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 써 봄 May 23. 2024

약 때문이야.

피곤은 약 때문이야.

"아니 그걸 왜 못 먹냐고!!"

매일 아침마다 우리 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다. 오늘은 정말 짜증이 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우리 집의 아침 큰 일과는 아이들 약을 먹이는 일이다. 

가루약만 먹을 수 있을 때에는 캡슐약을 일일이 까서 요구르트에 타서 주었다.

아침 루틴이었던 약 먹이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 아이 모두 얼마 전부터 알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약이 1가지 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좀 더 효과가 긴 약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먹기 시작한 새로운 약 애매하게 큰 크기의 약.

큰애와 둘째는 잘 먹는데... 문제는 막내다. 


자꾸 입안에서 약을 굴리니 약이 녹고 써서 뱉고.

각자 몇 달 치 약을 받아서 오는 건데 자기 몫의 약을 하루에 하나는 버리는 셈이니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 먹었을 것인데, 아까워도 못 먹는 것이라 아쉽기만 하다. 


뱉어놓고 녹았으니 새 알약을 내 오라는 아이의 얼굴은 제법 얄미웠다. 

오늘은 그냥 먹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이는 끝내 삼키지 못했다. 

한알이 두 알이 되자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졌다. 


"아우 정말" 결국 어깨를 한 대 퍽 때리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이성은 있었던 상태였다. 때릴지 말지 선택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멈추지 못했다. 

한 대 때리고 나면 바로 후회할 것을. 


약은 용량에 따라 크기가 약간 다르다. 

얼마 전에 먹다 남은 27mg의 약을 꺼냈다. 

한 번에 성공한 아이. 역시 약의 크기가 문제였었나보다. 


"엄마가 때려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못 먹어서 미안해"

서로의 눈도 못 쳐다보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한번 참을걸 결국 폭발하고만 나를 자책한다. 


아침마다 이 실랑이가 너무나 피곤하다. 

약 때문이다. 나의 피곤은 '약'먹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알약을 먹었다. 

2학년인 아이에게는 너무나 어려웠을 일. 첫째 아이도 4학년이나 되어서 먹었는데, 쌍둥이인 둘째가 잘 먹으니 셋째도 당연히 먹을 거라고 내가 기대했던 것이다. 

난 아직도 멀었다.


아이가 글감이라고 늘 이야기한다. 살아있는 글감이라고, 나에게 주어지는 글감이 많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걸 글감으로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어른답게 참아주지 못하고 무언가 일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결국 참지 못해 어깨를 때렸던 것처럼. 


언제쯤 성숙한 엄마가 될까. 성숙해지는 그날이 오기나 할런지 오늘 하루 마음이 쓸쓸하다. 

아이에게 친절한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오늘도 바라본다. 



약 한 알에 얼마인 줄 아냐...

이전 14화 공부가 그렇게 싫으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