 종이가 사라졌다. 찌질이 중 한명이 재원의 종이를 낚아챘다. 네가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조롱 섞인 말과 함께 종이를 흔들었다.
할아버지를 요양하던 아빠가 허리를 크게 다치셨다. 이번에는 상태가 심하다. 구청에서 지원하는 요양 보호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함흥차사다. 재원이 돕겠다고 했지만 아빠와 엄마는 극구 반대했다. 적어도 아들에게는 학교 마치고 나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기쁨을 전하고 싶은 재원은 기말고사를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만든 요약본을 찌질이는 뺏어갔다.
재원은 떨리지만 평소보다는 큰 목소리로 그만하라고 말했다. 다소 소란스러웠던 교실은 순간 적막감이 멤돌았다. 종이를 들고 조롱하던 학생도 당황했다. 재원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달라는 말과 함께. 당황한 찌질이는 여기서 종이를 돌려주면 기싸움에 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짜증 나게 종이를 흔들어댔다. 재원은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이다. 가장 꼿꼿하고 당당한 자태의 세 번째 손가락인 나를 천천히 들었다. 주위는 조용해지고 찌질이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