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절망: 이것은 일이 아닌가
나는 지금 이런 노골적인 표현 말고는 다른 수가 없는 상태에 있다.
오늘, 시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다. 로봇드림을 플레이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영화상영이 가능한데 개봉한 지 6개월이 지난 작품으로 제한되어 있다. 저작권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가 ‘그래도 돼요?’라고 물어볼까 봐 찾아두고 영화상영하겠다는 문서 작성할 때마다 덧붙이고 있다.) 지난달에 <패스트 라이브즈>를 볼 때는 신청자를 따로 모집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관심 있고, 어느 정도 신청하는지 보는 게 안전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번 달은 홈페이지에서 신청자를 받았는데 한 명이었다. 중간에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 그분이 아니었어도 틀어놨을 거다. 신청자가 혼자인 게 마음이 쓰이셨는지, 취소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나 보다. 취소하지 못하고 급히 친구를 불러내어 오셨다고 했다. 우리 셋이 봤다.
<로봇드림>을 작년엔가 전자책으로 휙휙 넘기며 봤다. 그야말로 휙휙 넘기며 본 장면들은 거의 다 로봇의 상상 장면이었던 것으로 오늘 확인할 수 있었다. 로봇이 그러는 동안에 강아지는 마치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해수욕장 개장일을 기다리며. 어떨 때는 아, 기다리는 게 아니었나 보네 싶기도 했다. 로봇이 새로운 반려자와 지내게 됐을 때는 로봇 역시 강아지를 찾을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했다. 서로에게 유일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리워했으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희미해지기도 할 수 있겠지. 그 둘의 배경음악이었던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발견했지만 다시 시작된 각자의 삶을 응원해 주며 영화가 끝났다.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보게 됐다며, 우리 셋 각자 마음에 들어 하며 인사를 나눴다. 다음 달에도 뭔가를 상영할 테니 계속 관심 가져달라고 했고, 조용히 봐서 오히려 좋았을까 싶어서 담달에는 홍보하지 말아 볼까요? 농담도 했다. 한 사람을 위해서도 나는 한다. 화폐비용이 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리 없이 한다. 예산이 사용된다면 취소해야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쁨’이다. 다음은 ‘절망’이다.
어제 나를 화나게 했던 주간업무계획이 결재되었길래 봤다. 담당자는 도대체 어떻게 작성하길래 우리 도서관 서무가 그 직원 스타일에 맞춰 고쳐도 되냐고 물었는지 궁금해서, 여태 신경쓰지 않았던 걸 굳이 열어봤다. 그런데 우리 도서관 주간업무가 없다. 어린이자료실 재정비계획과 프로그램 수요 조사 계획을 올렸는데 그게 없다. 북큐레이션과 각 도서관 프로그램, 전시계획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일이 아닌가?
일을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일을 좋아한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고치면서 일한다. 설명불가한 일은 하지 않는다. 내가 만드는 일,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곳이 매번 나를 이렇게 절망스럽게 만든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것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내가 인정받고 싶은 대상은 사람들이라서, 절망했지만 이렇게 쏟아내고 나는 그냥 일 안 하는 직원 1로 사는 게 나를 지키는 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