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짜리 건물을 덮은 커다란 현수막 하나가 펄럭인다. 도저히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축 어르신 유치원 개원”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다시 아이가 되어간다.
저녁을 준비하던 어느 날, 엄마가 냄비를 태웠다. 그날 우리 집은 다들 엄마 눈치를 보느라 이미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러 있었다. 아무리 엄마를 위로하고, 갖은 이유를 대며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냄비 바닥처럼 시꺼멓게 탄 엄마 마음도,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나 보다.
“늙으면 다 그런가 봐. 자꾸 깜빡깜빡한다.”
애써 덤덤하게 말하는 엄마 얼굴에는 무기력함이 스며 있었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다.
“뭘 늙으면 그래.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던 거지. 나도 요즘 핸드폰 어디 뒀는지 맨날 찾아.”
나도 엄마처럼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해본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걸. 늘 올려다보기만 했던 아빠의 키는 어느새 내 눈높이에 맞춰졌고, 엄마는 이토록 작았나 싶을 정도로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이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으로, 내가 미처 따라가지 못한 세월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자식은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부모를 챙기게 된다. 해외여행이라도 보내는 날이면,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이것저것을 챙긴다. 공항에서 게이트는 잘 찾을 수 있을까, 입국심사서엔 뭐라고 써야 할까, 밥은 제때 먹을까, 숙소는 잘 찾을까. 걱정이 끝이 없다. 어릴 적, 소풍날 내 도시락을 챙기던 엄마를 이제는 내가 챙기고, 어깨에 나를 목말 태워주던 아빠를 이제는 내가 부축한다.
“밥은 먹었어?”
하루에도 꼭 묻는 끼니 걱정.
“요즘 잠은 잘 자?”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엄마 걱정.
“허리는 좀 어때?”
수술 후에도 아픈 아빠 걱정.
이제는 내가 그들의 안부와 건강을 먼저 챙긴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위치가 바뀌어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시 아이가 되어간다. 마치 녹록지 못한 세월 탓에 잊힌 유년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바라듯, 그렇게 다시 아이가 되어간다.
인생은 돌고 도는 물레바퀴. 서로 주고받으며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그들이 나를 돌봐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들을 돌볼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 두 팔 벌려 그 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부모님께 드리는 안부 전화가 일상이 되었고, 날 향한 그들의 “보고 싶다”는 투정이 귀엽게 느껴진다.
나는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