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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Nov 16. 2019

나의 못마땅한 상

                                                                                                                                                                                                                                                                                                                                                                                                                                                                                                                                                                                                                        

“나의 못마땅한 상”
     
1991년 11월 25일 월요일 00학교 4학년 4반 
제목: 나의 못마땅한 상
     
나는 어제 일요일 오후 1시 30분에 우리 만리 학원에서 미술 대회에 상 타는 사람과 함께 시상식에 갔다. 정기는 동상이고 경옥이도 동상이다. 나는 금상이다. 사실 나는 상을 탈 사람이 못된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거의 다 도와줬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밖에 손을 대지 않았다. 
상을 타는 건 기쁘지만 나의 노력으로 하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받아선지 상을 탈 때도 마음이 울적했다. 상패와 트로피를 받았지만 내가 자랑스럽지가 않다. 내년엔 꼭 나의 힘으로 손재주를 펼치고 싶다.
     
     
금상을 받은 그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무들이 쭉 늘어선 오솔길을 그린 풍경화였다. 나뭇잎을 표현했던 수채화 기법도 기억한다. 어릴 적 꿈 중에 하나였던 화가. 미술을 정말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고등학교 땐 화가에 관한 책이나 작품집을 자주 봤다. 결혼하기 전 남편이 홍대에서 내게 이젤을 사주었다. 가끔 꽃그림을 그리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시회를 보러 가기를 좋아하고, 돈을 주고 작품을 산적도 있다. 

     
이 일기를 보고 사실 놀랬다. 내 기억 속에 이런 진실은 없었다. 그저 큰 상을 타고 그 사실이 알려져 반 대표로 그림 그리기 대회에 출전할 기회까지 얻었기에, 기억 속 나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렸던 아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 나의 재능을 몰라보고 미술 쪽으로 밀어주지 않았던 엄마를 원망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담임선생님께 검사받는 일기장에 어떻게 서슴없이 폭로성 글을 썼을까? 지금은 일어나서도 안될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간과되었던 시대의 보편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도와주려는 미술학원 선생님의 손길을 거부했을까? 선생님의 도움은 사실 출품 마감 임박에 한 학생이라도 상 받게 하려 애쓴 것일 텐데, 어린 나는 스스로 못 마땅한 상이라며 울적해한다. 지금의 나는 도와주는 손길에 거부는커녕, 감격해하며 늘 목말라하는 중인데 어린 나는 그런 것들이 자랑스럽지 않다 한다. 자립심과 자존감이 높았던 어린 나를 보니 잃었던 것들을 되찾고 싶어 졌다. 조금 더 진실하고 순수한 나를 지켜내고 싶어 졌다. 요즘 쓰는 내 글들이 꼴 보기 싫은 이유는 한없이 비겁해지고 눈치 보다 '내 진심'은 가리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금상' 수상 취소되어도 상관없던 어린 내가 부럽다. 그때 수상자들과 찍은 사진 속 나는 웃지 않고 있었던 것이 방금 생각났다.                                                   




*일기장 속 오타들은 대충 수정해서 적었어요. 4학년인데도 이렇게 맞춤법이 엉망이네요.

더 놀라운 것은 여전히 맞춤법 검사 없으면 오타와 맞춤법 오류 투성인 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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