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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반에 반토막이 나도 일단 지금은 흡족해

32살, 어쩌다 아르바이트생 EP.002

by 욱노트

첫 출근, 나는 모든 것이 엉성했다. 입고를 위해 상품이 담긴 박스를 까는 폼부터 사소하게 상품을 정리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서투르고 어설펐다. 더구나 20대 때와는 다르게 30대가 넘어 나이가 어린 선임들에게 일을 배우려고 하니 스스로 체면이 서질 않았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누구나 그렇듯 처음은 모두 서툰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열심히 배우고 시키는 일을 했다. 그렇게 첫 주가 흘렀다.


그래도 현장에서 근무하니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보람 있었다. 어쩄거나 내 노동으로써 상품들이 매장에 채워지고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는 모습들을 보니 뿌듯하고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다. 그리고 비록 최저시급이지만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불과 4개월 전에 사무직으로 일을 했을 때와는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4개월 전으로 돌아가본다. 사무직으로 8시간 앉아서 일했다. 몸은 편했다. 일하다가 30분 정도 쉬고 와도 됐었다. 화장실도 눈치 안 보고 가도 됐다. 시급을 따지면 지금 시급에 약 2배였다. 페이도 나쁘지 않았다. 근데 그 당시엔 행복하지 않았다. 일에서 동기부여는 전혀 되지 않았고 재미도 보람도 없었다. 목표도 없었다. 8시간 동안 회사에서 있는 시간들이 너무나 쓸모없다고 생각이 들었고 따분했다. 그리고 스타트업이라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었고 나에게 너무나 큰 책임이 주어졌다.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데 강점이 있는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땐 몰랐는데 그게 조금씩 내 안에 스트레스로 쌓여갔다.


그럼 지금은? 7시간 서서 일한다.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든다. 월급이 반에 반토막이 됐다. 고용이 불안정하니 미래가 불안하다. 30대에 아르바이트?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사회의 시선들이 따갑다. 근데 그전과는 다르게 삶에 활력이 돈다. 내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고 그렇게 살게 됐다. 퇴근하면 성취감과 보람이 컸다. 일하다가 점심을 먹는 시간이 너무나 귀중했고 그 시간이 행복했다. 출근을 하며 하늘을 보는 여유가 생겼고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일하는 환경과 조건은 나빠졌는데 마음가짐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궁극적으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됐다.


아르바이트만 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다.라고 결론 내리기보다는 지금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하여금 삶을 대하는 내 태도가 많이 바뀌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미래가 불안하고 몸은 힘들지만 5개월 전 대비 내 삶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고 흡족스럽다. 일단은 지금 이거면 된 것 같다. 과거 수동적인 삶에서 지금은 내 삶을 내가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새롭게 생긴 에너지로 더 열심히 살고 싶다.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취업을 도전해 보고 여러 가지 재밌는 일들을 벌려보고 싶다.



"분명 난 거스름돈 2천원을 줬는데, 왜 천원이 돈통에 없는 거야" 최근에 계산대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 요즘 이 시간이 제일 두렵다. 돈 계산에 유독 철저한 나인데, 고객 앞에만 서면 왜 이리 실수투성이인지. 새로운 업무(POS)를 하며 겪는 여러 생각과 일화들은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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