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좌충우돌 20대

대학생을 위한 강의 노트

by 어거스트


10월 첫 주에 서강대학교 경제대학 2학년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게 되었다. 친구를 잘 둔 덕분이다.

문득 일정표를 보니 강의일까지 3주밖에 남지 않았다. OMG.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


담당 교수님의 요청 사항은 이러했다. 75분의 강의 중 30분은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기 위한 준비에 대한 조언, 다음 30분은 글로벌 기업의 본사(headquarter) 경영진인 나의 업무 소개. 그리고 질의응답.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의 순간부터 취업을 준비한다던데, 나의 이력이 대학생 취업준비 매뉴얼의 해외 근무 편 챕터 언저리에 얻어걸린 듯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저 영광스럽다.


문제는 나의 '감'이다. 나의 대중 강연 제1 원칙은 '청중과의 연결, 공감대 형성하기'인데, 도저히 청중의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여 년이 지났고, 한국을 떠나 일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이제 막 영국의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묻자니 한국의 실정을 알 리 없고, 대학생 아들을 둔 한국의 선배 언니에게 물어볼까 했더니 그 아들이 지난달에 군대를 갔다.


고민을 거듭하다 나의 20대를 소환하기로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20대.

사실 이 글을 2주째 붙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히 있긴 있을 텐데 당최 C 드라이브 어디에 저장했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파일 폴더를 뒤지는 기분이다.

눈을 감고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하나씩 모아서 덩어리로 뭉치는데 한참이 걸렸다. 나의 좌충우돌 20대. 그때의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나.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나의 실체 사이에 꽤나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남들 버전: Ojosan (오죠상). 얼마 전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곱게 자란 아가씨' 정도.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강남/송파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예의 바르고 싹싹한 아이.


나의 현실 버전:

1.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라온 억울함. 이 삶은 나의 것인가, 엄마의 전시목록인가.

2. 대학 교육에 대한 삐딱함. 나의 시간(노동)을 내어주면 돈을 얻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리인데, 대학은 나의 시간도 주고 돈도 내야 하는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

3. 내가 자라온 세계가 아주 넓은 경제 스펙트럼의 무척 작은 일부였다는 것에 놀라고, 올드머니/상류층 세상에 기가 눌림. 나랑 비슷하게 자라온 친구들과 모여서 '우리는 중산층인가 (최소한) 중상층인가'를 논하면서 혼란과 약간의 실망을 공유했던 기억.


다행스럽게도 나의 대학생활이 마냥 혼란과 삐딱함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고마워할만한 부분들도 있다.

1. 나는 어차피 잘 될 거라는 믿음.

자식에 대해 흔들림 없는 무한 긍정주의를 보여준 엄마의 덕분이다. 억울한 일도 있고,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 경험도 했을 텐데,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 경험이 된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그건 '나는 어차피 잘 될 사람'이라는 단단한 믿음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2.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나는 어쩐지 친구나 후배보다는 선배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학 밖의 세상을 기웃거렸다. 패션에 심취해서 '엘르 ELLE' 잡지 과월호 (시즌이 지난 잡지)를 사러 직접 출판사에 갔다가 데스크의 아무 기자언니를 붙들고 인턴이 되었다. 이후 약 1년여 동안 전국 각지의 화보 촬영지를 따라다니며 운전과 각종 심부름을 도맡았고, 섭외가 급할 때는 대학생 인터뷰 등으로 잡지에 직접 출연(?) 하기도 했다.

경영학과 수업 중 마케팅 사례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무작정 연락하고 찾아간 리바이스(Levi's)의 당시 마케팅 부장님은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인생의 멘토가 되었다.


3. 탁월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

이 마음에 대해서는 고마움 반, 원망도 반이다. 똑똑하고 탁월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생각이 깊이가 놀랍도록 심오하거나,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나거나, 본인의 일에 진심인 사람들을 늘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주변은 인생을 훌륭하게 가꾼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림자도 얻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저만큼 똑똑하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으니 이만큼 더 노력해야 해'라고 날 채찍질한다. '노오력'의 힘을 믿으면서도 간혹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대체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건데!'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대학생 때도 그랬다. (걸핏하면 날밤을 새면서 과제를 하던 20대 대상포진 유경험자)




사실 나에게는 대학 시절 취업 고민이 없었다. 이런 얘기는 늘 조심스럽다.

대학에 가고 나서는 고등학교나 학원 선생님을 벗어난 어른들의 세상을 구경하기에 바빴고, 그 덕분인지 4학년 여름 무렵에 그동안 인턴, 학생 기자, 마케팅 공모전으로 인연을 맺은 세 곳의 회사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었다. 세상의 잣대로 평가해서 입이 떡 벌어질만한 기업이나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그런 기준조차 잘 몰랐던 나는 큰 고민 없이 셋 중 한 곳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렇게 돌아보고 나니, 과연 내가 '취업뽀개기'가 큰 관심사라는 대학 2학년생들에게 해외 취업 준비에 대해 강의할 자격이 있는 건가 싶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 축사에서 말한 대로 "점 연결하기 connecting the dots"을 해보면 흩어졌던 구슬들이 꿰어진다.


결국엔 다 잘될 거라는 긍정주의와 나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마다 (결혼, 출산, 해외 취업, 외국에서 외국으로 이사 다니기) 잘못된 생각이라며 뜯어말리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 일찍이 '본인이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들의 말은 새기지 않아도 된다'라고 가르쳐주신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고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선배들을 찾아다니고 그분들의 경험을 귀담아듣던 습관은 돌발 상황이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의 시행착오를 줄여주었다. 지금은 내가 내딛는 길에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실 선배들은 많이 없지만, 대신에 YouTube와 수많은 책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준다.

굳이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영어 능력을 갖추면 큰 힘이 된다. 나의 한글 사랑과는 별개로, 영어로 된 정보의 양과 퀄리티는 다른 수많은 언어 정보를 압도한다. 그걸 한번 맛보고 나면, 한국적 사고로 필터링된 정보 (해외토픽 기사, 영문서적의 번역서)에만 의존해서 세상을 바라보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는 그랬다.


마지막으로 탁월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지금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이 양날의 검과 같은 마음은 나에게 불안함을 주고 채찍질을 하기도 하지만, 나의 친구들, 동료들, 선후배들을 보면 놀라움과 고마움, 행복함이 함께 찾아온다.

이들의 출발점은 그들의 인종, 성별, 그리고 성격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전쟁 난민 캠프에서 유년기를 보낸 광고인 후배, 암을 극복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동료, 자수 성가한 네덜란드 유명인사 커플 친구, 그리고 유럽 각지에 7개의 집을 가지고 있는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동료 등. 이들 모두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직접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동경하고 존경할만하다.



결국 이번 강의에 '이렇게 하면 해외 취업에 성공합니다'는 비법 노트 공개 같은 건 없다.

어린 학생들을 실망시키게 될까 봐 걱정도 되지만, 뭐 내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혹시 강의를 망치게 되면 늘 하던 대로 생각해야겠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 명강사가 되어 있을 거야. '




(대문이미지: Martin Deja/Moment/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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