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힘 1
20살 새파랗게 어리다고 이야기하는 새내기 때 철학 교수님의 수업인 <철학개론> 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철학과도 잘 어울리는 포스를 풍기는 소유자의 등장은 정말 센세이션 했었다. 그때 매료된 교수님의 '재밌는(?)' 철학 시간은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20살이 어느덧 만 23살, 실제로는 24살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낯설었던 대학은 익숙하다 못해 지겹게 느껴졌고 졸업을 얼마 남지 않은 이때 수업을 찾아서 들어야 했다. 영어로 교양 필수라는 큰 걸림돌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흥미'가 필요했다.
언제 식을지 모르는 흥미 하나로 인해 선택한 과목은, 철학개론으로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겨주신 교수님의 수업인 <공학윤리>였다. 공학도, 윤리도 관심이 크지 않는 나에게 이런 시련을 스스로 선사하는 건 잘못인지 잘한 일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일단 수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오티가 지나고 1번째 수업이 시작되었다. 특유의 교수님의 영어 개그가 내 코드에 적절하게 맞아떨어졌고, 그래서일까. 흥미가 하늘을 치솟았다. 교수님의 개그라면 16주 차는 거뜬하게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쁨이 내면에서 차올랐다.
그래, 교수님이라면 철학보다는
현실적인 질문을 하는 나에게 '철학'의 재미를 일깨워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내 안에서 하나씩 피어났다. 수업을 듣다 보면 사람들은 피로하다고 한다. 나 또한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생각이 넓게 커져가는 걸 느낄 때면 나도 모르는 희열(?)을 받고는 한다. 머리가 커지는 기분이 좋아서일지는 모르지만 그게 마냥 기쁨으로 다가온다.
교수님은 수업을 듣는 우리에게 이야기하셨다. "주어진, 대답에 만족하지 마라"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계속해서 질문에 대한 다른 답들을 해보는 연습을 하라는 의미다.
살면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생각의 크기는 여기에 따로 있다. 이 수업을 들은 다음 날, 타수업에서 토론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나만의 질문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5개의 질문이 들었고, 이 질문에 대한 빠른 답과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나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함께 토론을 했던 분이 나에게 "책을 읽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진짜 문장구사능력이나 생각하고 질문하는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처음에 이야기를 듣고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에 그쳤다. 그 이후에 생각해 보니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폐해에 대한 암담한 현실을 쓴 글은 따로 있지만, 스스로도 대학에서 매일 듣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얻었지?'
그 질문에 이 수업이 또 다른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어진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 법. 그것을 배웠다면 이 대학이 가지는 값어치를 배로 늘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고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시리즈는 철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질문하고, 사고하고, 깨닫고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