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어쩌다 아르바이트생 EP.001
2년 6개월 간 다녔던 스타트업 두 곳을 뒤로한 채 스스로 퇴사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이대로 죽으면 내 인생이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직장을 다니는 삶이 공허하고 무료했다. 업무에서 동기부여는 점점 떨어져 갔고 기계처럼 일하고 수동적으로 일상을 맞이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뒤 없이 퇴사를 했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 볼 각오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겁도 없다)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오고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이 나이에 아르바이트도, 신입도 쉽지 않았다. 30대가 넘어 경험해 본 현실은 너무나 차갑고 냉담했다. 흔하디 흔한 카페 아르바이트도 무경력자는 뽑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에는 아르바이트 공고 자체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31살 10월에 회사를 나와 32살을 맞이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20대 때 SPA 브랜드 매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서울 SPA 브랜드 매장 아르바이트 공고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하루 뒤에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OOO님 맞으신가요? 지원해 주신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싫었던 직장 생활을 스스로 박차고 나왔었건만 이런 아르바이트 서류 합격 소식에 참으로 기뻤고 감격스러웠다. 나를 알아주는 곳이 그래도 있구나. 아르바이트를 지원해도 연락조차 없던 회사들이 수두룩했기에 연락을 준 것만으로 일단 감사했고 기뻤다.
그다음 날 면접을 보러 매장으로 향했다. 20대 때 마지막으로 했던 아르바이트가 유니클로였는데, 그 이후로 약 5년 만인 것 같다. 면접은 20분 정도 진행됐다. 관리자는 간단하게 지원 동기를 물어보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설명해 주고 면접을 마무리했다. 서류 지원할 때 한 300자 정도 지원 동기와 포부를 적었는데 그렇게 적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시고 과거에 SPA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을 좋게 봐주셨는지 그다음 날 최종 합격 전화가 왔다. 그렇게 SPA 브랜드 매장 아르바이트 생이 되었다.
출근은 바로 그다음 주였다. 비록 아르바이트지만 일을 할 수 있게 돼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에 너무나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고 흡족했다. 그렇게 32살에 아르바이트생이 됐다.
아르바이트 첫 출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세분과 처음으로 인사를 하고 매장 오픈 업무를 하게 됐다.
"ㅇㅇ님, 그거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스타트업에 근무하며 후임으로 인턴과 신입까지 받았던 내가, 어리바리 아르바이트 신입생이 됐다. 그렇게 남들과는 조금 다른 30대에 맞이하는 특별한 나만의 아르바이트 스토리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리바리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