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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형 Aug 06. 2023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배달원도 사랑할 수 있나요?

  고민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오는 동생 녀석이 있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으면 동생은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형님은 낮에 걸든 밤에 걸든 걸 때마다 바람소리부터 슝슝 들리노?" 그러면서도 항상 열심히 산다고 칭찬을 해온다. 나는"그게 아니라, 장사를 하게 되면 사람이 이래 돼버린다."라고 설명해 줬다. 내가 서른 한살이고 동생이 서른 살인데 벌써 아들이 두 명 있다. 그리고는 셋 째가 태어난다고 말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태어난 조카 녀석 잠깐 돌봐주는 것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아이가 3명이면 가능하겠냐고 물었었다. 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말이 "아내가 3명은 낳아야 한단다. 결혼하기 전부터 한 말인데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도 진짜 3명을 낳자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는 "니는 진짜 아내 잘 만났다. 요즘 세상에 두 명이 만나서 3명을 더 탄생시킨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다."라고 동생이지만 존경에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근데, 형님은 여자친구를 왜 안 만나는 거고?" 이 질문은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성별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사랑하는 이성이 없을 경우에 외롭지 않다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생에게는 대충 둘러댔지만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아,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동성 친구들 중에 진짜 나만 여자친구가 없던 것이다. 이제는 결혼을 한 친구도 제법 있고 이번연도는 특히나 청첩장을 많이 보내왔다. 정말 어쩌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애인이 있거나 아내가 있거나 할 때 선 듯 먼저 연락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 친구들이 혼자일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해 본 적이 없다. 먼저 연락해 왔을 때만 시간을 내고는 했었다.


  그냥 일반 직장을 다닐 때는 기회가 되면 이성과의 만남을 종종 가져보고는 했었다. 내 장사를 시작했을 때가 27살이니 딱 그때까지만 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은행원에게 난생처음으로 반했고 말 한마디 못 건네봤었다. 2020년에 출간한 저서에도 이 내용을 수록했었는데 내가 이렇게나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바보 같았고 한심했다. 그냥 말이라도 걸어볼걸, "남자친구 있어요?" 그 한 마디를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쪼록 이후로는 일만 했다. 중간에 코로나를 만나게 되면서 배달 주문이 늘어나자 매일 매 순간 시간에 쫓겼기 때문이다. 배달 앱에는 고객과의 약속 시간이 표시되는데 그 타이머가 내 5년을 쓸고 지나갔다. 물가가 폭등하면서 밑바진 둑에 미친 듯이 물을 부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가게에서 어머니 또래쯤 되는 손님이 물었다. "삼촌은 장가갔어요? 아니면 애인 있어요?" 그때마다 나는 "아, 없는데요."라고 솔직하게 답을 한다. 그날따라 들려오는 대답에서 정곡이 찔리고 말았다. "요즘, 누가 국밥집 며느리로 오겠어요. 그것도 맞는 현실이네요." 그 말을 듣고는 정말 부끄럽지만 사실상 내 정의로 자리했다. 나는 열심히 살지만 가난하고 촌스러운 배달원이기에 앞으로의 사랑은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여 생각했다. 아, 내가 여자만 안 만나면 기죽을 일은 없다. 친한 친구 녀석이 분명 사랑은 시간을 내서 노력해야 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쟁취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시간이 눈곱만큼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껏 해온 대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게 가장 이롭다고 생각했다.


  이성에 관한 자존감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직시했을 뿐이다. 열심히 산다고 해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고 정말 만약 스무 살 어느 날 택시기사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갑자기 짠 하면서 짝이 나타나서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되레 더 두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돌잔치를 하루 앞둔 아이를 두고 목숨을 잃은 배달 기사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 가게에서 식사까지 종종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토바이 배달통에 장착하는 등받이라는 게 있다. 아무래도 장시간 운행을 하다 보니 허리에 가는 무리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아이템인데 인터넷 쇼핑으로 알아보던 중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적이 있다. 어떤 상품 하나를 봤는데 리뷰가 많이 달려있지도 않았다. 그중에 절반 이상이 배달원 남편의 아내들이었다. 두 개가 기억난다. 하나는 "우리 남편 배달하는데 이거라도 달아주면 허리가 좀 편해지겠죠?" 다른 하나는 "배달한다고 고생하는 남편에게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하네요. 좋은 상품 감사합니다."였다. 이 리뷰 두 개를 보고 마음의 문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잠가두지는 않게 되었다. 이런 아내라면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이상형을 떠올려봤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성향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딱 한 가지 '감성'이 통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성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서 같지 않고 다를 경우에는 이기적인 것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책 읽기를 죽어도 싫어하는 애인에게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거나 걷는 것도 싫어하는데 등산을 가자고 해버린다면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같은 감성을 가지게 된다면 감성이 합쳐져 낭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할 때 말 그대로 낭만적인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에 관해 고민을 하다가 살아오면서 내가 생각한 내용을 sns에 남겨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었다. 


<최고의 매력은 '진심' 오래가는 매력은 '성장 가능성'>


진짜 매력은 첫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때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 최고의 매력은 진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아가 오래가는 매력을 성장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사랑하겠다면 첫눈에 그것이 전부인 가짜 매력부터 보이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서로가 다가갈 때

마주한 그 환경에서부터 마음을 다해 느리더라도

천천히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해라.


내가 도망가고 싶은 곳이 상대가 되고

상대가 도망 오고 싶은 곳이 내가 되는 것

서로 우위에 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많은 것을 알아감에 따라 약점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을 채워주는 것

다툼이 생겨나도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라는 것을 아는 것

언제 이별해도 여한 없도록

매일 온갖 노력을 하는 것

모든 인간은 가까이에 있어도 변하기에

놓치지 말고 관심으로 같이 변해가는 것

남들의 세상이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오직 서로의 세상에서 몸과 마음을 함께하는 것처럼

매력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이 글귀가 아직 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전부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은 찾아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언젠가 택시 기사님의 말씀처럼 내 짝이 짠하고 나타난다면 그때는 외로움과 싸워 이겨버릴 것이 아니라 패하고 싶다. 촌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뒤로하고 내가 좋아하던 남방이나 셔츠를 입고 그렇게 즐겨 바르던 포마드 왁스도 바르면서 단순히 서로의 사랑을 일깨워 보고 싶다. 내 부족한 모습을 숨길 게 아니라 보여줘도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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