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급작스럽게 결정하게 되었다.
몇 달 전 신청한 청년주택이 우여곡절 끝에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선 생각지도 않은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빌라인데, 어쩌다 보니 같은 곳에서 5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었다. 처음에 입주할 때만 해도 길면 2년, 짧은 면 1년 안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서울의 집 값의 현실과 어찌 보면 지금의 거주지에 만족하며 어느덧 5년이 흘렀었다. 처음 이 빌라에 입주할 때, 어떤 청년이 여기서 5년 동안 살다나 갔다는 말을 집주인아주머니가 해주셨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이곳에서 5년 동안 사는 거지 싶었는데 내가 그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인터넷을 통해 내가 거주할 청년주택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지금 사는 빌라보다는 좁은 오피스텔이지만 드디어 창문을 통해 훤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곳의 창문 풍경은 대학교 기숙사를 제외하고는 다들 다른 건물의 벽을 바라보거나, 좁은 골목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주거지의 풍경이 참 낯설게 느껴졌고, 내가 이런 좋은 풍경을 가져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6평이라는 평수, 가구들을 제외한 네모난 공간은 3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훤한 풍경 덕분이지 어떻게 이곳을 채워갈지 마음이 어쩐지 설렌다. 인간이란 바라보는 공간, 환경에 따라 마음이 참 많이 영향을 받는다.
이사 가는 곳의 평수는 오히려 더 줄어들었지만, 밖의 훤한 풍경을 본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마음의 한 공간을 크게 열어주는 것만 같았다.
햇살이 내려오는 방에서 내가 살게 되다니. 공간이 한 개인에게 주는 영향은 막강한 것 같다. 청년주택이 다 그러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비록 방은 좁더라도 경치를 훤하게 볼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듯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혹은 지하 단칸방에 있으면 사람이 밝게 살고자 해도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거나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집주인아주머니는 "이곳에서 5년이나 살았구나! 오래 살긴 살았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오피스텔로 이사 간다고 하시자, 좋은 곳으로 가서 축하한다고 하시며 조금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다. 오피스텔로 가는 것이 전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주머니에게선 굉장히 미안해하셨다. 사실 주변 청소며, 사람들 단속도 잘해주시면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 주셨다.
단지 내가 방청소를 게을리했었을 뿐이었다.
비록 창문의 풍경 반투명한 가림막으로 가로막혀 있었지만, 방 안에서의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아쉬움이라면 겨울에 난방을 틀면 들리는 보일러 소리와 큰 창문이 있어도 가림막이 있어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점 정도. 그 부분이 아쉽긴 했었다. 아주머니와 정이 참 많이 들어서 그런지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전에 집을 놀어온 친구들도 하나같이 "야!, 무조건 이사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이사는 확신이 되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나는 집주인아주머니에게 5년 동안 성실히 월세를 납부하고 웬만한 잔고장은 스스로 고쳤으며 때로는 고지서를 깜빡 잊으실 때면 먼저 찾아가 말씀드려서 냈던 나름 착한 임차인이었다.
아직 여유가 있어 이삿짐을 줄이기 위해 책이며 짐, 옷을 마구 버리거나 당근 거래하고 있다.
나의 애착 옷인 미니언즈 티셔츠도 이번 기회에 과감히 버렸다. 좁은 방에 놓인 50권이 넘는 책들도 친한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때로는 당근 거래를 통해 팔고 있다. 정든 물건과 책을 놓아주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책을 떠나보내는 것은 정든 자식과 이별하는 부모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조금 더 훤해진 방을 보면서 진즉에 이렇게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렇게 미리 모두 비워뒀으면 예쁘고 깔끔하게 집을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늘 이렇게 일상의 변화가 있을 때에야 깨달음을 깊게 느끼는 존재인가 보다.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덜어낼 생각을 잘하지 못한 걸 보면 익숙한 것에 젖어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이제는 새로운 곳에 가는 만큼, 또 다른 생각과 시야로 삶을 바라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