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오고 시내 구경을 처음 했다. 카니발이 가까운 어느 2월, 화려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길 모퉁이에 버려져 있다. 어떤 집 베란다에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장식이 처연하게 흔들렸다. 광란의 카니발 전 시간의 공백이 회색하늘을 꽉 메웠다. 사람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뒷골목(hinteregasse)으로 간 걸까. 쥐 죽은 듯 잔잔했다.
하웁 스트라세 통신 가게 앞에 잠시 섰다. 오른쪽으로 옛 시청이 있었고 왼쪽 골목으로 보면 2층 시멘트 외벽에 피어싱 같은 링이 달린 새 시청이 보였다. 골목 끝에는 베이커리 하나와 카페가 마주 본다. 카페의 전등불, 하나가 켜진 것 같았다. 멀리 교회 타종 소리가 들렸다. 도시는 잠잠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적은 거야?” “독일에는 일요일에 상점을 열지 않아.”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도 자기도 똑같이 의문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에게도 독일에는 직업 인턴십으로 6개월 살았던 경험이 전부. 상하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몇 년 만에 독일로 전직한 그도 독일 생활이 생소한 아내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두 달 된 아기는 흔들리는 유모차에서 기분 좋게 잤다. 아기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양말이 벗겨졌다. 하얗고 뽀얗고 부드러운 살이 찬바람에 노출되었다. 담요가 유모차 아래로 미끄러졌다. 허리를 굽혔을 때, 내 굽이 낮은 플랫 슈즈, 레깅스와 발목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발이 시리다. 발목을 잽싸게 감싸는 추위는 출산 후 계속 저린 엉치뼈까지 닿았다. 한기 때문에 전율했다. 100 미터를 걷고 이내 나른했다.
나와 남편은 중국에서 몇 해 살았다. 상하이는 활기찼다. 주말이면 노동에서 해방된 인민들은 먹고 마시고 놀기에 열중했다. 소풍을 나가고 외식을 하고, 쇼핑센터와 시내는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사람이 만들어낸 훈훈한 공기와 경쾌한 소음이 생기가 되어 돌았다. 그곳에 비하면 생전 처음 맞이한 독일 시골 도시는 조용했다. 일요일 아침 고요한 유럽 성당에 들어선 것처럼 높은 고딕 지붕까지 외마디가 울리고 텅 빈 터에는 새들이 날아오른다. 어쩌다가 그걸 들은 사람들은 총성을 들은 것 마냥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는데 그곳에 내가 서 있다. 보석 가게, 카페 그리고 또 닫힌 옷 가게 어디에도 발자취가 없다. 인간들의 땀내와 움직임만으로도 힘 넘치던 상하이를 떠올리자 서글퍼졌다.
덜컹덜컹, 유모차 바퀴 소리가 텅 빈 도시를 곧장 가로질러 외벽을 치고 울렸다. 상아색 구 시청 벽에 금색 시계 눈금과 시침이 사그라지지 않은 겨울 안개를 뚫고 비쳤다. 시간은 또각또각 흐르고 보행자 거리 위로 헬렌스타인 원통 성벽과 붉은 지붕이 도시를 건조하게 굽어보았다. “우리 그냥 집에 가자. 볼 것도 없는 걸.” 골수에 스며드는 추위와 쓸쓸함을 남편도 느꼈을까, 우리 둘은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원히 데워지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에 들어섰다. 폭신한 보름달 빵 같이 울룩불룩한 소파와 흰 벽을 가득 채운 연 갈색 티브이 벽장, 그리고 헤링본 바닥은 주인의 손때가 묻는 집이라 아늑하기보다 잠시 머무는 곳의 어색함과 서글픔을 던졌다. 이곳에는 모유가 적다고 하는 염려하고 분유를 몰래 타서 아기에게 먹이는 가족이 없었고 신선한 샐러드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주는 가족이 없다. 아기는 자주 울었고 자주 깼다. 젖이 모자라는 것도 모르는 나는 그런 아이를 재우기 위해 거실 앞 정원에 닿은 베란다에서 유모차를 앞뒤로 밀었다. 밤이면 아이를 재우고, 아이가 울면 누워서 젖을 먹이고 다시 깨면 출산 후 아픈 허리를 곧추세우며 젖을 먹였다. 수면 보충을 위해 아기를 대신 봐주는 가족은 멀리 고국에 있었다.
가벨스 스트라세는 두 번째 세를 얻은 집이다. 남편의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웃집 정원도 훑어보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동료들에게 맛있게 드세요(Mal Zeit!)라고 인사하며 집에 왔다. 집 앞 도로 양쪽으로 지역 대표 회사가 넓게 들어섰고 산기슭으로 올라가기 전으로 꺾어 들어오는 이 골목길은 완만하고 한적했다. 골목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3층 신식 아파트가 있었고, 누가 사는지 모른다. 1층 베란다 앞을 지나가면 슬쩍이라도 그들의 아파트를 들여다보는 게 큰 실례라도 되듯이 나는 눈을 내리 깔았다. 오른쪽으로 한번 더 꺾으면 왼쪽 길모퉁이에 초록색 지붕이 나타난다. 오른쪽도 직진도 막다른 골목이서 이곳 주민만 이 골목길에 들어왔다. 사방이 막혔다
남편은 2층에는 임시 거주하는 브라질 사람들과 이미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3층에 사는 독일 남자와는 주말 아침 건물 앞마당을 번갈아 청소하면서 앞면을 텄다. 나는 독일남자와 짧게 눈인사만 했다. 친해질 수 있는 3층 브라질 여자에게 수줍게 인사하고 곧장 내 길을 갔다. 인사를 하고 다른 대화를 했어야 했나?라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소리에 집중했다. 가령, 같은 방향으로 가는지 다시 집에 들어가는지 발소리로 민감하게 캐치했다. 발자취가 줄어들고서야 비로소 나는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