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듯 지금, 이렇게!

6탄. 나는 어떻게 걸어왔는가?

by 강현주



tempImageagozK5.heic


*취하다; 어떤 기운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다.


‘취하다*’ 뜻에는 ‘술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하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확인하여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보이게 된다’라는 의미가 있다.



술기운에 취해서 흐리멍덩해지는 상태도 나쁘진 않다. 신경 쓰고 있던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고 싶거나 가지고 있기보단 훌훌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하므로.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나니 힘이 빠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에 눈물이 고일지도 모른다. 작게만 느껴지는 나에게서 불타오르던 그 정열의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은 아닌지 노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지나고 나면 작은 추억이 남겨진 나의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상황을 지나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싶은 순간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나에겐 그 3일의 나날들을 너무 자주 만났던 터라 이젠 그 3일이 지난 뒤에도, 다시 새로운 3일을 만나기 위해 일어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책을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작심삼일’이란 것조차 살피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면, 지금의 이 책은 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듯하다.

그 술기운에 취한 듯한 분위기를 지나고 다시 정신을 차린 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인가 대비가 필요했는지 안전장치나 준비할 태세를 갖추려 애쓰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고비나 성공을 그냥 지나치기보단, 한 번 더 돌아보면서 어떠한 부분 때문에 실패로 이끌었고 무엇이 성공으로 이어졌는지 구별해 보는 것이다.


tempImageaqv4t2.heic


우리의 성격이나 행동에도 장단점이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인생에도 좋은 순간과 안 좋은 순간이 동반한다. 동전을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양면이 같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공간이 바로 여기, ‘지금’이다.



아무리 자주 좌절하고 실패한다고 하여도 다시 일어설 줄만 안다면, 지나간 것들은 경험이 되고 나의 자산이 된다. 그러나 많은 성공을 하였더라도 마지막에 실패한 것에 대한 미련이나 한탄하면서 그 분노를 일찍이 잘라내지 못한다면 지나간 성공의 밝기는 아마도 다시 어두워질 뿐이다.



그래서 왜 가끔은 취한 듯이 그렇게 자유로움을 원하고 찾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을 같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고, 긍정적인 기운에 빠져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으며, 부정적인 기분을 만나면 다시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부정적인 기운이 내 주위를 맴돈다고 하여도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도 나요, 나를 잘 알기에 그 분위기에 어떻게 맞대응할 것인지 알고 있는 이도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힘든 상황에 부딪혀 넘어진다고 하여도 다시 일어서서 또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고, 더 괴로운 분위기가 위협하여 도저히 못 가겠다 싶어도 한 번 가봤던 길이기에 다시 가보는 거다. 그리고 나면 뭔지 모를 희열과 환희에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뒤, 기분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고 하여도 또 언제 힘겨운 일들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러나 그 고난을 잘 받아칠 준비를 미리 하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난다고 하여도 두려움이나 근심도 많이 사라졌을 터. 나에 대한 믿음도 커지고 신뢰할 수 있는 꽃처럼 아름다운 여유로움마저 피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면 그때의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AI나 로봇이 아닌 이상 그 많은 순간을 모두 기억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린 나이나 젊을 때는 모든 경험과 추억들이 나의 머릿속에 담기는 줄 알고 있었고, 아마 그렇게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되돌아보고 다시 끄집어 내려해도 겪었던 수많은 고생이 모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인 걸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눈물이 맺히던 상황을 다시 되돌린 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면, 아마 병원에서 나오지를 못했을 것 같다.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큰 사건을 제외하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자신이 간직하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tempImage6Opc6Z.heic


6탄. 나는 어떻게 걸어왔는가?



다시 되뇌어 보면서 술에 취한 듯 미소를 짓게 되듯이 그대가 걸어왔던 그 길은 너무도 소중하다는 의미이다. 드문드문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실 때면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은가?’라는 주제이다.



당신이라면 언제로 다시 되돌아가보고 싶은가? 어릴 적? 고등학교 때? 20대 때? 그 순간이 떠올랐다면 아마 그대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습관적으로 자신이 하던 일이나 행동에도 패턴이 있듯이 좋았던 추억이나 체험을 담고 있는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이제 조금 이 세상과 친해진 것 같고 나에 대해서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무엇인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에 부풀었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천방지축에다가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뛰어다니던 시절이어서 종종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이렇게 잔잔히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내가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경험이자 소중한 내 인생이다. 그 길을 무시한 채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쳐 왔다면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았을 듯싶다. 돈이나 보석처럼 가치가 있는 것은 소중히 다루듯이, 우리의 인생 또한 평생 한 번 간직할 수 있는 귀중한 재물이다. 아마도 금은보화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간직하고 있기에 누군가에게 그대로 보여주거나 대리로 맡길 수도 없는 것. 스스로 선택의 길목 속에서 만들어진 나의 유일한 인생길 같기도 하다.



물보라가 내리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웅장한 나무가 있고 작은 시냇물이 흐르던 길목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물길이 열릴 듯이, 그렇게 자신의 신념 하나로 꿋꿋이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인생길을 만나고 직접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의 고비들을 잘 이겨내는 것이 우선인 듯싶다.



구부정한 길도 술에 취하면 그냥 평탄해 보이듯이 잠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여력을 키워보자. 그리고는 유연하면서도 슬기롭게 매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치지 않는 마음의 힘과 체력을 같이 길러보는 것이다.


tempImage7hw9ur.heic


이런 일도 있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많거나 이뤄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한들, 몸이 마음처럼 따라오지 못할 때도 있다. 아마도 29살 때였을 것이다. 30살이 되기 전에 20대의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는지 한 번씩 빈혈이 심해지면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랑 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도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건강에 관한 관심이 없었는지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사명감에 빠져 힘들어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리곤 도저히 방전된 체력을 가누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일이든 공부든 하고 있던 모든 것을 멈추었다. 경험이나 돈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했던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렇게 힘들고 지쳐있었는데도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뒤숭숭한 마무리를 짓거나, 몸과 마음이 함께 가야 함을 모르고 있었기에 그렇게 몸을 혹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주 미세한 변화나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가늠할 수 없었고, 그 누적되고 있던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내적인 병이 돋아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이나 잠에 빠져서 운동은 뒷전으로 미뤄두던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더 큰 위력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에 따른 뒷감당은 그때 비로소 나의 몫이 되었고, 다시 체력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8시에 20분 동안 산책하러 다녀오는 것이었다. 걷는 것조차 버거웠던 내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제대로 시작해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몇 달간 꾸준히 이 패턴을 유지하면서 이어가다 보니 점점 습관처럼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3개월 정도 지나면서 체력은 다시 원래의 행방을 되찾기 시작했고, 아침잠이 많아서 매일 늦게 일어났다가 늦게 자는 야행성 체력이 아침에 일어나도 별로 불편함 없이 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잠시 멈추어 설 수 있었다는 것조차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더 악화하지 않은 체력적 한계가 사라지고 다시 꾸준히 걸으려고 노력하는 습관의 힘을 다시 한번 더 깨달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힘든 시간 속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이다. 일기장 속에 빼곡히 적어나가며 만들어진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일상 말이다.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잠시 그 추억 속으로 빠져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지 모르는 지금의 나에게 차분히 손 한 번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keyword
이전 15화작은 표현에도 다양한 의미가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