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함, 난꽃을 피우는 조건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기
살다가 그런 사람을 마주친 적 없는가?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불쌍하고 가장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고백하건대, 한때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 왜 나만 이런가 그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기를 반복하며 과연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까지 한적도 있다.
자기 자신이 한없이 가엾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잘 안다. 딱히 뭘 많이 가지고 태어난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특출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그 와중에 노력은 하는데 마땅한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닌, 그래서 나만 실패한 것 같을 때. 혹은 나 자신은 잘해나가고 있음에도 주위에서 특히 가족들이 발목을 잡는 것 같을 때. 사실 발목을 잡는다는 표현 자체로도 마음이 애잔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도 느껴봤다. 어릴 때 가난은 그저 불편한 것이라 여겼다. 물론 이 가난은 절대 빈곤이라기보다는 상대적 가난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아무튼 가난은 불편했지만 열심히 살면 가난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고 열심히 살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하게만 사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래서 가난을 벗어나기보다 어쩌면 더 가난해지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여길만 했다. 그런데 가난의 문제는 내가 미처 가난을 벗어나기도 전에 더 가난한 가족이 내미는 구원을 요하는 손길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가난이 절망스러웠고 내가 가엾게 느껴졌다.
남들보다 허름한 집, 남들보다 열악한 동네, 남들보다 불균형한 식단.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가난은 실체가 있어서 받아들이기 쉬웠다. 물론 이마저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도 있을 테지만 가난은 나의 잘못도, 우리 부모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고 오히려 더 악착같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짊어진 그 가난의 몫이 사실은 더 큰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당혹감과 겁이 났다. 그리고 그대로 무너졌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객관적으로도 나 자신이 불쌍해 보일 수 있다.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스스로 행하는 나에 대한 연민이 얼마나 백해무익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당장 멈춰야 할 것이다. 나는 자기 연민이라는 덫에 걸려 한 번 넘어져봤기에, 그리고 다행히도 다시 일어났기에 그게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지 안다. 자기 연민은 나에게서 희망을 거둬들이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나락에 빠뜨린다. 어른인 나는 발만 뻗으면 바닥에 닿을 높이인데 그걸 모른 채 온몸을 웅크린 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평생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란 말이 아무 고난 없이 귀하게만 자란 사람을 조금 부정적으로 나타낸 비유라지만 가난을 제대로 실감한 순간은 그저 온실 속의 화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난의 삶을 살아야 했나 보다. 동양란은 겨울에 추위를 겪어야 꽃이 핀다고 한다. 그 척박함이 난꽃의 조건이라니 나를 둘러싼 환경은 꽃을 피우기에 최고의 조건인 셈이다. 그러니 내 주변의 환경과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더 이상의 자기 연민으로 자신에게서 성장의 기회마저 빼앗지 마시길. 내가 빛을 좌우할 수 없을 땐 바른 방향으로 서 있기만 해도 때가 되면 나의 그림자만큼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