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없이는 못살아_윤종신
세상이 버거워서 나 힘없이 걷는 밤 저 멀리 한사람 날 기다리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도 나를 믿지 않아도 이 사람은 내가 좋대
늘어진 내 어깨가 뭐가 그리 편한지 기대어 자기 하루 일 얘기하네
꼭 내가 들어야 하는 얘기 적어도 이 사람에게 만큼은 난 중요한 사람
나 깨달아요 그대 없이 못살아 멀리서 내 지친 발걸음을 보아도
모른척 수다로 가려주는 그대란 사람이 내게 없다면 이미 모두 다 포기했겠지
나 고마워요 그대 밖에 없잖아 나도 싫어하는 날 사랑해줘서.
[그대 없이는 못살아_윤종신]
실은 한 남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미 나의 양옆위로 펼쳐져 상영 종료된 상태이지만, 여운의 농도가 짙고 질기다.
곡을 들으며 내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남녀 캐릭터는 이러하니, 여인은 정강이 길이의 롱 스커트와 베이지 톤 가디건을 걸쳤고, 귀 밑까지 넘어가는 앞머리에 살짝 여리한 모습이며, 남자는 어깨 선이 제 몸보다 어벙하게 큰 검은 양복에 흐트러진 넥타이 차림이다. 배경은 모서리 끝이 닳아진 서류가방을 한 손에 축 늘어트린 남자가 땅이 꺼질듯한 한숨과 터벅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오는 밤길.
여인은 가로등 밑 골목길에서 남자를 기다리고, 반갑게 만난 둘은 가볍게 포옹 후 집으로 들어간다. 철 대문 턱을 넘어 들어가면서부터 하루 일들을 조잘대는 그녀는 남자의 처진 어깨를 수다로 살며시 덮어준다. 버거운 현실 속, 작아짐의 연속인 남자의 삶이지만, 여자 앞에선 더없이 중요한 존재이니 여자를 기어코 행복하게 해주리라 다짐한다.
부부의 존재, 서로에 대한 정체성이란 이렇게나 아름답다. 결혼 예찬론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예찬 지점과 결을 같이하는 문장들.
적어도 이 사람에게만큼은 난 중요한 사람
아무도 날 찾지 않아도 이 사람은 내가 좋대.
고마워요 나도 싫어하는 날 사랑해줘서.
집 밖에서는 나도 너도 남도 넘도 각자의 페르조나를 쓰고 살아가는 법이라, 우리에겐 하루 종일 써왔던 가면을 집어 던져버릴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 민 낯의 내가 말갛게 드러나도 괜찮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정한 곳. 그 장소가 아내이며 남편일 때 우리는 살아갈 힘,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가면을 다시 착용할 힘을 얻는다.
재미있게도 난, 대단히 엄격하고 딱딱하거나 혹은 넘치게 친절하고 온순한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의 결혼 유무를 미루어보고 나 홀로 안심할 때가 있다. 집에서 매일 복닥하며 마음껏 드러낼 사람이 있어 다행이거니 생각하면서. 물론 남편 대 아내의 관계가 험악할 수도 있으니 때는 나만의 착각 혹은 바램 정도로 열린 결말을 두지만 말이다.
꽤 많은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페르조나를 착용했던 나로서는, 쉴 곳이 필요했고 필요하며 필요할 것일진대, 한 사람과의 변하지 않는 한결 한 관계의 틀이란 것이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되었다. 밖에서의(때론 안에서일 때도) 모든 혈투가 끝난 뒤, 터벅이 돌아온 나만의 안식처에서 실컷 웃고 맘껏 울며 한없이 자유하고 느슨할 수 있는 것은 일상 중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특별히 나는 이 곡에선, 남편 역이 되었다가 아내 역에 머무르기도 하고, 3인칭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각각의 역할들에 위로를 얻는다. 정직한 언어로 남편 역에 머무를 때가 조금 더 잦은 것을 보아 나는 아직 결혼이란 관계 안에서 더욱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게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크게 변하지 않을 한결한 쉴 곳, 나의 넓은 하늘에게 아리도록 고마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