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파멸
학생회장이 된 현구와 부회장 현수, 그리고 유리는 이제 늘 함께 어울리며 자신들이 공약으로 내건 정책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그들의 공약대로, 미자는 학교 도서관에 매월 수십 권의 책을 기부하였다.
학생들은 점점 더 풍부해진 도서관의 자원 속에서 지식을 넓혀갔고, 다양한 복지 정책 덕분에 학교생활이 한층 더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현구, 현수, 유리의 리더십 아래 학교는 활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작은 요구사항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현구에게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유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매일 그녀와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그에게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구는 이상한 촉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리가 자신이 아닌 현수에게 점점 더 빠져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유리가 현수와 함께 있을 때 보여주는 미소와 눈빛, 그리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현구의 마음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그는 자신이 유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현구는 유리와 현수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때부터 현구는 점점 심한 질투와 자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5학년 전체 사생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대회 장소는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절벽을 끼고 있는 공원이었다. 빼곡히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의 구석구석에 학생들은 각자의 터를 잡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현구도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자, 현구는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유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유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려 애썼다.
멀리서 유리의 모습을 발견한 현구는 그녀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유리는 현수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구의 마음은 질투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현구는 다시 그림 앞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의 바람과 파도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현구는 그때부터 모든 시선이 유리에게로만 향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던 중, 유리가 일행과 멀어져 혼자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현구는 그녀가 용변을 보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은밀하게 뒤따라갔다.
숲속의 고요함 속에서 현구의 마음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질투가 그의 이성을 잠식해가며, 그는 점점 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
유리는 절벽 가까이, 나무가 빽빽한 곳에 이르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포시 앉아 용변을 보기 시작했다. 현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적인 충동과 악마적 본능의 만남이었다. 그는 은밀하게 그녀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유리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 놀란 유리가 화들짝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가만있지 않았다. 그녀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현구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현구의 손목을 힘껏 깨물었다. 현구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유리는 현구를 증오에 가득한 표정으로 째려봤다. 그 모습이 묘하게도 미자와 너무 닮아 있었다. 끔찍하게 싫은 내 어머니.
현구는 그녀를 질질 끌고 가 절벽에서 밀쳐 버렸다. 그리고 태연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림을 완성했다. 그는 느꼈다.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이후, 경찰은 유리가 용변을 볼 장소를 찾던 중 발을 헛디뎌 낙상하여 죽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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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구가 고등학생이 된 그해, 미자에게는 여러 가지 기분 나쁜 일이 발생했다.
우선, 일흔 중반의 필섭은 마침내 정계에서 물러나며 그가 쌓아온 제국을 후대에 넘겼다. 건설사와 화장품 회사, 나이트클럽, 카지노, 전국의 토지와 건물 등, 그의 피와 땀으로 일군 사업체들은 모두 본처의 아들들에게 상속되었다. 미자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모든 권한이 본처 소생들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상실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공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잠시나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현구가 당당히 사법고시에 합격할 때까지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현구는 고등학교에서도 여전히 전교 1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은정과 칠규가 마침내 살림을 합쳤다는 소식이었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이미 시장 상인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기에, 모두가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은정의 채소 가게는 나날이 번창하여 옆의 과일 가게까지 인수하였고, 칠규도 오뎅 공장을 인수하면서, 두 사람의 가게와 공장이 합쳐지니 이제 시장에서 미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재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소식은 미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가 오랜 시간 쌓아온 자부심과 지위가 흔들리고 있었다. 은정과 칠규의 성공이 그녀에게는 마치 자신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성취는 그녀의 상실감에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며, 미자는 자신이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더욱이 그즈음 필섭도 미자를 거의 찾지 않는 상태였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와 분노가 얽혀 있었고, 그 감정들은 그녀를 더욱 냉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들을 괴롭히고 싶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월세를 올리는 것. 미자는 단호한 결심으로 하루아침에 공장과 점포의 월세를 두 배로 인상해버렸다. 미자는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고통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녀의 결정은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은정과 칠규의 행복한 나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미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모든 것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필섭의 장남, 조현일이었다.
조현일은 아버지의 사업체 중 가장 덩치가 큰 건설사를 승계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거대한 철근과 콘크리트의 숲을 넘어, 구름을 가르는 항공사 설립을 그는 오랫동안 꿈꿔왔다.
미자가 월세를 두 배로 인상한 그 날, 조현일은 항공사 법인을 설립하고 항공 운송사업 면허를 따냈다. 이제 항공기를 도입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그는 우선 필섭이 전국에 뿌려놓은 엄청난 규모의 토지와 상가, 건물을 헐값으로 팔기 시작했다.
미자가 월세를 또박또박 받아먹고 있는 시장 상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자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상가들은 모두 한꺼번에 매물로 나왔다. 미자는 크게 당황했다. 상가가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가면, 자신의 월세 수익도 사라지는 셈. 이는 그녀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필섭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그는 뒷방 늙은이에 불과했다. 돌아온 답변이라고는 조현일을 적극적으로 도우라는 것과 이다음에 현구가 법조인이 되면 항공사 고문 변호사로 쓰겠다는 다짐뿐이었다.
결국 시장의 모든 상가와 공장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그런데 미자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게 있었으니, 팔린 공장과 상가 일부가 모두 칠규와 은정에게로 넘어 간 거였다. 다시 말해 시장의 큰손이 미자의 동생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미자에게는 이제 자신이 사는 집 하나만 달랑 남게 되었다.
하지만 미자를 정말로 고통스럽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형석이었다. 소식을 완전히 끊고 살던 그가 최근에 다시 나타난 거였다. 형석은 완전히 몰락한 상태로 찾아와, 누더기 같은 옷차림과 초췌한 얼굴로 그녀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미자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내 아들 현구는 잘 지내고 있겠지?"
미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형석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고통을 즐기는 듯했다. 미자는 깊은 고민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형석이 현구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은, 필섭은 물론이고 현구도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형석이 살아 있는 한, 이 비밀을 영원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형석의 협박이 계속되면서, 미자의 마음속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그녀는 이 비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이 욕망은 점차 그녀의 생각을 지배해갔고, 마침내 그녀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아무도 그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는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미자는 차분하게 계획을 세웠다. 형석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마음은 차가운 결의로 가득 찼다. 밤이 되면, 그녀는 홀로 방 안에 앉아 끝없는 어둠 속에서 불안과 싸웠다. 형석의 얼굴과 그의 협박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더욱 강한 결심을 다졌다.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어느 날 밤, 형석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완전히 타락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섰다. 미자는 차분하게 그를 맞이하며,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는 듯이 물었다.
"형석, 제발 그만둬. 이 비밀은 우리 둘만의 것이야."
그러나 형석은 그녀의 간청을 비웃으며 거부했다. 미자의 눈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그녀는 형석에게 차를 대접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결국 형석은 그녀의 환대에 안심하고, 독이 든 차를 마셨다.
형석이 쓰러지자, 미자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몸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밀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그녀는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자는 죽은 형석을 목욕탕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준비해둔 도구 상자와 검은 비닐, 방부제를 가져와 시신 옆에 놓았다. 그녀는 문을 조심스레 걸어 잠갔다.
미자는 옷을 모두 벗고 형석의 옷도 모두 벗겼다. 그리고 도구 상자에서 톱을 꺼냈다. 그리고 서걱서걱 쓸기 시작했다. 피가 그녀의 얼굴과 몸뚱이에 튀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절단 작업을 이어갔다. 적당한 크기로 잘린 살덩어리는 여러 겹의 검은 비닐에 담았다. 그리고 그 위에 방부제를 대량 뿌렸다. 그녀는 이 작업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갔다. 현구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기 전에 모두 끝내고 싶었다.
마침내 형석의 잘린 몸뚱이는 비닐봉지에 모두 나눠 담겼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세제를 목욕탕 곳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세제는 거품을 내며 타일 바닥과 벽을 덮었다.
미자는 구석구석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단호하고 치밀했다. 거품 속에서 형석의 마지막 흔적들을 지워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손끝에 힘을 주어 타일 틈새까지 꼼꼼하게 문질렀다. 마치 과거의 잘못과 죄책감을 씻어내듯이, 그녀의 눈은 결의에 차 있었다.
미자의 손길이 지나가는 곳마다, 거품은 형석의 흔적을 삼키며 사라졌다. 바닥과 벽은 점점 더 깨끗해졌고, 목욕탕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을 닦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아무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거야. 이 비밀은 나와 함께 묻힐 거야."
미자는 자신이 얼마나 지쳤는지 느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청소를 이어갔다. 벽과 바닥을 닦아내면서,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지워지는 듯했다. 세제의 향기가 코끝을 심하게 자극했다.
마침내 모든 청소가 끝났을 때, 미자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끝이 다 닳아 있었고, 손목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미자는 형석의 시신을 담은 비닐봉지를 조심스럽게 대형 캐리어에 담았다. 캐리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캐리어를 들어 올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소리를 죽이며 골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집안에서 창고로 쓰이는 작은 방으로,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공간이었다. 골방의 문을 열자, 한기 어린 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방 안은 어둡고 차가웠으며, 먼지와 함께 오래된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녀는 전등 스위치를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캐리어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캐리어를 구석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녀는, 깊은숨을 내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이 방은 이제 그녀의 비밀을 영원히 감출 장소가 될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캐리어를 확인하며, 모든 것이 안전하게 처리되었는지 살폈다. 미자는 벽에 기댄 채 한동안 골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형석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켰다. 미움과 슬픔, 그리고 안도감이 교차했다.
골방의 문을 닫으며, 그녀는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형석의 흔적도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미자는 골방의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 속 깊숙이 넣었다. 미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와 현구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이 비밀은 영원히 묻힐 것이다.’
그녀는 집 안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현구의 간식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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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현구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현구가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미자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손에 쥔 합격 통지서를 바라보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기쁜 소식은 필섭에게도 전해졌다.
서울대 입학식 날, 미자는 아침 일찍부터 현구의 정장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그의 넥타이를 매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떨렸지만, 그 속에는 깊은 행복이 담겨 있었다. 현구는 차분하게 준비를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입학식 장소에 도착하자, 미자는 그곳에서 필섭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오랜만에 보는 미자와 현구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 눈빛 속에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반짝였다. 그는 현구를 보며 말했다.
"내 아들 현구야, 정말 대단하구나. 축하한다."
현구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는 필섭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아버지"라고 말했다.
미자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뜻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바로 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비록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행복했다.
한편, 현수는 중앙대 문예 창작과에 입학했다. 그의 입학은 단순한 학업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문학과 철학에 깊이 심취해온 여정의 연장선이었다. 어머니 은정의 따뜻한 사랑과 돌아가신 아버지 동규의 열정적인 문학적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이미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여러 문학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수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내면에는 소설가로서의 꿈이 날마다 자라나고 있었다.
현수의 방은 책과 노트로 가득 차 있었다. 벽 한쪽에는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사진과 문구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는 매일 밤늦도록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때로는 어머니가 그의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지, 현수야"라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현수의 눈은 언제나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글은 항상 진솔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는 삶의 여러 측면을 탐구하며,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주력했다. 그의 문장 속에는 아버지 동규의 철학적 사고와 어머니 은정의 섬세한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다.
중앙대 문예 창작과 입학 소식을 들은 날, 현수는 어머니와 함께 학교 캠퍼스를 걸었다.
"여기가 내 꿈을 실현할 곳이야," 현수는 벅찬 마음으로 말했다. 은정은 그의 손을 잡고 미소 지었다.
"네 아버지도 너를 자랑스러워할 거야, 현수야. 너의 재능과 열정을 믿어."
현수는 캠퍼스를 둘러보며, 앞으로의 나날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는 강의실에서 배울 새로운 지식과 만날 사람들, 그리고 쓸 이야기들을 상상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편의 소설과 시가 떠돌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다.
그는 다짐했다.
‘내가 이곳에서 배운 모든 것을 소설에 담아낼 거야.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나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거야.’ 그의 눈에는 결의와 희망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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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와 현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비록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이따금 길에서 스쳐 지나가거나 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정도였다. 그리고 유리의 수상한 죽음 이후, 현수는 의식적으로 현구를 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날, 유리가 죽은 날, 현구의 팔에 난 선명한 물린 자국을 목격한 사람은 현수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현수의 마음속에는 현구가 유리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끊임없이 일렁였다. 그는 현구의 눈빛에서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불안함을 느꼈다. 그 이후로 현수는 현구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현수는 거리에서 현구의 모습을 볼 때마다 긴장했다. 그는 현구의 존재를 감지하면, 몸을 숨기거나 다른 길로 돌아가곤 했다. 시장에서도 현구와 마주칠 때면, 그는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유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지만, 그 진실이 현구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에 몸서리쳤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대학생이 된 이후, 그들은 운명처럼 다시 마주쳤다. 그 계기는 바로 초등학교에서 개최한 '자랑스러운 선배님' 행사였다. 행사에 두 사람 모두 초청된 것이다. 현수와 현구는 긴장된 마음으로 초등학교 강당에 들어섰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그 장소는 이제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강당은 밝게 조명되었고, 무대 위에는 꽃과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들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와 현구는 행사장 입구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마자 어색하게 멈춰 섰다. 그 순간, 시간은 멈춘 듯했고, 주변의 소음은 먼 배경으로 사라졌다.
현수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의 눈앞에 선 현구는 어린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동시에 어딘가 달라 보였다. 현구 역시 현수를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서로를 탐색하듯,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되새기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현수야." 현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색함과 함께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야." 현수는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긴장과 의문이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과거의 그 날, 유리의 죽음과 현구의 팔에 남아 있던 물린 자국이 떠올랐다. 현수는 그 순간의 불안함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나도 그래." 현구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의 표정에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한 긴장감이 있었다.
"잘 지냈어?"
"응, 그럭저럭. 너는?" 현수는 간단히 대답하며,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갈지 고민했다.
"나도 괜찮아. 대학 생활이 생각보다 바쁘네." 현구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행사 진행자가 두 사람을 무대로 안내했다.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초등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수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현구는 법학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의 경험과 성취를 나누며, 어린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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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구는 학부 3학년이 되던 해, 학업을 잠시 멈추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아버지 조필섭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미우나 고우나 그의 어머니 미자와 현구 자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분이었다. 아버지의 별세 소식은 현구의 마음에 잠시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뒤로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법고시 합격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자는 달랐다. 남편 필섭의 부재는 그녀에게 깊은 불안을 안겨주었다. 이제 그녀는 필섭의 가문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세상은 그녀에게 점점 더 냉혹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그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녀는 조현일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섭이 생전에 약속한, 자신과 현구에 대한 처우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러나 필섭의 유언을 집행하는 변호사가 먼저 미자를 찾아왔다. 그는 필섭이 아홉 명의 아들 각자에게 합당한 유산을 남겼으며, 그중 현구에 대한 유산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전했다. 미자는 그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그러나 변호사의 다음 말은 그녀를 삽시간에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빨려들게 했다. 필섭의 유언 집행 조건 중 하나가 바로 DNA 친자 확인 검사라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돌아가고 난 뒤, 그녀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필섭의 유산을 못 받는 것은 고사하고 만약 이 소식이 현구에 귀에 들어가고 그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그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미자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변호사를 설득해, 거액의 뇌물을 주고 DNA 검사 결과를 조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미자는 은밀히 변호사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변호사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아들이 유산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필섭의 이름과 유산이 그의 삶에서 지워진다면, 그 아이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변호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다. 미자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더욱더 강하게 나아갔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1억짜리 수표 열 장이 든 봉투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이 돈을 받으시고, 검사 결과를 조작해 주십시오. 저는 그저 제 아들이 그의 정당한 자리를 지키길 바랄 뿐입니다."
변호사는 잠시 침묵했다. 미자는 그의 눈에 흔들림을 보며 희망을 품었다. 그녀는 결연히 말했다,
"변호사님,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이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그녀의 말은 마치 절규와도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그 눈물은 빛을 반사하며 그녀의 진심을 드러냈다.
변호사는 돈 봉투를 세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은 한층 부드러워졌지만, 그 속에는 더욱 깊은 탐욕이 숨어 있었다.
"미자 씨,"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만약 제가 이 일을 도와드린다면, 그 대가로 유산의 절반을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미자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마음은 갈등으로 요동쳤다. 그러나 그녀는 변호사의 탐욕스러운 눈빛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현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죠. 하지만 그 대가로 확실하게 검사 결과를 조작해 주셔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변호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약속하죠. 결과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나올 것입니다."
미자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현구의 미래와 그녀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이 선택은 불가피했다. 그녀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자신을 다잡았다. 눈앞의 이 사람에게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만 했다.
변호사가 자리를 떠난 후, 미자는 혼자 남겨진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이 선택이 현구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으려 했다. 그녀는 조용히 창문을 닫으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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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 확인 결과는 완벽하게 나왔다. 현구는 필섭의 아들로 확정되었고, 이에 따라 그는 부동산과 동산을 모두 합해 약 100억대에 달하는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나 미자에게 가장 큰 기쁨은 그 무엇보다 현구가 조씨 가문의 정당한 일원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미자는 변호사로부터 확정된 결과를 통보받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현구가 조씨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은 그녀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했다. 그동안 그녀가 겪었던 모든 고난과 불안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미자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우리 잘난 아들이 너희 가문을 모두 빨아드리게 될 거야…. 두고 봐.’
그 순간, 미자는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평안을 느꼈다. 그녀의 모든 노력과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변호사였다. 모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 미자는 그에게 약조한 유산의 절반을 주기 싫었다. 설령 주더라도 그가 살아 있는 이상 비밀 유지는 불가능해 보였다. 깊은 갈등 끝에 그녀는 결심했다. 예전 형석처럼 변호사를 제거하기로.
그녀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차분히, 그러나 결단력 있게. 예전 형석을 제거할 때와 마찬가지로,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변호사가 방문할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변호사에게 유산의 절반을 넘기는 자리라고 속였다.
미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변호사에게 음료를 건넸다.
"먼저 축하의 잔을 들죠,"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변호사는 별 의심 없이 잔을 받아들었다. 그가 잔을 들어 올리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미자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
변호사는 금세 이상을 느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미자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제 비밀은 당신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변호사는 미자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점점 시야가 흐려지며 힘을 잃어갔다. 미자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마음은 차가운 평온함에 휩싸였다. 변호사가 마침내 바닥에 쓰러지며 숨을 거둘 때, 미자는 다시 한번 필섭을 떠올렸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어," 그녀는 속삭였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현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옳았다고 믿었다. 이제 그녀는 조씨 가문의 비밀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미자는 천천히 자리를 정리하며, 변호사의 존재를 지워버릴 준비를 했다. 그녀의 마음은 다시 한번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현구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기에.
하지만 변호사는 형석과는 달랐다. 그는 탐욕스러울 뿐만 아니라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변호사는 자신의 행적을 모두 기록하고 녹음으로 남기는 철저함을 보였다. 그의 실종이 보고된 후 하루도 되지 않아, 경찰은 미자의 집을 급습했다.
그날 아침, 미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고요한 아침은 곧 불길한 소리로 깨어졌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그녀의 집 앞에서 멈췄다. 강렬한 노크 소리에 미자의 심장은 한순간 멈춘 듯했다.
경찰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눈에는 냉정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미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경찰은 집안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미자는 그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골방에서 두 구의 시체 조각들을 발견했다. 형석과 변호사의 흔적이 담긴 끔찍한 장면이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경찰은 발견된 증거물을 바탕으로 미자를 체포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절망과 후회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가 감추려고 애썼던 모든 비밀이 이제는 드러나고 말았다.
미자는 수갑이 채워진 채로 경찰차에 실려 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그녀는 속삭였다.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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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이 충격적인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매일같이 신문과 뉴스 방송은 미자와 그녀의 범죄에 대한 새로운 증거와 사실들을 쏟아내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신문의 1면에는 굵은 글씨로 "조필섭 왕국의 어두운 비밀"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방송사들의 뉴스 머리기사도 미자와 현구의 이야기를 다루며, 매일같이 새로운 진실을 파헤쳤다. 각종 매체는 연일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증거와 사실들을 공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로 밝혀진 것은 변호사와 미자 사이의 은밀한 거래였다. 녹음된 파일에는 변호사와 미자가 DNA 검사 결과를 조작하기로 합의하는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남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작용했다. 변호사가 녹음 파일에서 요구한 유산의 절반과 미자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내뱉은 절박한 목소리가 세상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어 언론은 미자가 변호사에게 뇌물을 건네는 장면이 담긴 녹취를 공개했다. 미자는 변호사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그 안에는 현구가 필섭의 친자임을 확정하는 서류가 담겨 있었다.
또한, 미자가 변호사를 제거한 방법과 과정도 상세히 드러났다. 독이 든 음료를 건넨 후, 그가 고통스럽게 숨을 거두는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며, 그녀가 자신의 범행을 덮기 위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보여주었다. 형석의 시체와 변호사의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녀의 냉혹한 본성이 드러났다. 언론은 그 끔찍한 장면들을 상세히 보도하며, 미자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국, 미자가 모든 비밀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에 대한 사실들이 모두 드러났다. 언론은 미자의 행적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녀의 범죄를 낱낱이 파헤쳤다. 대중은 그녀의 악행에 분노와 경악을 느꼈고, 미자는 단순한 죄인이 아닌, 교활하고 냉혹한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미자의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과 배신, 그리고 그로 인한 파멸을 상징하는 비극적인 서사시가 되었다.
현구는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자가 자기 친아버지 형석을 죽였다는 것, 그리고 형석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말이다. 그 충격은 그를 한순간에 폐인으로 만들었다. 눈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 듯한 상태로 지냈다. 방 안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쓰레기들이 쌓여갔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현구는 뭔가를 결심한 듯, 모든 현금을 챙긴 뒤, 필리핀행 항공 티켓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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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밤거리는 현구에게 유혹적인 불빛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카지노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도박이었지만, 점차 그는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룰렛의 회전과 카드의 딜링 소리는 현구의 귓가에 매혹적인 음악처럼 들렸다. 그는 손에 땀을 쥐며 배팅을 했고, 승리의 쾌감과 패배의 고통을 번갈아 가며 맛보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구는 점점 더 많은 돈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점점 더 무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카지노에서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은 현구에게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심부름이었다. 하지만 곧 현구는 그들이 단순한 도박꾼이 아니라 범죄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과의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그들의 세계는 냉혹하고 잔인했다. 현구는 그들과 함께 불법적인 거래를 하고, 거짓말과 폭력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고, 마음속 양심의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꿈꿨는지조차 잊어버렸다. 필리핀의 뜨거운 태양 아래, 현구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범죄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그 길의 끝에는 오직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이제 더 이상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그를 둘러싼 것은 오로지 범죄의 냉혹한 현실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범죄자들과 함께 한국에서 관광하러 오는 이들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낯선 땅에서의 모험과 휴식을 꿈꾸며 필리핀에 도착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현구와 그의 동료들은 관광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교묘한 함정을 설치했다. 그들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와 호텔 주변에서 그들을 노렸다. 처음에는 친절한 현지인인 척 접근하여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이 오면, 그들은 납치라는 끔찍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어느 날 밤, 한 젊은 부부가 그들의 목표가 되었다. 현구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들이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서자, 현구는 뒤에서 조용히 접근하여 그들을 제압했다. 부부는 순식간에 납치되어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들은 낯선 방에 감금되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서로를 꼭 껴안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차가운 눈빛을 가진 현구와 그의 동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협박과 폭력을 통해 그들의 돈과 소지품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용 가치가 없다 싶으면, 그들은 더 끔찍한 일을 계획했다.
현구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장기 판매라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손을 대게 되었다. 감금된 사람 중 이용 가치가 없다 판단된 이들은 장기 밀매 조직에 넘겨졌다.
그들의 비명과 눈물은 어둠 속에서 사라져 갔다. 현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이미 인간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현구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그의 영혼은 파괴되어 갔고, 그의 앞에는 오직 파멸과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구는 젊은 부부가 남기고 간 소지품 배낭에서 책을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질투의 끝, 강현수 장편소설.
현구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현수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화면에 떠오른 첫 번째 뉴스 기사 제목은 충격적이었다.
‘현수의 소설 <질투의 끝> 베스트셀러 등극!’ 기사는 현수의 성공을 찬양하며 그의 웃는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현수는 이제 한국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었고, 그의 소설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현구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은 마치 폭발할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현수의 모습은 현구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수의 성공은 현구에게는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느껴졌다.
현구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혼란과 분노, 그리고 깊은 절망이 뒤엉켰다.
그 순간 현구는 결심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내 어머니와 나를 파멸로 이끈 이들에게 철저하게 복수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