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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May 14. 2024

스승의 날

주절주절 #10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다. 아니, 정확히는 스승의 날 전날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부처님이 스승의 날을 점찍어 오시는 바람에 스승의 날이 휴일이 된 것이다. 당일에 얼굴을 마주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므로, 전날인 오늘이 왠지 스승의 날인 듯한 분위기를 띄게 되었다.


8시 30분. 아이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반이 점차 웅성거릴 무렵, 두 남학생들이 쭈뼛쭈뼛 교탁으로 다가오더니 정성스레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그간 군대로 인해 제대로 스승의 날을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저, 스승의 날이라 저희가 직접 준비했어요..”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니, 한때 유행이었던 픽셀 모양의 선글라스와 짱구 테이프(짱구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 말하고 다녔나 보다), 하트 풍선 등등이 있었다. 학교 주변에 다이소가 있음을 감안하면, 아마도 어제 아이들이 합심하여 다이소에 들려 이것저것 선물과 상자를 구해왔을 것이다. 진열대가 꽤 높은 편인 다이소 내부를 열심히 탐색하고 다녔을 아이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왠지 시큰해졌다. 주변으로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한 후,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일단, 너무 고마워.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선생님은 받을 수 없어.”


일순간, 아이들의 표정에 서운함이 어렸다. 하긴, 그럴 만도. 애써 준비한 선물은 상대의 소유가 됨으로써 완성된다. 결말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이벤트는 어쩔 수 없는 찝찝함을 남긴다. 아이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아이들이 최대한 납득하면서도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받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나의 역할로 넘어왔다.


“우선, 너희 마음이 너무 고마워. 덕분에 선생님도 힘이 나네! 비록, 선생님이 이걸 받을 수는 없지만, 이 선물은 선생님 카메라로 담을게. 그러면, 너희는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이랑 선물도 함께 준 거야! 대신, 이 선물들은 너희가 선생님 몫까지 재미있게 사용해 줘!”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후, 왜 선물을 받으면 안 되냐는 주변 아이들의 질문에 답했다.


“선생님은, 너희한테 주는 사람이지 받는 사람이 아니야. 너희는 가끔 감사하며 받기만 하면 돼.”


1교시 유도 수업에 아이들을 보낸 후,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놓인 선물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스승.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쏟아지던 선물은 어느 순간부터 발의자의 이름을 딴 청탁금지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철저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음식물 기준 3만 원이라는 액수로 물품을 제한했지만, 사실상 법의 제정 후 사소한 사탕 하나 받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혹자는 말한다. 아니, 알사탕 하나 받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 서로 간의 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물론, 그 말의 의미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가 뚜렷해지는 사회에서 정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심심찮게 대두되는 요즘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칼로 무 베듯 그렇게 철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알사탕 하나조차 넘지 못하는 사제관계가 정상적인 것인지에 대한 비판은, 그렇기에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교사는 약 20명의 아이들을 통솔하는 위치다. 체계의 높은 곳에서 교육을 전달하고 임무를 부여하는 교사는, 그렇기에 철저한 중립이 요구된다. 사소한 사탕 하나를 건네는 아이의 손에, 그 한 명을 제외한 19명의 눈길이 맺힌다. 그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아, 나도 무엇인가를 건네야 하는 건가. 통솔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다. 그 욕망의 발현 수단이 선물이라는 가시적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은 선물조차 때로는 균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알사탕은, 그저 알사탕 하나가 아닌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5년 전, 당시에 청탁금지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현금과 현물 등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게 성의이고 마음이자 감사함의 표시였다. 나의 담임선생님들 또한 부모님께 일정 금액의 상품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건, 내가 성인이 된 이후였다. 당시에 교육대학교를 다니며 교사를 준비하던 나는 깊은 분노를 느꼈다. ‘돈이나 받아 처먹는 주제에, 꼴에 교사라고 지금껏 나를 가르쳤던 건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교직에 들어선 스물일곱의 봄. 나는 묘한 감정이 든다. 내가 그때에 교사를 했다면, 내가 교직에 있을 때 그런 법 같은 게 없었다면 과연 나는 이 선물을 받지 않았을 것인가. 집단과 사회 속 개인은 한없이 나약하다. 소신을 가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니, 그 소신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은 말해서 무엇하랴. ‘저 사람은 혼자만 잘났다고 으스대는 거야, 뭐야.’ 이런 소리 듣기 십상인 것이다. 어쩌면, 나의 윤리는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청탁금지법이 있는 세상에서 교사가 되어, 뜻하지 않게 소신을 형성하고 지켜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의 담임이었던 이들을 돌아본다. 과연 그들은 정말 나쁜 인간들이었나. 그들 역시 나처럼 어쩌다 교사가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아니었던가.


선물은 다시 아이들의 손에 돌아갔고, 교내 공사로 인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점심시간을 즐겼다. 식사 후, 급식실 밖을 나서는 나에게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온다. 오전에 선물을 건넸던 아이의 얼굴에는, 상자 안에 예쁘게 담겨 있던 픽셀 모양의 선글라스가 얹혀 있다. 서운함이 진작 휘발된 아이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주변 아이들은 킥킥대며 즐거워한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수업 때는 쓰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아둔 후 잘 놀고 들어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자유롭게 달리며 뛰노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나도 저렇게 뛰어놀 때가 있었지. 하루하루가 그저 즐겁고 신기한 그런 때가. 헤집은 기억 속에 억울함이나 분노는 없는걸 보니, 아마 나의 담임들도 괜찮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다 비슷비슷한 거지. 정은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모습이 조금은 달라졌을 뿐.




#욕설


힘찬 걸음으로 다가오는 아이. 표정에는 다소간의 억울함과, 일말의 기대가 뒤섞여 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 이유를 당차게 외친다.


“선생님! 앞에 얘가 입모양으로 욕했어요!”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대두된 요즘, 사소한 욕설도 다소 예민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욕을 했다는 아이를 불러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했다.


“입모양으로 욕을 했다고 들었는데, 정말 욕을 했니?”


아이는 머뭇거리며 즉각적인 대답을 회피한다. 그렇다. 그렇다면 욕을 한 것이다. 사실은 곧바로 파악했고, 다행인 점은 뻐끔거리기만 하였다는 것과 아이가 거짓을 말하지 않을 만큼은 교사와 래포가 형성되어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한 번 더 추궁을 하자, 곧이어 아이는 사실을 실토했다. 혼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으로 아이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고, 그 속에 맺힌 상에는 내가 있었다. 나는 아이의 눈 속에서, 불현듯 아이와 같은 나이였을 적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때는 2007년 3월. 3학년이 되어 맞이하는 첫날, 담임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한 후, 학급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안내하고 계셨다. 학급 규칙이라는 게, 사실 거기서 거기다. 친구와 싸우지 말자, 친구에게 친절하게 대하자, 인사를 잘 하자 등등. 규칙 소개가 끝난 후, 선생님은 친구들이 싸우는 걸 목격했을 때 해야 할 일을 질문하셨다. 아마도, 말린 후 선생님께 인계하라는 답변을 기대했으리라. 질문을 곱씹던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입술을 움직이며 대답을 툭 던졌다.


“둘 다 죽여요.”


예상과 다른 반응에 당황하신 선생님은 헛웃음을 지으셨다. 곧이어 좌중은 폭소했고, 선생님은 범인을 색출하고자 주변을 둘러봤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 놀란 나는, 다가올 책임이 두려워 불안한 눈을 먼 산에 두며 필사적으로 모른 체를 했다. 안타깝게도, 대중은 당시 내 단짝이었던 친구를 범인으로 몰았다.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가리키던 내 친구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적당히 성실하고 얼굴이 하얀 게 욕이라고는 입에 담아본 적 없는 아이라 여겼나 보다. 그렇게 나의 완전범죄가 성공했고, 그럼에도 공격적인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의 충격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게 되었다. 거의 흐릿한 기억 속 명징하게 남아있는 그 사건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격성을 처음 마주한 날이었다.


그 후, 무난한 학교생활과 더불어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적당히 인정받으며 살아갔던 나는, 그러나 나의 내면에 자리한 악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의 안에 있는 이 공격성은 무엇인가. 나는 어쩌면 괴물이 아닐까. 그러한 의문은, 시간이 흘러 책을 탐독하고 영화를 접하며 서서히 해결되었다. <악마를 보았다>, <친절한 금자씨>, <마더> 등을 보며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발견했고, <죄와 벌>,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을 통해 악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작품 속 인물들의 파멸은 내면의 악마 자체에 있지 않았다. 그들의 파괴는 악마를 외부로 발현했을 때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니었다. 욕망과 본능이 어떻게 외부로 표상되는가였다.


예전에 근무지에 같이 일했던 동료가 있었다. 그는 직장 내 젊은 여자들에게 추근대고 사적 연락을 남발하기 일쑤였다. 속이 보이는 그런 행위에 적개심을 드러내던 나는, 주변으로부터 그를 두둔하는 말들을 듣곤 했다.


“그래도, 그 사람 능력 있고 정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원래 남자들이 그런 거지, 뭐.”


20대의 혈기 어린 나는 그 말에 더 크게 분노했다. ‘원래 그렇다.’는 인간 내면의 본원적 성질은 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추잡한 노욕적 변태 행위의 본질은 욕망 자체가 아닌, 그러한 욕망을 외부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피해를 끼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다 그래.’ 그렇다. 모두 그런 마음을 지녔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 그렇게 행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내면의 악마를 긍정하는 이유는, 그 악마가 튀어나와 자신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게끔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를 끝까지 증오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 악마를 바라봤다. 악마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를 조금 더 깊이 가두었다.


다시 현실로. 내 앞의 아이는 3학년 때의 나보다 훨씬 절제력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아이는, 입 밖으로 소리 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가 욕을 아는 건 잘못이 아니야. 유튜브, 카톡, 게임.. 온 세상이 욕 천지잖아.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너가 욕을 아는 것과 하는 건 천지 차이야. 욕을 입 밖에 뱉는 순간, 그 모든 건 네 잘못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욕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려고 노력해 봐. 지금부터 노력해야 그렇게 할 수 있어.”


잔뜩 혼이 날 줄 알았던 아이는, 예상과 다른 반응에 조금 놀라더니 이윽고 친구에게 다가가 사과를 건넸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다투는 친구들을 죽여버리자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왜 그 말을 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악마가 가끔씩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때면, 나는 자연스레 그 사건을 떠올린다. 당황한 선생님과 웃는 아이들, 그리고 그 속에서 역시 당황한 채 불안에 떨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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