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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Dec 19. 2021

 눈사람의 추억이 동장군을 이긴다.

눈사람


초등학교 때는 정말 순수했다.


지금은 눈이 오면 귀찮은 것부터 생각하는데 어린 시절에는 눈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드라마를 보다가 작은 누나가 밖에 눈 온다고 소리치면 기분이 즐거웠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찬바람이 방의 더운 공기를 위로 들어 올린다. 그래도 마냥 좋다. 기분을 억제 못하고 밖에 그 냥 나가려고 한다. 어머니가 벙어리장갑과 양발 두 켤레를 신겨 주었다. 그리고 내복에 여러 겹의 겨울옷을 입혀 주셨다. 여기에 털 장화는 필수품이다.


마당에 나가니 흰색이 나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옆집 아줌마는 벌써부터 빗질을 하신다.  그 아줌마가 밉다. 더 쌓이게 놔두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줌마는 아저씨까지 불러 눈을 쓴다.


눈이 오면 우리 집 강아지 똘이까지 좋아한다. 흰 바탕에 나의

발자국을 제일 먼저 찍고 싶었다. 그런데 똘이가 먼저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잡아서 던져 버린다. 깨갱한다. 그래도 금방 잊고 나에게 온다.


눈을 뭉쳐 나무에 던져본다. 그리고 똘이에게도 던진다.

당연히 작은 누나에게도 던진다. 작은 누나의 눈 뭉치에 한 대 맞고 눈 바닥에 앉아 그냥 울어버린다. 그러면 누나가 100원을 주며 라면땅을 사 먹자고 나를 달랜다.



옆집에서 버린 연탄재를 가져온다.


눈 사람 만들기에는 이게 최고다. 연 탄재를 굴린다. 작은 눈덩이들이 조금씩 붙는다. 이런! 연탄재가 깨져버렸다. 다시 하나 더 가져와서 굴린다. 오히려 바람은 거센데 땀이 난다. 마냥 좋다. 눈사람 몸이 만들어졌다. 또 하나를 굴려서 머리를 만든다. 눈덩이들이 점점 커진다. 아! 허리가 아프다. 한번 하늘을 보고 다시 굴린다. 어느새 벙어리장갑이 축축하다. 그래도 추운 줄 모르겠다.


눈사람 몸만들기는 매우 힘들다. 몸이 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몸과 머리가 완성되었다. 작은 누나는 벌써 다 만들었다. 몸에 얼굴을 올린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꺾어 눈과 입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나의 빨간 털모자를 머리에

씌운다. 드디어 완성이다. 누나가 내 눈 사람에 눈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나쁘다. 나는 하지 말라고 한다. 똘이는 뭐가 좋은지 나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나에게 잘 만들었다고 한다. 나에게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하신다.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벌써 12시 다. 엄마는 늦었다고 집에 들어가라 한다. 좀 피곤하다. 젖은 옷을 벗고 새 내복을 입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너무 따뜻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당의 눈이 사라졌다. 내가 잠든 사이 엄마는 눈을 쓰셨다.


눈이 얼어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신 모양이다. 그 장면을 눈사람만 보았다. 해가 뜨고 눈 사람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잃어간다. 나의 추억도 그 눈사람과 묻힌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나의 언 가슴에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four seasons of life 중 by wood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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