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같은 아시아, 그러나 다른 오후 4시의 풍경

한국 도시와 베트남 도시 청소년의 삶을 비교하다

by 한정호

방과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걸 드러낸다. 하루의 이완이 시작되는 시각, 한국 도시는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학생들로 인도가 가득 차고, 베트남 도시는 퇴근길처럼 복잡한 오토바이 행렬 속으로 아이들이 스며든다. 겉모습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교복, 친구들, 스마트폰, 학교 가방.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와 그 시간의 무게는 두 나라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다르다.


'청소년의 하루는 그 나라의 교육문화, 가족관, 경제 수준, 도시 환경까지 드러낸다.


나는 한국에서 자랐고, 지금은 베트남 남부의 푸미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두 나라의 방과후를 나란히 바라보면 같은 아시아라도 ‘오후 4시’가 얼마나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1. 귀가 방식과 이동의 자유

한국 청소년들은 방과후가 되면 스스로 움직인다. 지하철과 버스를 능숙하게 이용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학원을 가고, 이동 반경도 넓다. 도시가 아이들의 자율성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부모 픽업이 일상이다. 오토바이에 올라 둘러앉은 가족 틈에서 학생들이 집으로 향한다. 이동 반경은 동네 중심이고, 교통혼잡과 안전문제 때문에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이 차이는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청소년을 얼마나 ‘보호’하는지, 혹은 ‘독립을 허용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신호'다.


2. 학원과 사교육의 강도

한국의 방과후는 대부분 학원으로 이어진다. 수학, 영어, 논술, 코딩…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풍경도 흔하다. 경쟁 기반의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의 일상을 강하게 지배한다.

베트남에도 사교육이 있지만, 한국처럼 강하지 않다. 영어, 수학, 컴퓨터 학원 정도가 흔한 편이고

수업 시간도 1~2시간이면 끝난다. 그 이후의 시간은 가족 중심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국은 사교육이 시간을 지배하고, 베트남은 가족이 시간을 이끌어가는 느낌이다.


3. 친구 관계와 여가 문화

한국 청소년들의 여가는 대체로 상업시설 중심이다. PC방, 카페, 편의점, 코인노래방… SNS와 게임, 틱톡이 그 시간을 둘러싸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베트남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길거리 간식, 공원, 동네 커피숍, 야시장… 친구들과 군집으로 다니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시간이 비어 있어도 덜 외로워 보이는 이유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바쁜데도 외롭고, 베트남의 청소년들은 단순해 보이는데 관계가 더 촘촘하다.


4. 가족과의 저녁

한국에서는 저녁시간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다. 학원, 과외, 스터디로 일정이 파편화되어 있고 부모 역시 바쁘다. 가족 식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이면 다행이라는 집도 많다.

베트남은 다르다. 저녁식사는 하루의 중심이자, 가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방과후 4~5시간의 리듬이 가족 쪽으로 기울어 있고 부모의 개입과 보살핌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한국은 개인의 시간표, 베트남은 가족의 시간표가 우선한다.


5. 아르바이트와 용돈 구조

한국에서는 고2~고3쯤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편의점, 카페, 서빙… 경제적 독립의 훈련이 비교적 이른 편이지만 대부분의 용돈 구조는 부모에게 의존한다.

베트남은 크게 두 갈래다. 호치민·하노이 중심부의 중산층은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거의 하지 않고 용돈도 부모가 관리한다. 하지만 푸미, 빈증, 동나이 같은 공단 지역은 전혀 다르다. 고등학생 아르바이트가 매우 흔하고 노상 카페, 식당, 편의점 등에서 스스로 돈을 번다. 한국보다 훨씬 빠르게 사회와 연결되고 경제적 자립도 훨씬 빠르다.

따라서 일반화할 수 없다. '베트남 청소년 = 경제적 독립이 늦다'는 말은 대도시 중산층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6.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

한국의 청소년들은 고등학생이 되는 순간, 강한 입시 압박과 자기 경쟁의 세계에 내던져진다. SNS 비교 문화가 심하고, 학업 성취가 자기 가치의 잣대가 되기 쉽다.

베트남 청소년들도 입시 부담이 있지만 한국 수준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의 정서적 지지 덕분에 심리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탄탄하게 유지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은 ‘나 vs 나’의 세계이고, 베트남은 ‘우리 vs 세상’에 더 가깝다.


어느 쪽이 더 좋을까?

청소년의 하루는 그 나라가 만든 구조의 결과다. 한국은 속도와 경쟁에 익숙하고, 베트남은 공동체성과 느슨함이 남아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라고, 각자의 이유로 힘들고, 각자의 환경에서 성장한다.


두 나라를 모두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시선도 있다. 한쪽에서는 배움을 얻고, 다른 한쪽에서는 위로를 얻는다.

나는 이 두 도시의 오후 4시를 보며 종종 생각한다.

'아이들이 진짜 배워야 하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명함 앞.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출은 숫자가 아닌 감정의 흐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