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였나요? 지금은 어떤가요?
부끄러움이 많았고, 엄마 뒤에 꼭 붙어 다녔다.
나는 주목받기보다 조용히 있는 게 더 편했다.
나서는 것보다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뭔가 특별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눈에 띄지 않게, 문제없이 지내고 싶은 아이였다.
나는 4남매 중 둘째 딸이었다.
말괄량이 큰언니,
어딜 가든 귀엽다는 말을 듣던 셋째 여동생,
그리고 집안의 보물이었던 외동아들 막내동생.
그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다.
별다른 개성 없이,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는 인식을 받으며 자랐다.
어쩌면 그렇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네 살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어가 더 익숙했던 나는,
여덟 살에 한국으로 돌아와
한글도 모른 채 국민학교 2학년에 들어갔다.
또래 친구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내 말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을까?’,
‘이해받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언어는
나에게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도구가 되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자연스럽게 두려움이 되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아이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
교실 한복판에서 이야기하고, 웃고, 소통한다.
까불거리는 학생들의 장난도 여유 있게 받아친다.
수업 전에는 늘
‘어떻게 전달하면 더 잘 이해할까’를 고민하며 준비한다.
아이들과의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어릴 적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모습이다.
어렸을 적 나는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자신감이 없었고, 늘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어떻게든 잘하려고 애썼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늘 불안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되는 건,
그 시절의 내가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혼자서 애썼던 그 아이를,
이제는 내가 알아봐주고 있다.
이제 나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로 가득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과거의 나를 다정하게 끌어안을 때,
현재의 나도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오늘 나누고 싶은 질문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였나요?
지금의 나는 어떤가요?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